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12 04:47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금요수필
일반기사

신리 가는 버스

▲ 윤이현

버스는 서학동의 교대 앞을 지나서 좁은목을 돌아, 시내 외곽으로 나와 신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세 살배기 외손녀 녀석 말대로 주황버스(일반버스)다. 의자가 꼭 차 있는 파랑버스(좌석버스)보다 차안이 넓어서 좋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녀석은 물론 승용차보다도 주황버스 타기를 좋아했었다.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유월의 산 빛은 온통 진초록이다. 오월, 연초록 때의 부드러움을 벗어나서 이젠 생동감 넘치고 역동성에 생명감이 출렁이는 진초록이다. 그 싱그러운 산 빛에서 부드러웁도록 젊음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진초록을 좋아한다.

 

아무튼 버스 요금 800원을 지불하고서 우리 집에 가는 길에 덤으로 얻는 포만감의 하나가 아닐까. 나는 ‘신리에 산다’고 한다. 그러면 ‘공기 맑아서 좋겠구먼’하고 받는다. 그렇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벗어나면 숨 쉬는 맛이 달라진다. 제법 시원한 것 같음을 느낀다. 실제로, 아니 기계로 측정 해 보지 않아서 수치상으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말이다.

 

실은 굳이 공기 맑은 곳 경치 좋은 곳을 택해서 온 것은 아니지만 정년퇴임을 하면서 찾아 온 곳이 ‘신리’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요즘 유럽에 있다는 ‘다운시프트(downshift)족’도 아니고, 도시 기피증이란 말 같은 것은 생각 해 보지도 않았다.

 

하여간 좀 한가롭고 공기도 맑은 것 같고, 그보단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을 볼 수 있음이 좋아서 옮겼을 뿐이다. 4월엔 보이는 산마다 꽃밭이었기도 했다. 높고 낮은 산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산마다 산벚꽃으로 하이얗게 수를 놓은 듯 고왔었음도 놓칠 수 없는 경관이었다.

 

어찌되었건 나는 요즈음 더욱 ‘신리로 가는 버스’만 타도 좋다. 그 중에서도 ‘주황버스’가 더 좋다. 그것은 세살배기 그 녀석이 입구에서 통통거리며 뛰어 가서 좌석을 하나 차지하고 좋아하며, 두리번 두리번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귀여운 모습이 선해서 더욱 좋은 것이다. 물론 버스 안이 복잡하지 않을 때의 일이다.

 

신선하고 천진한 호기심으로 마냥 환하게 웃음 주던 녀석 모습은 언제 떠 올려도 행복하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3개월 여를 우리집에 와서 함께 생활하는 동안 사랑스러운 기억들을 많이 남겨 놓고 갔다.

 

“하부지 이게 뭐야?”

 

노오란 민들레를 비롯, 작은 풀꽃들이며 제가 처음 보는 것들이면 그냥 ‘이게 뭐야’라고 묻던 일. 과자를 맘대로 골라잡는 재미로 동네 슈퍼에 가자고 떼를 쓰던 일. 세 칸짜리 통근 기차(전주-군산간)를 타고, 폴짝폴짝 뛰면서 ‘꽃기차’(기차 외부에 꽃이 그려져 있음)탔다고 좋아 하던 일 등.

 

하기야 지금, 그 녀석은 싱가포르에서 2층 버스를 타고 또 그렇게 좋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어쩌면 녀석은 버스 타는 재미를 빨리 터득한 건지 원.

 

그런데 이런 재미도 내역도 모르는 이들은 “아이고 바쁜데 웬 시내버습니까?”하면서 승용차나 택시를 이용하라고 권하기 일쑤다. 그렇지만 나는 혼자서 속으로 대답한다. 그냥 웃으면서.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난 버스를 탈거야. 그 녀석이 좋아하던 주황 버스를. 그리고 느리게 살 거야. 저속 기어로 갈 거야.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쿨(cool)하게 살 거라구--후후.’

 

 

△윤이현씨는 〈아동문예〉로 등단했으며,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가을하늘’이 등재돼있다.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한국미래문화연구원장, 전북아동문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완주문협 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