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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재난고 - 사료 빈약한 전북 국악문화 실상 보여주는 보고

18세기 궁중음악·공연양상 보여주고 음악연행자에 대한 이해 높여

이재난고는 호남의 실학자였던 고창출신 이재 황윤석(1729-1791)의 방대한 서적 중 한권이다. 이 고문헌은 18세기에 활동한 황윤석이 10세 때부터 63세에 타계하기까지 54년 동안 자신의 학습내용, 시문, 기행문 등 당대의 세상살이에 대하여 보고 들은 것들을 일기 형식으로 자세하게 기록해 놓은 유고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111호로 지정된 이 책은 총 50책으로 고창군 성내면 조동리에 소장돼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 이재난고의 가치를 음악학적 측면에서 조명한 바 있다. 임미선씨는 이재난고의 가치를 "왕실의 음악에서 선비들의 풍류, 가객 및 기녀의 공연 내용, 악기, 악보 등 매우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황윤석은 봉조관(칙서를 받들던 관원)으로 수차례 종묘제향에 참배하기도 했으며, 한 때 장악원 주부를 제수 받았을 정도로 궁중음악에 실질적 경험이 있었고, 당대 최고의 음악학자로 분류되는 서명응 이련 김용겸 등과 교유하며 악론을 토론할 정도로 악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따라서 이재난고는 지은이의 음악관과 동시대에 다양한 갈래에서 전개됐던 예술사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18세기 궁중 음악의 한 측면과 더불어 조선 후기 공연양상에 대한 새로운 면모, 기녀·가객·고취악대 등의 음악연행자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생생한 자료이다.

 

특히 중앙에 비해 사료가 빈약한 전북의 국악문화를 상론하고 있어 주목된다. 예컨대 호남지역 선비들의 풍류 생활상과 선비들 사이에서 유통한 양금신보의 가치, 그리고 거문고 음악의 전파 양상 및 외국 사신의 영접 연향(宴享)이 기술됐다. 또 18세기 후반 전라도 기녀들이 검무, 헌선도, 처용무, 선유락, 포구락, 무고 등의 정재(옛 궁중 무용)를 연행한 사실까지 알려주는 등 전북 국악의 실상을 알려주는 보고와 같은 책이다.

 

이 책의 중요성에 대해 임미선씨는 "백제의 노래였던 산유화는 비록 본래의 가사가 전하지 않았으나 이 책을 통해 선율 자체는 전승되었던 사실도 새롭게 부각된 것"이라며 음악사의 전면을 다루고 있다고 보았다.

 

동시대에 필사본으로 각종 국악서적을 필사하며 독학했던 이재의 음악사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이 책은 목판본으로 간행되어 후학들에게 지금까지 길라잡이가 되어준다.

 

평생 독서와 견문을 통해 국어학에서 역사학, 성리학, 지리학, 천문학, 국악 등 폭넓은 학문관을 보여주었던 황윤석은 이재난고를 통해 음악학자로 면모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만큼 당대 실학자들은 학문의 깊이와 넓이에 구애받지 않고 탄탄한 내공을 통해 학문을 수련의 과정으로 생각했던 모습까지 반추시킨다.

 

이처럼 방대한 연구를 통해 지역음악사의 한켠을 조선후기에 보여주었던 황윤석의 이재난고는 오늘날 국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학문의 가치도 일깨워준다.

 

/전북도문화재전문위원·한별고 교사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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