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계 '왕도의 길'에다 멋진 지붕박물관 만들면 관광객 체류시킬 수 있어
시대와 함께 변화의 물결은 마치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진안고원도 예외가 아니다. 진안군민의 날과 함께 치러왔던 홍삼축제를 분리시키고 거기에 트로트코리아페스티벌을 접목한 것은 변화를 위한 큰 몸부림이다. 재정자립도가 10%가 안 되는 진안으로서는 머물러 있을 시간이 없다. 부디 지난 10월 31일 처음 치러진 트로트코리아페스티벌이 뿌리를 내려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거듭났으면 한다.
현재 실효성 검토를 하고 있는 마이산 케이블카도 그 전제가 아이들이나 노약자의 이동수단이니만큼 적정한 선에서 절충되기를 바란다. 케이블카가 아니더라도 마이산 측면을 통해 남부와 북부를 잇는 이동수단은 필요하다.
곁들여 필자는 진안을 찾는 사람들을 체류시킬 방안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조선의 창업자 태조 이성계와 그 가문의 유적을 보기 위해 전주를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주에는 전주 이씨 시조묘인 조경묘가 있고,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과 풍패지관인 객사가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보관소인 전주사고가 있다. 또 황산대첩을 승리로 이끈 후 잔치를 벌였다고 전해지는 오목대가 있다.
진안에도 주필대와 은수사 등 이성계와 얽힌 이야기가 곳곳에 어려 있다. 이성계가 장남 이방우를 진안군(鎭安君)에 봉했다는 것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진안군민의 날’도 태종 이방원이 방문했던 것으로부터 유래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토대로 스토리텔링을 한다면 전주를 찾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진안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성계는 1380년 남원의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르고 한양으로 올라가던 중 말 귀 모양의 기이한 산을 보게 된다. 마치 홀린 듯 마이산(당시에는 용출산이라 칭함)을 향하는데, 일찍이 꿈에 금척을 받은(몽금척) 장소와 유사함에 운명처럼 마이산에 오른다.
마이산에 오른 그는 주변의 산세에 신비한 감응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수마이봉, 암마이봉, 봉두봉, 비룡대, 탕금봉, 마루봉, 광대봉을 거쳐 후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는 합미산성(마령면 강정리 뒷산 소재)까지 단숨에 내달렸는데도 오히려 기가 충일해짐에 놀란다. 다시 합미산성으로부터 시작해 광대봉을 거쳐 암마이봉, 수마이봉까지 이동하며 어떤 천명과도 같은 기운에 휩쌓인다.
이성계는 합미산성에서 마이산까지의 길을 ‘왕도의 길’이라 명명하고는 백일동안 오가며 기를 받는다. 아울러 은수사(당시에는 상원사라 함)에서 백일기도를 올리니,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는 바로 ‘왕도의 길’을 통해 태동되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리라.
이성계가 창업의 기를 얻은 ‘왕도의 길’을 다듬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향후 용담호 둘레 길을 따라 몇 개의 민속촌과도 같은 마을을 만들자. 거기에 지붕의 역사를 덧입히면 매우 특징적인 마을이 될 것이다. 돌지붕, 너와지붕, 굴피지붕, 겨릅지붕, 초가지붕, 스레트지붕, 함석지붕, 기와지붕 등 지붕의 종류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한다면 멋진 지붕박물관이 완성되지 않겠는가.
왕도의 길에서 기를 받은 후 마이산 탑사를 관람한 사람들은 진안에 머물 수밖에 없다. 용담호와 지붕박물관이라는 또 다른 기대치가 남아 있기 때문에.
현대는 이야기 시대다. 개인도, 기업도, 국가도 이야기가 뒷받침 돼야 빛이 난다. 도자기나 고미술품, 고가구 등이 비싼 이유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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