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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 정치를 보고 싶다

▲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객원 논설위원
한 모스크바 시민이 크렘린궁 앞을 뛰어 가면서 "후루시초프는 바보다"고 외쳤다. 그는 곧바로 체포돼 징역 23년형을 선고 받았다. 형량(刑量) 중 3년은 당서기 모욕죄, 20년은 국가기밀 누설죄였다. 영국 보수당의 처칠 수상이 의회 화장실에서 노동당 당수를 만났다. 그는 잽싸게 바지 지퍼를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이 친구는 큰 것만 보면 국유화 하자고 주장하는데 큰 일 날뻔 했잖아…." 러시아와 영국에서 유행하는 유머들이다.

 

해학·익살 넘치는 외국 정치인들

 

또 있다. 프랑스에서는 비교적 지체가 낮게 평가받는 수의사 출신의 한 국회의원에게 그의 반대파 의원이 공격했다."당신은 전에 수의사를 했다는데 정말입니까?"그가 대답했다."그렇습니다. 지금도 저는 수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의원님 어디 편찮으시면 제가 봐 드릴까요? 안색이 안 좋으시군요." 일본의 한 국회의원은 한쪽 눈을 실명한 장애인이었다. 그의 정적(政敵)이 비꼬는 말투로 "당신은 반쪽 눈으로 사물을 판단하려니 꽤 힘들겠습니다."고 놀렸다. 이에 대해 그는 단 한마디로 되받아 그를 머쓱하게 했다. '일목요연(一目瞭然)'.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기자들이 난감한 질문들을 쏟아내자 홧김에 "Son of bitch(개새끼)"라고 욕을 했다. 화가 난 기자들이 나중에 대통령에게 T셔츠 한 장을 선물하면서 앞가슴에 SOB라는 글귀를 써 넣었다. '선 오브 비치'의 약자를 새겨 넣어 앙갚음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받아 본 레이건이 빙그레 웃었다. "SOB라?"이건 당연히 "Saving of budget(예산 절약)라는 뜻이겠죠?" 얼마나 멋지고 재치있는 응대인가. 이런게 바로 정치 유머의 진수(眞髓)라 할 것이다.

 

유머(humor)는 해학(諧謔)·익살을 뜻하는 말이다. 원래 이 말의 뿌리는 고대 그리스어 'HMOR'에서 유래된 것으로 액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중세 유럽인들은 이 액체의 상태에 따라 사람의 감정이나 기분이 바뀐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미국 UCLA 대학의 노먼 커즌스 박사는 1979년 출간된 〈병(病)의 해부〉라는 책에서 유머를 의학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고 그 후 수많은 병원이 유머 치료법을 운용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웃을 경우 면역 기능을 맡고 있는 백혈구와 면역 글로블린은 많아지는 반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오는 코르티솔 호르몬 분비는 줄어들어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하고 있다.

 

굳이 의학적 해석까지 끌어 들이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한마디 유머가 주는 생동감은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대인 관계나 직장 생활에서 짜증나고 우울하고 불쾌할 때 웃음거리를 만들어 좌중을 즐겁게 해줄 줄 아는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한 발 앞서 나가는 리더의 소질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미국이나 유럽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웃기는 컨설팅'이 비즈니스로 각광받고 있는지 오래다.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유머의 노하우를 자문해 직장 분위기를 화합으로 이끌고 더불어 업무의 효율성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대통령 '썰렁 개그'라도 듣고 싶어

 

그런데 요즘 벌어지고 있는 우리 정치판은 과연 어떤가. 도무지 익살과 해학같은 서구 정치권의 유머 감각은 눈 씻고 찾아 볼래야 찾아 보기 힘들고 그저 상대방을 불구대천의 원수 대하듯 으르렁 대는 소리만 요란하다. 지난해 대선이래 NLL 대화록 유출·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국정원 수사를 둘러싼 검찰 내분 사태·군 사이버부대의 댓글 공작 논란 등으로 이어지는 여야 대치 상태는 급기야 '악마의 손길'이라거나 '헌법 불복 세력'이라는 험한 용어까지 동원되며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그러니 관전자인 국민들은 피곤하고 짜증나고 울화만 쌓이지 않나 싶다. 좀 간지럽긴 하지만 문득 박근혜 대통령의 '썰렁 개그'라도 우리의 유머 정치를 터 잡게 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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