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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23) 6장 해상강국(海上强國) 19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신라선에서 백기(白旗)가 올랐을 때는 3번째 화전이 갑판에 박혔을 때였다. 그것을 본 앞쪽 백제선에서 목청 큰 병사가 소리쳤다.

“모두 갑판에 나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라!”

이제 백제선은 신라선의 좌우로 50보 거리까지 다가왔는데 배 크기는 비슷했지만 2층 누각이어서 10자(3m)는 더 높았다. 누각에서 10여명의 궁수가 활을 겨누고 있다. 계백은 신라인들이 갑판 위로 모여들더니 하나씩 무릎을 꿇는 것을 보았다. 항복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 사신선(使臣船)을 잡았다. 배 안의 장졸들은 기쁨에 넘쳐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어 있다. 그때 계백의 지시를 받은 목소리 큰 병사가 다시 소리쳤다.

“무기는 모두 한곳에 모아 놓아라. 무기를 소지한 자는 가차없이 베어 죽일 것이다!”

배가 흔들리면서 신라 전선에 점점 붙여졌다. 좌우에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거리는 이제 20여보로 가까워져서 양측의 얼굴까지 다 보인다. 누각 위에 서있던 계백은 갑판에 무릎을 꿇고 있는 신라인을 훑어보았다. 2층 맨 뒤쪽에 서있는 고관(高官)의 얼굴로 시선이 옮겨졌다. 그 순간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청색 바탕에 금박을 입힌 관복 차림의 사내, 얼굴이 낯이 익은 얼굴이다. 어디서 보았던가? 그 순간 계백의 눈빛이 강해졌다. 저 해사한 용모, 짙은 눈썹과 단정한 입술, 잘 다듬은 콧수염과 턱수염, 바로 김춘추 아닌가? 그때 배가 신라 배와 부딪치면서 흔들렸다. 수군들이 익숙한 솜씨로 배를 묶고 병사들은 뱃전을 뛰어넘어 신라 배로 옮겨졌다. 앞장을 선 백용문은 장검을 치켜들고 있다. 잠시 후에 신라인은 모두 묶여서 갑판 위에 꿇려졌고 배 안의 수색까지 끝냈다. 계백의 지시에 따라 김춘추는 묶이지 않고 뒤쪽에 서있다. 바다 위에 3척의 대선(大船)이 나란히 묶여서 머물고 있다.

오후 유시(6시) 무렵, 어느덧 서쪽 수평선 위쪽에 태양이 걸렸고 바다는 은빛으로 반짝였다. 그때서야 계백이 백제선에서 신라선으로 넘어왔기 때문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거침없이 다가간 계백이 김춘추의 다섯 걸음 앞에서 멈춰 섰다. 계백이 신라선으로 넘어온 순간부터 김춘추는 시선을 주고 있던 참이었다. 김춘추는 숨까지 멈춘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계백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계백이다. 김춘추에게는 철천지원수, 대야성에서 사위 김품석을 죽이고 딸을 자결하도록 만든 원수, 거기에다 고구려에서는 고구려 관리로 위장하고 자신을 조롱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이제 당에 사신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포로로 잡혔다. 그때 계백이 입을 열었다.

“김춘추 공이 아니신가?”

“계백 공이시군.”

김춘추가 바로 말을 받는다. 눈빛이 순식간에 풀리면서 어깨가 늘어졌다. 과연 수전산전 다 겪은 신라의 기둥이다. 계백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김 공하고는 인연이 깊소.”

“과연 그렇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김춘추가 말을 이었다.

“고구려에서는 고구려 관복을 입으셨길래 고구려에 투항하신 것으로 알았소.”

“그때 신라를 고구려에 바치려고 오셨다가 일이 풀리지 않으셨지요? 지금은 당에 바치려고 가시는 길입니까?”

“계백 공이 서부 수군항장이 되셨다고 해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소.”

“과연 신출귀몰하시는 분이시오.”

그때 김춘추가 가슴에서 붉은색 비단에 싸인 서찰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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