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다 죽었어?”
놀란 풍의 외침이 청을 울렸다. 오전 묘시(6시), 왕궁의 접객소 안, 백제방에서 달려온 한솔 해두가 풍 앞에 엎드려 있다. 비를 맞고 달려온 바람에 옷에서 물이 떨어진다.
“예, 덕솔 진겸과 장덕 윤판을 포함해서 모두….”
“누구냐?”
“현장에 이것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해두가 풍 앞에 뜯어진 어깨 갑옷과 허리끈, 머리띠를 펼쳐 놓았다. 눈을 치켜뜬 풍이 어금니를 물었다. 모두 소가 가문의 운장이 박혀있는 것이다. 소가 이루카의 부하들이다.
“이놈들이.”
어깨를 부풀렸던 풍이 해두를 보았다.
“시신은 모두 수습했느냐?”
“예, 적은 한구도 남기지 않고 가져갔습니다.”
“그랬겠지.”
“덕솔 장덕 이하 시신 12구는 방의 창고에 일단 모셔 놓았습니다.”
“잠깐.”
풍이 해두의 말을 막았다.
“12구라고 했느냐?”
“예, 왕자 전하.”
“일행은 진겸 이하 12명이 아니냐?”
“예, 한명은 서문사 영내에서 피살된 것 같은데 아직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누구냐?”
“예, 예식을 주관한 예인(禮人) 동보입니다.”
“찾아라.”
“예, 왕자 전하.”
“놈들은 나를 노리고 있었다.”
“예, 그래서 덕솔 자성이 방(方)의 군사 1백명을 이끌고 소인과 같이 왔습니다.”
“어쨌든 오늘 오전에 대관식이 열릴 것이다.”
어깨를 편 풍의 두눈이 번들거렸다.
여왕의 즉위식이 열린 곳은 왕궁의 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 안이었다. 사당 안에는 백제식으로 제단이 차려졌고 백제식 관복을 갖춘 궁(宮)의 관리들이 도열해 서 있었는데 여왕이 왕좌에 앉아서 제사장인 왕사(王師)로부터 왕관과 옥쇄를 받는 것으로 끝났다. 죠오메이 왕에 이어서 여왕 고교쿠(皇極)의 시대가 된것이다. 여왕은 대관식에 백제방 방주인 풍왕좌와 왕궁 관리들만 참석시켰는데 왕실의 전통이다. 호족이나 영주들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시위이기도했다. 다만 섭정인 소가 이루카를 부르지 않은 것이 걸렸지만 대관식이 끝나자마자 여왕의 사신을 보내 통보를 했다. 여왕과 풍이 접견실에서 마주 앉았을 때는 오후 신시(4시)무렵이다. 풍이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했지만 여왕이 먼저 인사를 했다.
“왕좌께서 고생하셨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여왕께서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나는 왕위를 왕자께 물려드릴 작정이요. 그래야 정국이 안정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백제 대왕이 계신데 그럴 수는 없습니다. 허락을 받아야지요.”
정색한 풍이 여왕을 보았다.
“실은 어젯밤 백제방으로 돌아가던 덕솔 진겸 이하 10여명의 백제방 관리가 기습을 받아 몰사했습니다.
놀란 여왕이 숨을 들이켰을 때 풍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져졌다.
“놈들은 내가 백제방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던 것이지요. 내 대신 덕솔 진겸이 죽은 셈입니다.”
“누구 소행입니까?”
“현장에 소가 가문의 장식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는데 전상자를 깨끗히 거둬간 놈들이 흔적을 남긴 것이 수상합니다.”
여왕이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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