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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백제왕궁 역사, 교과서에 꼭 실려야

익산시 왕궁면(王宮面) 왕궁리(王宮里)와 금마면 동고도리의 왕궁리 유적에는, 국내 고대 왕궁으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담장, 왕이 정사를 돌보고 의식을 행하던 정전 등 14개의 건물지, 백제 최고의 정원 유적과 공방터, 국내 최고의 위생시설인 대형화장실 유적 등이 남아 있다. 이 유적은 인접한 익산 미륵사지와 함께 최대 규모의 백제 유적으로 꼽히며,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하였다는 제석정사(帝釋精舍)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官宮寺)·대궁사(大宮寺) 등의 절터와 대궁(大宮)터, 토성터 등을 품고 있다.

 

따라서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익산읍지> 등의 문헌들에도 이곳이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別都)를 세운 곳 ‘, ’마한의 궁성터 ‘라고 적고 있어 이를 뒷받침한다.

 

왕궁리 유적은 이처럼 학계에서도 거의 정설로 여길 만큼의 의미심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각급 교과서에도 제대로 등재되지 않는 등, 그 가치가 심각하게 폄하되어온 바 있다. 최근 이와 같은 안타까움을 씻을 계기가 마련되어 가고 있어서 고무적이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익산이 가진 백제왕궁의 역사를 국내 역사 교과서에 담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시민 서명운동을 포함하여 다양한 경로의 청원활동을 이어온 관련 단체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이 사안이 단순한 참고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하게 교과서에 등재되는 결론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도민과 함께 계속 주시할 것이다. 누대에 걸쳐 정권의 폭발적인 지원을 받아온 신라 왕궁 유적과 그 역사, 그리고 이웃한 공주, 부여 등의 백제 중기 유적들에 밀려, 아직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익산 왕궁 중심의 백제 후기 역사가 이제라도 찬란하게 깨어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왕궁리’, ‘고도(古都)리’라는 명칭, 사택녀 이야기를 선명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리장엄기 등, 이 지역이 백제 말기의 왕도였음을 직간접적으로 밝히는 증거들은 도처에 있다. 이 숱한 증거 자료들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외면 받아온 안타까움을 말끔히 씻어내기를 기대한다. 동시에 역사문화도시를 표방하면서 새로운 문화콘텐츠 창안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익산시민들에게도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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