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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 앞두고 만난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 "북한 김정은 체제 보장되면 비핵화 가능하다"

대담=백성일 부사장 주필
북한이 원하는 건 시장경제…외국 기업 투자 유도하면서 핵무력 건설은 이치 안 맞아 결국 체제안정 위한 자구책
남한과 북한은 이중적 관계 함께 가야 할 대화상대이자 대치하고 있는 적대적 대상…남북 정상회담서 해소해야

▲ 정동영 국회의원이 남북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조현욱 수습기자

한국전쟁의 포성은 멈췄지만 전쟁의 유산은 여전히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이달 27일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도 결국 20세기 중반에 벌어진 남북 분단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의 전환과 한반도 비핵화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동영 국회의원은 “남북정상회담 결정을 이끈 자체가 성공”이라며 “회담이후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냉전체제의 해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전북일보는 지난달 28일 정 의원을 만나 김정은 북한 노동위원장의 중국 방문 의미와 북한체제의 변화,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 역학관계의 변화, 남북관계와 전북경제 등 여러 사안을 짚었다. 대담은 백성일 부사장이 진행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위원장이 최근 중국을 방문했다. 시진핑 주석이 김 위원장을 북경에 초청했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중국에서 북한의 제의를 수락했다고 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북경 방문을 중국에 제안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이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이 같은 행보를 보인 이유는.

“ ‘김정은의 시간표’대로 가는 행보다. 북한은 큰 그림을 가지고 움직인다.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과 11월 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핵 무력 완성선언 등도 향후 전개될 ‘북중관계에 대한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미사일이 기술적으로는 완성되지 않았는데 정치적으로 완성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마치 전략적 결단을 한 셈인데, 결단의 양태는 올 1월 신년사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 2월 평창올림픽 참여,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 등의 순으로 드러난다. 이후에는 북중관계와 북-러 관계 혹은 북-일 관계의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도 김 위원장의 방문을 원했나.

“중국 역시 한반도 문제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길 원한다. 지난 7년 간 중국은 북한과 불편한 관계였다. 그런데 최근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등의 얘기가 나오면서 남-북-미 3각 구도가 급물살을 탔다. 이 때문에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주도권과 영향력을 상실할까봐 불안해했었다. 때마침 김 위원장으로부터 신호가 온 것이다.”

-남북정상회담과 내달 있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보인 행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북한이 중국과 미국 사이를 오가면서 뭔가 챙기려는 다른 뜻이 있는 것 같다. 경계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좀 더 큰 틀에서 봐야한다. 김 위원장이 2012년 4월 처음 등장해서 내세운 게 두 가지 목표다. 하나는 핵 무력 건설, 하나는 경제 발전이다. 그 중 핵무력에 대해서는 지난해 11월 29일 ‘완성했다’고 선언했다. 이제 경제발전만 남았는데, 북한의 경제발전 의도는 지금까지의 동향만 보면 알 수 있다. 북한은 2012년부터 6년 동안 4번이나 핵실험을 하면서도 경제개발구역을 21곳이나 지정했다. 서해안 쪽에 7개, 압록강하고 두만강 쪽에 7개, 나진선봉 원산에 7개다. 특히 지난해 12월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이 논의되고 있던 시점에도 북한은 22번째로 평양시 강남군에다 강남개발구역을 지정했다. 그런데 이 지역들이 모두 외국인 투자지역이다. 즉 외국인 자본을 투자해서 기업을 유치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위협하는 핵무력을 건설하면서 외국기업 투자를 유도한다는 게 이치상 맞질 않는다. 결국 뒤집어보면 북한은 그만큼 고립에서 벗어나 교역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 것이다. 북한은 ‘베트남의 길’을 가길 원한다. 정치는 일당 독재지만 경제는 시장경제로 가는 흐름이다. 베트남이 이 체제로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핵 무력을 완성했다는 선언은 체제안정을 위한 자구책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체제안정이 담보되면 비핵화도 가능한가. 북한의 기존 행보를 보면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타당한 지적이다. 북한은 지난해 7월에도 미국독립기념일에 맞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행위를 계속해왔다. 누가 북한을 믿을 수 있겠는가.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고 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달 들어 북한은 노선을 대폭 선회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북한에 특사로 갔을 때 김정은 위원장이 했던 발언,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을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김 위원장의 부친인 김정일 위원장 때부터 이어져 온 말이다. 통일부 장관시절인 2005년 6월 17일, 김정일 위원장과 담판을 지어야 할 상황이 있었다. 당시에도 핵 문제가 주요 화두였는데, 북한이 6자 회담을 거부하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6자 회담에 나오라고 설득을 하면서 ‘핵 보유가 북한의 최종 목표입니까’라고 물었더니 ‘미국이 우리를 압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자구책으로 핵을 개발할 뿐 미국과 적대관계가 해소되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 그래서 ‘남쪽 국민들은 북한을 믿지 않는다’고 했더니 김정일 위원장이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입니다’라고 했다. 귀가 번쩍했다. 남북관계를 20년 동안 다뤄왔는데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은 헌법과 노동당 규약보다 더 위에 있다. 그렇지만 당시 유훈은 남북관계정상화와 북미수교가 실패하면서 국제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한미군사훈련을 연기해서 북한을 안심시켰고, 북한에서도 ‘비핵화가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말을 13년 만에 다시 꺼내면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남북 합의문에 비핵화 조항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이제 본인들이 얘기한대로 체제안전보장이 된다면 핵을 가질 이유가 없다. 핵을 포기하고 정상국가의 길을 걷기로 했다면 그 모든 수순이 이해가 된다.”

▲ 지난달 28일 전북일보사에서 백성일 전북일보 부사장 주필과 정동영 의원이 대담을 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조현욱 수습기자
▲ 지난달 28일 전북일보사에서 백성일 전북일보 부사장 주필과 정동영 의원이 대담을 하던 중 환하게 웃고 있다. 조현욱 수습기자

-미 정부는 북한에 대해 여전히 강공모드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대화론자’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경질하고 ‘대북 매파’인 마이크 폼페이 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국무장관으로 지명한데 이어, 백악관 안보사령탑에 볼턴 전 대사를 낙점했다. ‘전쟁 내각(war cabinet)’을 완성했다는 지적이다.

“그렇게만 볼 수는 없다.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내각을 짠 것으로 판단한다.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볼턴을 만난 적이 있다. 강성파라는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볼턴은 ‘북한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동맹국인 남한이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일은 없다’고 못 박았다. 나름의 원칙과 기준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경험도 풍부했다. ‘선제공격’이라는 극단의 상황이 발생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에서 남한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재정립이 필요해 보인다.

“가장 핵심적인 말이다. 북미 간의 관계도 적대적이지만 남과 북은 이중적 관계이다. 통일을 향해 함께 가야 할 대화상대이면서, 동시에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적대적 상대이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의 과제는 이 이중적 관계를 해소하는 것이다. 예컨대 1972년 동서독이 기본조약을 통해 친구 관계로 전환하면서 먼저 통행 협정을 했다. 그런 길을 트는 계기가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열려야 한다. 이와 함께 남한은 북미정상회담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사이에는 극도의 불신이 있다. 그래서 중간에 보증인이 필요하다. 그 역할을 맡을 국가는 바로 남한이다. 남한이 현명한 보증이 돼서 북한의 ‘비핵화’, 미국의 ‘북한체제 안정보장’ 카드를 이끌어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비핵화, 북한은 체제안정보장과 시장경제전환을 이룰 수 있다.”

-최근 한반도의 분단을 둘러싼 다자관계에서 ‘제팬 패싱’, ‘차이나 패싱’등의 신조어가 나오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다원적인 역학관계를 고려했을 때 이런 부분들은 경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 삼국지를 여러 번 써야 한다. 우선 남한-북한-미국 이렇게 삼국지가 있다. 또 남한-북한-중국. 남한-미국-일본, 남한-북한-러시아 관계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경우의 수를 따지면 3자 회담을 한 6개 정도 해야 한다. 삼국지만 있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의 관계가 어떻게 구축되느냐에 따라 사국지도 될 수 있고, 육국지도 될 수 있다.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지만, 단군 이래 최초로 한반도가 외교의 주역에 올라설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런 걸 보면 문재인 대통령이 운이 있는 것 같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북핵 이외에 경제협력, 이산가족상봉 등도 중요한 의제로 논의될 것같다.

“그렇다. 특히 철길을 통한 경제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남한의 수출경로는 배와 비행기 밖에 없다. 남북 분단으로 육로가 막힌 채 70년을 살아왔다. 우선 전주역부터 출발해서 평양을 지나서 압록강을 건너서 기차만 다닐 수 있게 돼도 엄청난 기회가 열린다. 이미 10년 전에 남북 정상 간에 합의한 내용으로 충분히 실현가능하다. 이는 호남 경제의 8분의 1에 불과한 전북 경제가 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골드만삭스와 보스턴컨설팅 그룹에서 남북교역 확대를 통한 경제효과와 관련한 보고서가 나왔는데, 이 보고서에는 남북이 철길로 북한과 교역을 할 경우 두 자릿수 고도성장율을 기록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북한은 베트남의 길로 가고, 남한은 고도 성장을 통해 일본경제(2040년)를 추월한다는 내용이다. 이밖에 한반도가 탈냉전, 공존의 시대로 전환하는 효과가 있다.”

-통일부 장관 시절에 만들었던 개성공단의 재가동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방금 남한의 고도성장을 전망한 보고서에도 개성공단을 사례로 들었다. 실제 산업단지 내 공장 124개 모두가 흑자 나는 곳은 개성공단밖에 없다. 현재 쫓겨난 기업들도 다시 들어가게 해달라고 줄곧 요청한다. 예컨대 매출 1조원 기업도 있다. 전북의 업체도 여섯 개나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으로 봐서는 시장경제 학습장이고, 남쪽으로 봐서는 중소기업 희망의 창구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잘 끝나면 새만금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개인적으로 영종도에서 새만금까지 해상고속도로 건설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를 신의주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신의주, 진남포, 인천, 새만금, 목포 이렇게 연결되는 고속도로가 생기면 ‘신 북방경제’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보수진영에서는 남북간 대화가 북한에게 핵개발의 시간만 벌어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남북 정상회담이 결실 없이 맹탕으로 끝난 경우 한반도의 긴장이 더 악화될 우려가 없는가.

“최근 정상회담은 실패한 정상회담 보다 성공한 정상회담이 훨씬 많다. 서로가 원하는 것이 비슷하고 절실하기 때문이다. 남한과의 북한의 교역조건, 거래 조건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데, 큰 틀에서 보면 ‘한반도의 안정’이다. 이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개최 자체가 이미 성공을 예고한다고 보고 있다. 더 좋은 점은 남북 정상회담 뒤에 북미정상회담이 배치돼 있다는 것이다. 핵심은 북미관계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갖고는 북이 동굴속에서 나와서 광장(시장경제)으로 진출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북한은 남한과 협상을 벌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이 잘 되면 국가와 전북에 번영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북의 지지없이 민주화와 남북평화체제가 있을 수 없다. 말하자면 전북은 일찍부터 DJ의 대북 포용정책에 대해 가장 확실하고 견고한 지기기반이다. 그런 점에서 남북관계의 대전환이 호남의 새로운 길과 이익에 부합하고, 새로운 발전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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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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