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장편소설 몇 권쯤의 사연이 있다. 그의 삶이 특히 그렇다. 그는 아물 수 없는 상처들의 의미를 추적하며 한 생을 살았다. 한(恨), 그 자체를 자기 삶으로 여기며, 우리 삶의 그늘에 드리워진 애달프고 응어리진 마음을 달래고 어루만졌다. 문학평론가 하남(何南) 천이두(1929∼2017).
“도피할 수도, 망각할 수도 없는 것을 한이라고 할 때, 그 한과 익숙해지면서 그 한을 다스리며 살아가는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 한국인으로서 자아를 정립하는 길을 찾을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 드리워진 모호한 세계, 상실과 좌절과 원망과 한탄의 삭임 속에서 아련하게 피어나는 세계. 원통하고 기막힌 일들을 ‘기똥차게’ 풀어줄 한의 미학을 찾아 나선 그는, 한을 넘어서는 길을 세심하게 살펴 들려주었다. 원한에서 한탄으로, 한탄에서 체념으로, 체념에서 삭임으로, 삭임에서 화해로, 화해에서 지혜로 이어지는 상생. 민족의 한을 기록하는 일은 묵은 시대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창조하는 길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전북대학교와 원광대학교 강단에 선 그는 뚜렷한 학문 세계를 추구하며 학자의 책무에 충실했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못지않게 후학과 어울리기를 즐겼다. 그에 대한 깊은 신뢰는 문학평론가와 판소리연구자, 교수, 소설가, 발행인, 문화예술단체 수장 등의 권위에 기대 붙여진 허명이 아니었다. 시대의 진실을 바라보는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과 논리의 타당성, 그리고 판소리 ‘쑥대머리’와 ‘군사설움’의 흥을 아는 인간적인 멋 때문이었다. 그는 1980년대 혼란스러운 시국에도 옳은 일은 강하게 주장했고 그른 일은 어떤 압력에도 끝내 굴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우리는 숱한 의혹의 오리무중을 겪으며 살아왔다. 그런 의혹의 오리무중이 세월이 흐를수록 시간의 이끼를 뒤집어쓴 채 민족사의 바른길을 곳곳에서 가로막고 있다. 올바른 일에 대한 국민적 냉소주의와 미래에 대한 집단적 허무주의는 여기서 온다. 이런 모든 병적인 요인은 이제 제거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공명정대한, 정의와 진실이 일월(日月) 같이 살아나는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천이두는 삶을 작품에 투영하는 단순한 증언자나 기록자가 아니라 특별하고 내밀한 삶의 진실을 파헤치는 연구자다운 연구자, 작가다운 작가였다. 자신의 문학을 일으킨 텃밭의 소중함을 알고,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며, 고유한 것을 찾아 특화했다. 정의와 평등, 균형과 조화가 어느 때보다 서러운 지금, 천이두의 삶과 시대 의식과 문학적 관심과 비평 세계를 다시 새기고 널리 알리는 일은 그래서 더 절실하다.
김미영•김병용•김영미•문신•박태건•서철원•임명진•최동현•현순영 등 후배 연구자들이 웅숭깊은 그의 비평 세계를 되짚어본 『천이두 다시 읽기: 한을 넘어 비평을 넘어』(모악•2022)는 긴 호흡으로 이어질 ‘추앙’의 바른 시작이다.
이런 책은 곁에 두는 것만으로도 삶을 다잡는 든든한 벗이 된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했다. 전북의 역사와 설화, 인물과 언어, 민중의 삶과 유희, 흥과 콘텐츠를 소재로 무대극 집필에 힘을 쏟으며,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와 인문서 『꽃심 전주』 『전주, 느리게 걷기』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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