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연도 추억은 아름답지
지천명의 길이 나를 옛집으로 데리고 갔네
무거운 정적 몇 겹 둘러친 울타리 너머
검정고무신 한 켤레가 기다리고 있었네
그 동안 무슨 수상쩍은 일 있었는지
정지문은 입을 꽉 다물고
졸음에 겨운 시간이 눈비비고 있는 작은방에선
구구단을 외고 일기를 쓰는 유년의 밀봉된 꿈이
꾀죄죄하니 횃대에 걸려 있었네
그걸 못 보게 눈에선 모래알이 서걱거리고
달빛이 집안에 가득 찼을 때
서까래 낮은 안쪽에선 아버지 기침소리가 들려왔네
야윈 달그림자 서성이던 어린 발자국들이
서럽게 나를 따라붙어 칭얼거렸네.
△아버지 두루마기와 어머니 비로드치마가 걸린 옛집에 가고 싶다. 대나무 막대를 잘라 양쪽 끝에 끈을 매어 벽에 달아매어둔 횃대를 떠올린다. 토방에는 삐뚤뻬뚤 식구들의 고무신이 오빠가 소리 내어 외우고 있는 구구단을 듣고 있을, 그 집에 지천명의 화자가 간다. 명절이면 유년의 꿈이 밀봉된 고향집이 그립다. / 시인 이소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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