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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예산 정치 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여야가 시끄럽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죄송’ ‘사과’ 운운하면서 한껏 자세를 낮춰도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각종 행정입법의 시행령에 대해선 국회가 앞으로 개정을 ‘요구’하거나 ‘요청’한다 해도 요지부동일 것 같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청와대의 우격다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아예 손 댈 엄두도 못 낼 것 같다. 혹을 뗄려다 더 큰 혹을 붙이고 만 꼴이다.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문재인-김승환 공동선언’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23일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을 만나 교착상태에 빠져 있던 누리과정 예산을 타결지은 것도 그 근저엔 시행령 개정 약속이 있었다.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 책임으로 두고 있는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23조를 문 대표가 “수정하겠다. 이를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김 교육감은 “깊은 감사와 신뢰를 보낸다.”며 지방채 발행까지도 염두에 두고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단 불은 껐지만 지금 분위기로 보면 문 대표의 시행령 개정 약속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이미 “우리가 어떻게 대통령을 이겨 먹나”며 백기를 든 상태이고, 야당은 쪽수가 태부족이다. 정부 스스로 지방재정의 숨통을 터 주는 쪽으로 시행령을 정비할 리도 만무하다. 따라서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방교육재정의 부담을 덜겠다는 ‘문재인-김승환 공동선언’은 선언 그 자체로 끝날 개연성이 농후하다. 임시변통의 정치 쇼다. 시일이 지나면 수개월 동안 계속된 갈등과 마찰의 원위치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의 조삼모사(朝三暮四) 고사가 있다.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먹이를 줄이기 위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면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했더니 원숭이들이 기뻐했다는 예화다. 눈앞에 당장 나타나는 차별만을 알고 그 결과가 똑같음을 모르는 걸 꼬집는 말이다. ‘문재인-김승환 공동선언’이 꼭 그런 꼴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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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재 kjlee@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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