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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을 그린 화가 채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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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조선 말기로부터 항일시대에 활동한 천재화가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1850-1941)의 그림 전시가 9월 22일에 개막하여 10월 22일까지 이어진다. 전주 KBS갤러리와 미술관 솔화랑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석지 채용신의 주특기인 초상화 뿐 아니라, 화조도 병풍도 출품되어 채용신의 그림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채용신은 ‘천재화가’이다. 스승을 두고 배워 그린 게 아니라 스스로 타고난 재주를 발휘하여 그렸기 때문에 천재화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채용신은 조선 말기 망국의 시기에 초정밀묘사로 머리카락 한 올, 옷 주름 한 자락도 놓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너무 잘 그린 최고의 초상화가이다. 채용신은 선대가 벼슬을 찾아 고향 전주를 떠났기 때문에 서울 삼천동에서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직을 맡기도 하고 군수도 역임했으나 1906년에 관직을 그만두고 선대의 고향인 전북으로 내려와 익산, 김제 등지에 거주하며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일에 몰두했다. 1910년대에는 항일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낸 인물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는데 절명시 4수를 남긴 채 자결한 매천 황현, 일제에게 끌려가 대마도에서 순국한 면암 최익현, 의병장 기우만의 초상 등을 이 시기에 그렸다. 고종황제의 어진을 그린 것도 이 무렵이다. 

‘초상화’는 근대 이후에 서양화 기법으로 그린 인물화를 주로 칭하는 말이다. 전통적 용어는 ‘사조(寫照)’, ‘상(像)’, ‘화상(畫像)’, ‘영상(影像)’등이며 이런 초상화를 세로두루마리(족자) 형태로 표구해 놓은 것을 ‘영정(影幀: ※幀그림족자 정)’이라고 했다. ‘있는 그대로를 비춰서(반영하여) 그린다’는 뜻인 ‘사조(寫照)’라는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전통초상화는 고도의 정밀묘사를 강조했으므로 “털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一毫不似便是他人)”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화상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 공신이나 성현을 추모하며 그들의 덕행을 거울삼기 위해 그려 걸기 시작하면서 발생하였는데 이러한 화상은 관리를 선발하는 시험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학과목 시험인 과거제도는 당나라 때에야 시행되었고, 그 이전에는 오늘날의 면접과 같은 시험을 통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찰거(察擧)제도를 사용했다. 찰거제도 아래서 오랜 세월 인물을 관찰하고 소행을 확인한 과정을 정리한 통계자료가 바로 관상학이다. 관상학에서는 특별히 눈을 중시했다. 눈을 통해 그 사람의 정신이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상을 그릴 때에도 무엇보다 눈을 중시했다. 중국의 화성(畫聖:그림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고개지(顧愷之)는 사람의 외형을 다 그려 놓고서도 그 사람의 정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싶으면 수년 동안 눈동자를 그리지 않고 유보했다. 그는 “몸체와 얼굴을 아름답게 그리는 것은 그림의 진수가 아니다. ‘전신사조傳神寫照)’ 즉 ‘정신을 그대로 그려야만’ 제대로 그린 그림인데 그 관건은 바로 눈동자에 있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전신사조傳神寫照)’는 인물화뿐 아니라, 동양의 모든 그림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채용신은 ‘일호불사 변시타인(一毫不似 便是他人)’ 관점과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정신으로 혼을 그린 전북과 세계의 천재화가이다. 10월 22일까지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 석지 채용신」 전시 관람을 간곡히 권한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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