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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이영종 작가 - 문신 '죄를 짓고 싶은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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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죄를 짓고 싶은 저녁/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그대에게 숫자를 불러 줍니다. 그대는 숫자들을 기억했다 말합니다. 인류라면 어김없이 7±2개만 다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마법의 수’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 번에 100개를 회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라는 진화의 섭리 아닐까요. 요즘 우리의 정신은 많이 갈라지고 흩어져요. 하나에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죠. 

유리컵에 들어있는 낮에 밤의 잉크 방울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옵니다. 등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켰고, 품엔 흰밥을 짓고 있군요. 가로등 불빛이 한곳에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저물녘은 얼마나 오랫동안 한자리에 내려와 골몰을 지켜 왔을까요. 문신 시인의 시집 〈죄를 짓고 싶은 저녁〉을 그대에게 읽어 줍니다. 죄에서 crime과 sin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이 지을 죄는 아름다울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저녁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시인의 저녁은 언제일까요? “싸리나무가 꼿꼿이 일어서면 저녁이다/ 이런 날 바람은 참 건들거리고 조그마한 새들도 풀숲에 들어 기척이 없다/ 비가 내리는 것이다”(‘늦은 저녁때 오는 비’ 중). 싸리나무가 꼿꼿이 일어서는 저녁은 참, 몰두하기 좋습니다. 마음이 구부러져서는 어떤 일에 열중할 수가 없죠. 뒤숭숭해서는 더 안 되죠. “하루쯤 휘청, 하고 그대로 주저앉아도 좋으련만 누군가 묵묵하게 페달을 밟아대는 저녁”이어야 합니다(‘누군가 페달을 밟아대는 저녁’ 중). 

저녁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온종일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쓰라리지 않기 위해/ 울음보다 가볍다는 소리까지 몽땅 토해”내야 저녁이 옵니다. 잘 익은 느낌, 생각, 행동을 힘 있게 드러내야 오는 것이 저녁입니다. 시인은 저녁을 “무르익어 무너진 영혼의 잔해”라고 말합니다. 소리를 다 들어내지 않아도 오는 저녁을 바랐던 날도 있었지요. 그게 부끄러웠던 날도 있었고요, 

시인이 저녁을 맞이하는 자세입니다. “후박나무는 후박나무답게 저녁을 맞이하고/ 저녁에는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므로/ 견습생 같은 삶이라도 어설퍼서는 안” 되지요(‘신도 죄를 짓고 싶은 저녁이다’ 중). 사랑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는 풍선처럼 가볍습니다. 그럴수록 거리를 잡은 손에 힘을 꼭 주어야 합니다. 그런 저녁이면 “버스는/ 브레히트 서사극의 단역배우처럼 끄떡없이/ 골똘해”지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살아가게” 되겠지요(‘버스’ 중). 

낮엔 남을 위한 일을 하기 좋고, 저녁엔 자기를 위한 일을 하기 좋아요. 낮엔 에너지를 내보내기 좋고, 저녁엔 들이기 좋죠. 자신은 저녁을 즐기려 하고, 타인에게는 일하라고 하는 세태가 걱정스럽습니다. 이제 저물녘으로 들어가 이쁜 죄를 하나 짓기로 해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겠다는 하얀 궁리를 하는 거죠. 놀 때는 놀기로 해요. 이야기할 때는 이야기만 해요. 걸을 때는 걷기만 해요. 음악을 들을 땐 음악만 듣기로 해요. 잘 때는 뒤척이지 말고 잠만 자요, 눈을 볼 때는 눈만 보아요. 먼 곳을 생각할 땐 먼 곳만 생각해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20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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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죄를 짓고 싶은 저녁/사진=교보문고 홈페이지

그대에게 숫자를 불러 줍니다. 그대는 숫자들을 기억했다 말합니다. 인류라면 어김없이 7±2개만 다시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마법의 수’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 번에 100개를 회상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라는 진화의 섭리 아닐까요. 요즘 우리의 정신은 많이 갈라지고 흩어져요. 하나에 온전히 몰입할 수가 없죠. 

유리컵에 들어있는 낮에 밤의 잉크 방울이 미끄럼을 타고 내려옵니다. 등엔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을 켰고, 품엔 흰밥을 짓고 있군요. 가로등 불빛이 한곳에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저물녘은 얼마나 오랫동안 한자리에 내려와 골몰을 지켜 왔을까요. 문신 시인의 시집 〈죄를 짓고 싶은 저녁〉을 그대에게 읽어 줍니다. 죄에서 crime과 sin을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시인이 지을 죄는 아름다울 거라는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그의 시를 읽으면 저녁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시인의 저녁은 언제일까요? “싸리나무가 꼿꼿이 일어서면 저녁이다/ 이런 날 바람은 참 건들거리고 조그마한 새들도 풀숲에 들어 기척이 없다/ 비가 내리는 것이다”(‘늦은 저녁때 오는 비’ 중). 싸리나무가 꼿꼿이 일어서는 저녁은 참, 몰두하기 좋습니다. 마음이 구부러져서는 어떤 일에 열중할 수가 없죠. 뒤숭숭해서는 더 안 되죠. “하루쯤 휘청, 하고 그대로 주저앉아도 좋으련만 누군가 묵묵하게 페달을 밟아대는 저녁”이어야 합니다(‘누군가 페달을 밟아대는 저녁’ 중). 

저녁은 그냥 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온종일이라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쓰라리지 않기 위해/ 울음보다 가볍다는 소리까지 몽땅 토해”내야 저녁이 옵니다. 잘 익은 느낌, 생각, 행동을 힘 있게 드러내야 오는 것이 저녁입니다. 시인은 저녁을 “무르익어 무너진 영혼의 잔해”라고 말합니다. 소리를 다 들어내지 않아도 오는 저녁을 바랐던 날도 있었지요. 그게 부끄러웠던 날도 있었고요, 

시인이 저녁을 맞이하는 자세입니다. “후박나무는 후박나무답게 저녁을 맞이하고/ 저녁에는 사랑해야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므로/ 견습생 같은 삶이라도 어설퍼서는 안” 되지요(‘신도 죄를 짓고 싶은 저녁이다’ 중). 사랑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는 풍선처럼 가볍습니다. 그럴수록 거리를 잡은 손에 힘을 꼭 주어야 합니다. 그런 저녁이면 “버스는/ 브레히트 서사극의 단역배우처럼 끄떡없이/ 골똘해”지고, “버스에 탄 사람들은 압도적으로 살아가게” 되겠지요(‘버스’ 중). 

낮엔 남을 위한 일을 하기 좋고, 저녁엔 자기를 위한 일을 하기 좋아요. 낮엔 에너지를 내보내기 좋고, 저녁엔 들이기 좋죠. 자신은 저녁을 즐기려 하고, 타인에게는 일하라고 하는 세태가 걱정스럽습니다. 이제 저물녘으로 들어가 이쁜 죄를 하나 짓기로 해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겠다는 하얀 궁리를 하는 거죠. 놀 때는 놀기로 해요. 이야기할 때는 이야기만 해요. 걸을 때는 걷기만 해요. 음악을 들을 땐 음악만 듣기로 해요. 잘 때는 뒤척이지 말고 잠만 자요, 눈을 볼 때는 눈만 보아요. 먼 곳을 생각할 땐 먼 곳만 생각해요. 

이영종 시인은

2012년에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20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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