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중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건은 아테네·스파르타 동족 간의 펠로폰네소스전쟁, 유럽본토에서의 신·구 교간의 30년전쟁, 러시아혁명 그리고 오늘날의 북핵 실험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은 갑작스런 충돌이 대 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의 핵실험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야기시킬 수도 있어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한 국지적 충돌이 대 전쟁으로 비화된 좋은 실례는 제1차 세계대전을 들 수 있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칭할 정도로 넓은 영토를 통치했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신성로마제국)는 신생 프러시아와의 최후의 패권 전쟁에서 패배하였다.
그때문에 오스트리아는 세력확장의 방향을 남(南)으로 정하게 되었고 마침내 발카반도의 중심국가인 슬라브계 세르비아와 충돌하게 되었다, 이 국지적 충돌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지 못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앞으로 북한의 핵실험이 불의의 대전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심에서 국지전이 세계대전으로 비화된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발칸반도 북부의 자국의 속령 슬라브계의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슬라브인들의 저항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군사 퍼레이드 후 세르비아 청년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오스트리아가 전쟁 준비의 미비와 결단력 부족으로 선전포고를 미룬 한 달의 공백 기간에 당사국과 강대국들이 이 국지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시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유럽 강대국들이 중대한 과오를 범한 것이다. 마침내 오스트리아는 독일 빌헬름 황제의 “적극적으로 대응하라”는 격려에 고무되어 세르비아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과격한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이로 인해서 러시아에서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고 범슬라브주의 지도적 국가로서 슬라브 국가가 또다시 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없다 하여 전군동원령을 내렸으며, 독일이 요구한 동원령의 철회가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독일이 곧 러시아에 선전포고하였다.
그리고 프랑스가 보불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보석이라 칭하는 알자스-로렌을 프러시아에 뺏긴 한(恨) 때문에 전쟁 시 러시아에 가담할 것을 분명히 하였으며 독일은 양면전쟁의 위험 때문에 먼저 프랑스에 선전포고하였다.
영국은 국론이 통일되지 않은 상태에서 관망하다 중립 소국 벨기에가 독일군에 점령되는 것을 보고 의회의 만장일치 결의로 전쟁에 참여했다.
한 저명한 역사가는 오·세간의 분쟁이 적절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것은 “당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위대한 정치가가 없었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세계열강은 더 이상 주저하지 말고 또한 자국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지 말고 핵을 사용하는 제3차 세계대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조속히 평화적으로 해결해야할 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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