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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오이와 노각

▲ 양희선

순결의 상징 백합꽃이 다소곳이 피었다. 여름 내내 끊임없이 피는 제라늄과 채송화가 앞마당 가에서 형형색색으로 눈을 즐겨준다. 꽃대를 내밀고 하얗게 핀 옥잠화 향이 은은하게 퍼져,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은 게 꽃이다. 어느 때부터였던가, 꽃을 심었던 자리에 가지, 고추, 오이넝쿨이 어우러져있다. 나이가 들면 아름다운 꽃을 가꾸기보다 실속 있는 먹 거리에 욕심을 부리는 것은 늙었다는 증거일까? 눈을 즐겨주던 꽃들이 채소들에 밀려나 주객이 전도 되었다.

 

앙증맞은 새끼오이

 

신품종 가시오이모종 두 그루를 사다가 커다란 화분에 심고, 토종오이는 씨앗을 뿌렸다. 심은 씨가 사나흘 지나 흙속어둠을 뚫고, 밝은 햇볕세상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쌍떡잎을 나풀거리며 무럭무럭 자랐다. 가시오이와 토종오이모종이 나란히 서서 누가 먼저자라나 키 재기를 하나보다. 넝쿨손이 지주목을 휘감고 쭉쭉 뻗어나갔다. 활짝 핀 노랑꽃술 단맛을 아는 벌 나비가 모여들었다. 가시오이는 마디마디에 새끼오이를 매단 노랑꽃송이를 선보였다. 살아 숨 쉬는 생명, 앙증맞은 새끼오이가 하루가 다르게 크더니 아이팔뚝만 해졌다. 싱그러운 오이 살갗에 잔가시가 촘촘히 박혀있다.

 

토종오이는 수꽃만 얼기설기 피어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열매를 맺은 암꽃이 보이질 않는다. 암, 수꽃이 함께 필터인데, 설마 뒤늦게라도 피겠지. 느긋하게 기다려보리라. 꿀을 찾는 꿀벌만 윙윙거린다. 가시오이를 심심찮게 7~8개를 따먹었는데, 토종오이는 어이된 일일까. 어느 날, 자세히 살펴보니 노랑수꽃 사이에 암꽃이 눈에 띄었다. 그럼 그렇지! 뒤늦게 핀 암꽃이 수줍은 듯 다소곳이 숨어있다. 신품종과 토종은 꽃 맺음부터 달랐다. 개량종은 쭉쭉 뻗은 날씬한 몸매이며, 토종은 생긴 그대로 오동통한 모양새이다.

 

무엇이든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다. 가시오이는 길고 반듯하여 상품가치가 있고, 아삭한 식감과 오이향이 품격을 높여준다. 마디마디에서 열기 때문에 생산자는 많은 소득을 올리고, 소비자는 싼값으로 먹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다. 수분이 많아 장아찌를 담으면 무르는 게 약점이라고 할까? 겉이 노랗게 늙은 토종오이 노각은, 속은 파란 청춘이다. 아삭아삭한 맛이 일품이며, 상큼한 오이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무침이나 장아찌로 두고 먹어도 손색이 없다. 오통통한 몸매에 작달막한 키로 수확량이 적어 비싼 게 흠이다.

 

아삭아삭 한 맛 일품

 

토종의 취약점을 연구하여 품질 좋고, 맛도 있으며, 더 많은 수확을 올리는 우량품종으로 품질개량을 하고 있다. 참다운 인격자를 위한 교육과 훈련도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한 정신무장이 아니던가. 오이가 자라는 입지적인 주변조건에 따라서 품질 좋은 상품이 생산되기도 하고, 뒤틀리고 볼품없는 불량품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도 좋은 환경의 부모 밑에서 자라면 선하고 착하게 크지만, 가정환경이 좋지 않으면 외골수로 대인관계에서 원만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 좋은 품질의 오이를 생산하기 위해 퇴비도 넣고, 해충도 잡아주듯, 사랑하는 내 아이가 사회에서 대접받는 자녀로 성장시키려면 부모의 역할이 크다. 잘하는 것은 칭찬해주고, 잘못하는 일은 바로잡아주면서 사랑으로 감싸주고 다독여야 하지 않을까.

 

△양희선씨는 〈대한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수필집 〈길 따라 꿈길 따라〉를 냈다. 전북문인협회 회원, 안골수필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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