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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미술사상 처음으로 법정에 간 화가와 평론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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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러스킨, Dawn, Coniston/사진=wikimedia

두 번째 쟁점은 ‘무엇을 그렸느냐.’다. 풍경화라고는 하는데 “이것이 왜 풍경화냐?”, “어디를 그린 것이냐” 등의 질문이 있었다. 휘슬러는 대답한다. “이 풍경화는 크레몬 공원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어두운 공원을 배경으로 불꽃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어 또 비아냥거림의 목소리가 나온다. 어둠 속에 금물을 뿌렸던 이 그림을 보면서 “떨어지는 불꽃의 구성이나 색채, 세부적 표현들이 풍경화라기보다는 배열의 실험에 불과한 것”이라는 혹평에 다시 “이 그림은 검은색과 금색을 이용한 실험적인 작품으로 음악으로 치면 야상곡 같은 것”이라고 반박한다. 

사실 음악은 가사 없이 느리고 빠르고, 높고 낮고, 길고 짧은 곡만 듣고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 유독 미술에서만은 가사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길고 또 휘슬러가 안타까운 것은 같은 류의 그림을 그리던 터너에게는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며 본인에게는 엄격한 고전의 풍경화의 원칙을 열거하는 것이다.

결국 재판은 휘슬리의 승소로 막을 내렸다. 그러나 휘슬리는 막대한 재판 비용으로 살던 집까지 팔아야 하는 가난뱅이의 삶으로 다시 돌아갔으며, 러스킨에게는 휘슬리에게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는데 금액은 1파닝(한화 10원)의 웃지 못할 것이었다. 이 재판으로 휘슬러는 파산하고 러스킨도 우리들 말로 쪽팔려서 옥스퍼드의 석좌교수 자리에서 퇴임하였다. 그러나 휘슬러는 나중에 이 불친절한 그림, 즉 야상곡을 800기니(한화 약 1억 2천만 원)에 팔 수 있었다.

누구의 승리인가를 따지기 전에 꼭 한 번은 꼭 있었어야 할 재판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 여기에는 사진술의 발명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1839년에 발명된 다게레오 타이프로 거의 인물사진을 독식했기에 휘슬러는 잘 나가던 초상화가에서 다른 그림으로 전향을 해야 했고 풍경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실험적으로 비구상까지를 실험하였으니 미술사에서는 이득인가 실인가는 여러분이 따져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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