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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김민성(金民星) 편 - 가을 햇살과 바다 사랑했던 부안 시인

▲ 김민성 시인

부안여중·고 교장과 이사장을 역임한 김민성(1927-2003) 시인은 부안 출신으로 1960년 신석정 시인의 추천으로 『자유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이후 부안문화 원장과 『석정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부안의 역사와 문화 특히 이매창 문학 발굴과 신석정 시비 건립에 남다른 관심으로 지역문화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면서도 대자연이라고 하는 절대적 존재 앞에서 서 있는 자신의 왜소한 존재에 대한 골똘한 인식으로 구도자적인 자세를 보인 시인이었다.

 

낮게 낮게 발을 쳐놓고

 

태양은 이제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참새 한 마리

 

바삐 돌아 간 뒤

 

바람이 인다

 

바람에 날리어

 

내가 파리똥만큼이나 작아지는 시간.

 

황토길 비포장도로를

 

운전수는 미친듯이 차를 몰고

 

어둠이 쓸어오는 가로수

 

정밀이 덮어 가는 논둑길

 

아 그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고즈너기

 

설레는 가슴을 챙긴다.

 

- 「석양」, 전문

 

'태양이 이제 / 뒤도 돌아보지 않는' 석양 앞에 서 있다. 이어 사라져버리고 없는 '태양'과 '날리는 바람' 앞에서 시인은 '파리똥만큼이나 작아진다'고 하였다. 태양도 '사라져 버리고' 참새도 '날아가 버린', 이처럼 그의 초기 시는 '사라져 버리고', '날아가 버린', 그리하여 붙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무상감(無常感) 그리고 그 앞에 속수무책으로 서 있을 수밖에 실존적 자아에 대한 골똘한 인식에서 그의 시는 시작되고 있다.

 

갈매기는 매칼없이 바다가 좋았다

 

바다도 갈매기가 그저 좋았다

 

아홉물 큰 사리

 

바다가

 

긴 잠을 깬 용트림을 하면

 

물씬 갯 내음

 

갈매기는 파도를 알 것 같다.

 

해조음 속에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

 

갈매기는 파도를 모를 것 같다.

 

바다의 깊은 의미를 네가 알까

 

내가 알까.

 

매칼없이 좋은 바다에

 

하루를 앉았는데

 

갈매기는

 

기어히

 

빈 봄을 몰고 온다. - 「바다」전문

 

절대의 '바다'가 등장하고, 그 앞에 서 있는 왜소한 존재, 곧 시적 자아의 상관물로서 '갈매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갈매기'에게 안겨오는 것은 언제나 '빈 봄'뿐이라는 허무의식이 그 배면에 깔려 있다. 그러면서도 바다를 떠나 존재할 수 없는 갈매기, 그래서 '매칼없이 좋아한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가고 있기에 '갈매기는 파도를 알 것 같'지만 끝내 '파도를 모를 것 같다'고 한다. 이것이 절대 무한의 바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비어 있고(空) 그러면서도 끝내 그 근원을 알 수 없는(不可解) 시적 자아의 모습, 아니 우리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고향을 사랑하고 고향의 바다를 사랑하다 잔잔한 여운만을 남긴 채 바다로 되돌아간 시인. '맨발로 걸어오는 / 낙낙한 가을 햇살 따라', (「맨발로」에서) 바다와 하나가 되어 맨몸으로 우리 곁을 떠난 그는 진정 부안의 시인이었다. /시인·백제예술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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