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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은 외양간에서

▲ 박영숙
35년 전쯤 장수 산서에서 전셋집에 살 때의 일이다. 가을이 되자 집안의 감들이 아주 먹음직스럽게 열려 수확할 날만을 고대하다가 일요일에 나무를 잘 타는 날다람쥐 여동생을 오라고 했다. 식구들도 달려들어 집안 감나무에 열린 대봉시를 열 접쯤 땄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잠자는 꼬맹이는 여동생에게 맡기고 남편과 나는 남원 시내에 있는 공중목욕탕을 갔었다.

 

그런데 다녀오니 여동생이 별꼴을 다 봤다며 황당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나간 뒤 얼마 지나 날씨도 흐리고 바람이 불어 비가 오려나 싶어 빨래를 걷고 있는데 갑자기 부엌 쪽에서 시커먼 신발이 살강 위로 훌렁 올라가더란다. 그래서 철렁한 가슴을 추스르고 누구냐며 당장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단다. 그랬더니 까까머리 애송이 중학생이 겁에 질려 떨며 내려오더란다. 그래서 왜 들어왔느냐고 물었더니 저 윗마을에 사는데 동생이 감 따는 것을 보고 먹고 싶다고 해서 감 몇 개 가지러 들어왔단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며 나가려는 아이를 불러 비닐봉지에 감을 몇 개 담아서 보냈다고 했다. 그 뒤 행위가 미심쩍어서 인생 착의를 자세히 물으니 윗마을이 아니라 바로 옆집에 사는 남학생이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한 것이 좀 괘씸하기는 했지만 대봉시를 그렇게 많이 따놓고 미리 옆집에 나눠주지 못한 자신이 어리석었다 싶어 불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심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한 달 전쯤인가 퇴근해서 벽장에 십만 원쯤 넣어 둔 월급봉투가 몇 만 원이 빈 것이었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가져가려면 다 가져가지 반만 가져갔겠느냐며 나에게 엉뚱한 소리 하지 말라고 믿어주질 않았다. 나는 그동안 혼자서 삭이며 혹시나 하는 맘이 들어 퇴근 후 그 집 어머니에게 가서 어제 있었던 감 도둑 사건을 말씀드리고 월급봉투 이야기도 하며 아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월급봉투를 그대로 두었으니 지문 검색을 하면 다 나 올 거니까 만약 아들에게 물어 그 돈을 가져갔다면 곱게 돌려주시고 아니면 지서에 가서 손도장 하나만 찍어주시라고 말하고 집에 왔다.

 

그리고 지서에 전화를 걸어 돈 봉투에서 돈을 꺼내 간 경우 지문감식을 하면 도둑을 잡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런 시골에서는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이 전화 후에 누가 이런 문의를 해오면 봉투만 있다면 꼭 잡을 수 있다고 대답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기다리면서도 혹시 애먼 사람을 의심했나 싶어 불편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쯤 지났을까? 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그 집 어머니가 봉투를 들고 와서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나마 다행이다 싶어 그 돈을 받고 다시 곰곰 정황을 살펴보니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몇 년간 집안의 소소한 일들이 이상해서 생각해 보니 그동안 주말에 집을 비울 때마다 허름한 걸음쇠를 열고 제집 드나들 듯 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중학교에 근무하는 남편을 통해 그 학생을 닦달해 보니 그 녀석의 소행이 드러났다.

 

누가 시골인심이 후하다고 했는가?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 사는 곳은 선악이 함께 공존한다. 옆집과 사이에 있던 돌담이 점점 무너지던 것 등이 이제야 이해가 되면서 이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방비를 했지만 어쩐지 씁쓸했다.

 

지금은 쉰이 넘었을 딸 부잣집 외아들 그 아이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이들에게 바르게 살라고 훈계를 하겠지? 몇 년 전 남원을 갔다 오는 길에 그 동네를 한 번 들려 보니 옆집은 양옥으로 재건축하였는데 우리 살던 집은 온데 간데없이 잡초만 무성했다.

 

△수필가 박영숙 씨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북문학관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늘푸른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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