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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전주 대성리 출토 쇠북 - 고려시대 전북 국악계 외형 넓혀신호 전달 매개체로 사용

쇠북은 청동으로 만든 북인 금고(金鼓)를 말한다. 쇠북은 형태상 고대 타악기의 일종인 원반형태의 정(鉦)에서 유래되어 점차 불가의 의식용 법구로 정착되었는데, 그 근거는 『금광명최승왕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금고는 원래 징과 북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나, 불교의 수용과 더불어 선종이 크게 융성함에 따라 의식과 사찰의 장엄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의식용 법구로 활발하게 제작됐다.

 

금고의 용도는 지금과 같이 대중을 모으는 용도 외에도 금고를 두드려 의식을 행하고, 그 소리를 들음으로써 모든 죄를 참회토록 한 것이란 점에서 악기로도 연주되었을 것이다. 또한 작은 소형의 금고의 경우 승려의 지물로 활용되어 손에 들고 치면서 염불수행의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현재의 목탁과 같은 역할을 했다.

 

현재에는 국악기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 불교 의식물로만 생각되는 금고는 분명하게 우리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악기로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구려 벽화의 으뜸으로 평가받고 있는 안악 제3호분에도 금고와 같은 악기가 묘사되었을 뿐 아니라 고문헌과 유물에도 쇠북이 국악기로 표현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구려벽화의 행렬도 가운데 후반부에 그려진 북의 모습은 금고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에 이 악기의 역사는 그만큼 윗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특히 고대 악기일수록 신호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악기를 사용했다. 타악기였던 나각과 나팔, 북과 징은 상고시대에 악기이자 신호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됐다.

 

고려사 병지 병제에는 금고가 군대의 진퇴에 사용한 신호악기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범주의 악기는 후대에 내려올수록 타악기로 변화하면서 우리 악기에 편입되고 연주되었다. 따라서 국악기의 전범과 같은 악학궤범에는 국악기로 기록하지 않았지만 금고는 고분벽화와 같은 유물과 고문헌등의 자료에서 악기로 기록됐다.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전주 대성동 출토 청동금고는 고려시대의 유물로 지름이 50.5센티미터나 될 정도로 큰 쇠북이다. 더욱이 이 쇠북에는 연판, 연입, 인동문을 장식함으로써 화려한 미의식까지 보여줘 불교미술공예품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금고 중에도 규모나 장식면에서도 매우 우수한 이 쇠북은 고려시대 번창했던 연등회와 팔관회에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음악사를 확장하는 유물로 주목된다.

 

고려시대 사찰과 각종 연희행사에서 사람을 모으는 법음구와 더불어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는 불교 음악의 한 갈래로 활용되었던 쇠북은 당대를 대표하는 고려시대 악기였던 것이다. 더욱이 지금의 징과 매우 유사한 쇠북은 한 면은 두드리는 역할과 다른 반대편은 비어있어 공명을 냄으로써 타악기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다.

 

글자 그대로 쇠북을 뜻하는 금고는 넓은 의미에서 두들겨서 소리 내는 금속제 악기이다. 따라서 전주 대성동에서 출토되어 햇빛을 보게 된 금고는 고려시대 전북 국악계의 외형을 넓혀주는 소중한 악기다.

 

전북문화재 전문위원·한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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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용 kimwy@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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