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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아침을 여는 시] 거미의 농사 - 김추리

빈 하늘을 쟁기질한다

고랑을 치고

두렁을 만들고

햇살을 찰랑찰랑 심는다

구슬비 물방울도 조롱조롱 매단다

하늘의 바늘귀를 꿰어 허공을 꿰맨다

 

아침마다 이슬 모아 은빛 줄을 닦고

먼 데서 파닥이는 작은 떨림에 긴장하는 기쁨

촘촘한 한살이가 기다림이다, 때로는

폭풍에 찢긴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하며

수없이 많은 발걸음 소리 거미줄에 얹히는 나날

 

알곡을 기다리는 기나긴 시간들

단풍잎도 익어가는 가을 마당귀에서 하늘 보면

곤혹한 밤을 털며 떠오르는 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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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살을 찰랑찰랑 심는다”에서 ‘찰랑찰랑’을 소리 내어 읽는 동안 도랑물에서 햇살이 넘실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거미줄에 매단 구슬비 물방울이 쟁기질하는 빈 하늘에 반짝거리면 별이다. 거미의 농사는 외로운 시인의 마음을 훔쳐가는 걸까. 거미줄의 떨림은 화자의 가슴에서 울려 퍼지는 진동이다. 폭풍에 찢긴 가슴을 쓸어내린다고 별 무리가 알아주랴. 그래도 거미는 허공에 농사를 짓는 삶을 터득했을 터.  -이소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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