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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19)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⑮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자시(밤 12시) 무렵, 내궁(內宮)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여져 있다. 방안 분위기가 무거웠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어둡다. 상석에 앉은 의자왕도 그렇고 성충과 흥수, 계백, 그리고 말석에 시립한 위사장 협보의 얼굴도 납덩이같다. 방금 의자는 계백으로부터 태왕비 시녀 서진의 이야기에다 선덕여왕이 준 편지까지 읽은 것이다. 붉은 색 기둥에 달린 황초 불꽃이 흔들리고 있다. 이곳은 대왕의 침전 옆 대기실, 사방의 문은 굳게 닫혀졌지만 어디선가 바람이 새어드는 것 같다. 이윽고 의자가 입을 열었다.

 

“그랬었구나.”

 

탄식하는 것 같다. 의자가 흐려진 눈으로 성충과 계백까지를 차례로 보았다.

 

“그래서 대왕께서 어머니 기를 세워주시려고 애쓰셨구나.”

 

대왕이란 의자왕의 부친인 무왕(武王)을 말한다. 의자가 말을 이었다.

 

“신라를 복속시켜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신 이유가 이것이었다.”

 

“대왕.”

 

마침내 성충이 입을 열었다. 눈빛이 강했고 어깨가 부풀려져 있다.

 

“대왕, 연기신이 여왕의 말을 듣고 왔다지만 믿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신라 내부의 사정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비담, 김춘추의 세력을 견딜 수가 없을 것이오.”

 

그때 의자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

 

“상좌평, 그대는 신라여왕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구나. 당왕(唐王)처럼 여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대왕.”

 

당황한 성충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렇다. 의자가 부른 당왕(唐王)이란 당황제 태종을 말한다. 태종 이세민을 의자는 당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의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까지 신라가 태왕비와 왕비를 부추겨 백제의 내분을 일으켰다면 이제는 백제가 신라 왕가(王家)를 뒤흔들 차례다.”

 

“대왕, 신라인은 교활합니다.”

 

흥수가 나섰다.

 

“김춘추는 단신으로 고구려까지 다녀온 지용을 겸비한 후계자입니다. 아예 상종을 안하시는 것이 낫습니다.”

 

“태왕비와 왕비는 보내는 것이 어떨까?”

 

의자가 자르듯 말하자 방안에 다시 정적이 덮여졌다. 이 경우도 예상하고 온 것이다. 덮어놓고 보고만을 할 고관들이 아니다. 그때 흥수가 입을 열었다.

 

“대왕, 태왕비께서는 선왕이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해주시지 않았습니다.”

 

의자의 시선을 받은 흥수가 말을 이었다.

 

“그러시다가 이번에 연기신 등 첩자 무리가 색출되자 그때서야 신라여왕의 친필 서한을 내보이시며 선왕께서도 알고 계셨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흥수의 말을 성충이 받았다.

 

“대왕, 지금 태왕비 마마를 돌려보내지 마시고 신라에 세력을 굳힐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이 낫습니다.”

 

“…….”

 

“그리고 신라여왕이 어떤 복안으로 태왕비마마를 후계자로 만드실 지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과연, 그대들 말이 옳다.”

 

의자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내 어머니가 신라왕이 된다면 좋은 일이지. 선왕께서 이루지 못하신 꿈이었으니까.”

 

머리를 돌린 의자가 계백을 보았다.

 

“달솔, 네가 잡아두고 있는 그 시녀년을 놓치지 마라. 난 여기서 둘을 놓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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