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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수만사택

삼례로 출·퇴근하면서 어머니 품같은 벌판보며 넉넉하고 평화로움 느껴

▲ 신항균 서울교대 총장
‘2015 괴산 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 조직위원회가 오는 9월 개막하는 유기농엑스포의 성공개최와 올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4일 엑스포농원에서 손 모내기를 실시했다고 한다. 손 모내기 행사에는 엑스포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40여명이 참여했는데 참석자들은 그동안 괴산농기센터에서 정성껏 키운 벼 42개 품종을 엑스포농원 3157㎡에 심었다.

 

요즈음은 경지정리가 잘 된 논에서 기계로 모내기를 하기 때문에 손 모내기는 흔치 않은 행사였던 것 같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문득 어린 시절 모내기 하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당시의 모내기는 하나의 마을 축제였고, 희망을 가득 품은 기원제였다. 벌판은 일을 하는 어른들 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모두 뛰어놀았고, 노동의 힘듦보다는 꿈과 기대에 가득 찬 기쁜 잔치 날의 한바탕 놀음 같은 것이었다. 논 주인은 맛있는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어 모내기하는 일꾼들을 배불리 먹였고, 일을 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모두 모여 함께 돕고 함께 어울려 마을 공동의 잔치를 벌이는 날이었다.

 

그런 희망과 꿈을 심는 모내기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논을 가득 채울 넉넉한 물이 있어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천수답이 많아서 제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를 할 수 없었고, 모내기시기를 놓쳐 1년 농사를 망치고 흉년이 들 때도 잦았다.

 

옛날 중국 동진 시대의 도연명은 사시(四時)에서 봄 풍경을 ‘춘수만사택’이라 읊었는데, 사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하운다기봉(夏雲多奇峰) 추월양명휘(秋月揚明輝) 동령수고송(冬嶺秀孤松)’. 즉 봄물은 사방의 연못을 가득 채우고,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를 많이 만드네,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던지고, 겨울 산마루엔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났네.

 

사계절을 두고 읊은 시에서 봄을 그리는 풍경은 화려한 꽃도 아니고 푸른 신록도 아닌 봄비가 넉넉히 내려 사방 연못에 물이 가득한 희망의 장면이다.

 

이는 봄이 왔다고 만물이 저절로 소생하는 것은 아니며, 봄비가 대지를 적시면서 어루만져 줘야 비로소 움을 틔우고 꽃을 피우게 하는 물이 사방에 가득한 것을 진정한 봄이라고 본 것이 아닐까?

 

필자는 전에 우석대학교에서 교수로 근무한 적이 있다. 전주에서 삼례로 출·퇴근하면서 이만 때면 평화롭고 어머니 품과 같은 너른 삼례 벌판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춘수만사택’ 이었다.

 

이는 정말로 넉넉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느낌으로 온 몸을 감싸는 전율 같은 것이었다. 생각은 더 확대되어 이것은 단지 풍경이 주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모든 준비를 마친 선수가 시합의 시작을 기다리는 기대 같은 것으로 발전하여 이런 곳에 대학교를 우뚝 세우고 사람 농사를 지을 준비를 마치고 세상의 이끌 인재를 교육할 기대와 감격으로까지 치달았다.

 

그 후 지금의 자리에서 일을 할 때에도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학교를 둘러보면서 항상 드는 생각은 ‘춘수만사택’ 이란 넉넉함과 감사의 마음이다.

 

모내기가 시작될 시점에서 이런 생각을 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져본다. 하늘에 감사하고, 자연에 감사하고, 내 고향 전북에 감사하고, 그동안 나를 성장하게 해준 모교와 직장 모두가 감사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끝으로 연재를 마치며 이런 기회를 주신 전북일보와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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