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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예수는 사기꾼이다? - 프란시스 피카비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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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피카비아, 고무/사진=bahasa wiki

그는 지독한 망나니에 변덕스럽고 돈을 물 쓰듯하며 자랐다. 그러나 그는 화가로서의 천품을 타고난 것인지 불과 15살에 그린 그림 하나를 아버지가 몰래 살롱전에 출품하여 그것이 전시장에 걸리고 촌평까지 받았으니 대단한 성과였다. 

어디 그뿐인가. 돈이 떨어지자 자기 아버지가 수집한 그림 중에서 3점을 묘사하여 진품과 바꿔치기 한 후 진품을 팔아 용돈으로 써도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니. 화가로서의 재능은 타고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18살의 나이로 남의 유부녀와 스위스로 사랑의 도피 행각을 하고 나서 아버지의 도움이 끊기자 호숫가의 조약돌을 그린 풍경화를 그려 몽블랑 역에서 기념품으로 팔아 꽤 많은 생활비를 충당할 수도 있었다. 

28살까지는 얌전하게 인상주의식의 그림을 그려 오스만화랑에 넘기니 물질적인 애로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타고난 보헤미안 기질이나 외조부의 영향, 또는 아폴리네르와 브락크와 나눈 토론의 영향으로 마음은 이미 추상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른 어떤 것을 그리려 하였다.

마침내 추상 회화의 아버지라는 칸딘스키보다 1년 먼저 카우츄(고무)라는 추상화를 그려 인상주의에 대한 고별을 고하니 오스만 화랑의 지배인 당통이 그 콧대를 꺾기 위하여 그 화랑에서 소장하고 있던 피카비아의 그림 99점을 경매시장에 보내 버렸다. 

그러나 그 악의에 찬 공격도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시장에 나온 그의 그림은 곧잘 팔렸고 그의 콧대는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다. 더구나 물질적인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넘치게 갖고 있었다. 

어머니의 유산을 물려받은 것 외에도 3가지 유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숙부와 부친, 조부의 유산까지 상속 받음으로 해서 그는 20년간 남프랑스의 성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친지들의 힘으로 쿠바에 당밀을 사러 간다는 모호한 구실을 붙여 군대를 빠지고 뉴욕에 들렸다. 영어라고는 예스, 노 밖에 몰라도 불어 강사를 하며 밥벌이를 하는  뒤샹과 합류하고, 곧이어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 뉴욕의 다다를 전개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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