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5 21:09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스포츠 chevron_right 스포츠일반
일반기사

[그때 그 선수의 ‘인생 2막’] 한국 배드민턴의 영웅 ‘셔틀콕 황제’ 김동문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혼합복식·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
태극마크 달고 전성기 시절 혼합복식 14개 대회 연속 우승, 국제대회 70연승 대기록
은퇴 후 캐나다 유학 마치고 모교 원광대학교에서 후학 양성하며 체육행정가로 변신

대한민국 배드민턴 역사상 유일한 2개의 올림픽 금메달.

전성기 시절 혼합복식에서 14개 대회 연속 우승 및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대기록.

전위, 후위, 공격, 수비, 네트플레이 등 모든 부문에서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로 극찬을 받았던 선수.

한국 배드민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올림픽 영웅 김동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첫 태극마크를 단 이후 올림픽을 비롯해 각종 국제·국내대회에서 우승 트로피를 무수히 들어 올리며 대한민국 배드민턴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던 김동문.

그는 현재 모교인 원광대학교 스포츠과학부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이제 어엿한 체육행정가로 변신한 김동문 부교수(45)를 만나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배드민턴, 그리고 인생 2막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은 야구를 하고 싶었던 소년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당시. /사진제공=대한배드민턴협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당시. /사진제공=대한배드민턴협회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굉장히 좋지 않았어요. 유명한 운동선수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됐지요.”

전남 곡성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 전주로 이사를 왔다. 어렸을 때부터 가정 형편이 굉장히 어려워 뭐든 쉽게 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사실 그는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공부에 취미가 없거나 공부를 못했던 것은 아닌데 유독 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그나마 많이 보고 접했던 것이 프로야구였기 때문이다.

전주진북초등학교 재학 당시 학교에는 야구부하고 배드민턴부가 있었다. 하지만 야구는 장비를 하나하나 사야하는 터라 부담이 컸다.

유명한 운동선수가 돼 돈을 많이 벌어 효도를 하겠다던 소년은 그렇게 배드민턴을 시작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드민턴 선수이자 영웅이 됐다.

 

위기를 기회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당시. /사진제공=김동문 교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당시. /사진제공=김동문 교수

나름의 운동 신경은 있었지만, 배드민턴에 있어 그의 출발은 화려하거나 주목받지 못했다.

또래보다 1년여 늦게 시작한데다 같이 운동을 했던 친구들에 비해 덩치도 작은 편이었다. 때문에 중간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숱하게 들었고, 위기도 종종 찾아왔다.

그런 그가 라켓을 놓지 않게 독려하면서 대한민국 배드민턴 영웅으로 키워낸 이는 바로 초등학교 시절 은사인 임채경 씨다. 임씨는 김동문과 하태권을 비롯해 수십명의 기라성 같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길러낸 지도자다.

김동문은 “배드민턴 라켓을 처음 손에 쥐었던 때부터 줄곧 곁에서 조언해 주시고 부모님처럼 챙겨주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특히, 배드민턴 입문 시기에는 단식과 복식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배우는데 어느 순간부터 복식 전문 선수가 돼 있었다고 했다. 실력이 뛰어날수록 단식 전문 선수로 육성하는데, 또래보다 출발이 늦고 덩치가 작았던 김동문은 사실 자연스레 복식 선수로 밀려나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단점을 상대적으로 긴 팔다리와 유연한 손목으로 커버했다. 특유의 센스와 재치 있는 플레이 스타일도 강점이었다.

그렇게 그는 복식 특화 선수가 됐고, 전성기 시절 전위나 후위, 공격이나 수비, 네트플레이 등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벽에 가까운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났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

2004년 당시 김동문 선수와 라경민 선수. /사진제공=김동문 교수
2004년 당시 김동문 선수와 라경민 선수. /사진제공=김동문 교수

고등학교 2학년을 전후해 두각을 나타내며 태극마크를 달은 그는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혼합복식에서 선배 길영아 선수와 팀을 이뤘고, 올림픽 처녀출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했다.

결승전 상대는 은퇴 후 컴백했던 당시 한국 배드민턴의 전설이라 불리던 박주봉 선수와 라경민 선수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금메달은 김동문·길영아 조의 몫이 됐다.

이후 김동문은 남자복식에서 하태권과, 혼합복식에서 라경민과 짝을 이뤄 두 영역 모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특히 혼합복식에서는 전성기 시절에는 14개 대회 연속 우승, 국제대회 7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당시. /사진제공=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출전 당시. /사진제공=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자복식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기까지 숱한 경기 중에서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부푼 꿈을 안고 시드니에 갔었는데, 혼합복식이 먼저 8강에서 떨어지면서 위기감이 찾아왔던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이미 금메달을 따서 군대가 면제된 상황이었지만, 파트너였던 하태권 선수는 3등이라도 꼭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김동문 선수와 하태권 선수. /사진제공=김동문 교수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김동문 선수와 하태권 선수. /사진제공=김동문 교수

당시 김동문·하태권 조는 4강에서 인도네시아 팀에 패하고 3·4위전에서 말레이시아 팀을 이겨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굉장히 집중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걱정과는 달리 손쉽게 이기긴 했지만, 하태권 선수는 너무 긴장을 했는지 발이 잘 안 떨어지는 것 같았어요. 처음부터 금메달에 대한 열망과 그에 따른 부담, 올림픽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될 수도 있단 생각 등이 맞물리면서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굵은 눈물방울이 막 흘렀죠.”

 

국민 영웅, 이제는 땀 흘리며 운동했던 선배로서 강단에 서다

김동문 교수
김동문 교수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그는 방송 해설위원을 잠시 맡았다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났다. 대학 강단에 서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선택이었다.

“사실 은퇴 이후 지도자의 길을 걷든 대학교수가 되든 어학능력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 유학을 떠났고, 이후 고심 끝에 대학교수의 길을 택했지요.”

여러 갈래의 길 앞에 서 있을 당시, 주위에서 지도자가 돼 달라는 요청과 권유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체육행정 전반에 걸쳐 잘못된 부분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후배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비단 배드민턴이 아니더라도 운동을 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교수가 아니라 땀 흘리며 운동했던 선배로서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한 조언을 해 줄 수 있다는 점이 있고, 다른 측면에서 보면 사실상 선수 양성이 전부인 지도자의 삶과는 달리 체육행정 측면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선택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지금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학생복지처 부처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대외적으로 체육회나 협회 등의 경기력향상위원이나 공정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나아가 배드민턴 관련 아시아연맹이나 세계연맹 등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 중이다.

그렇게 대학교수로서, 체육행정가로서 인생 2막을 열고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김동문.

그는 “전북은 내로라하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들을 숱하게 배출해 낸 배드민턴 우수 DNA 보유지역”이라며 “오는 2023년 세계선수권 대회 등 전북이 배드민턴의 메카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민 여러분들께서 자긍심을 갖고 배드민턴을 즐기셨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때 그 선수의 ‘인생 2막’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스포츠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