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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최기우 작가 - 김도수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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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표지

도수 씨 글은 시골 툇마루에서 먹던 호박죽 냄새가 난다. 헐렁하게 보여도 뭉글뭉글 입에 당긴다. 강변의 염소들이 풀 뜯는 소리와 갯버들 적갈색 꽃밥이 서서히 올라오는 소리도 들린다. 

사람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쌓이면서 ‘씨잘데기 없는 보따리’도 늘었다. 그 보따리에선 먼 산 아지랑이처럼 가물거리는 온갖 이야기가 여문다. 이가 흔들거릴 때마다 찾던 광섭이 작은어머니, 딸 셋을 낳고 아들 셋을 내리 낳은 두만이 형님, 쇠죽을 끓일 때면 아궁이에 고구마를 넣어두었다가 나눠주던 정용이 형, 자신의 목숨을 걸고 범람한 강물에 뛰어들어 이웃의 생명을 구했던 오금이네 아버지, 그날 밤 긴박한 목소리로 방송했던 지준이 형님과 조각배 짊어지고 달려오던 지순이 누나 아버지, 군대 갈 때 닭서리를 해다 바쳤던 동생 우길이, 흑백 TV를 보러 가면 “우리 껏 고구마 좀 묵어봐. 겁나게 달아. 좀 팍팍할 턴디 싱건지나 좀 내와야 쓰겄고만.” 하시던 오금이네 어머니, 들독을 단번에 어깨너머로 던져 순서 기다리던 사람들의 기를 죽이던 힘이 센 최센 어르신….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전라도닷컴·2015)에 하나둘 보따리를 풀어낸 도수 씨 마음은 “아이고, 도수네 밭에 깨가 안 나서 내가 요새 얼매나 속이 탔는지 몰라. 혹시 내가 깨 씨를 잘못 줘서 안 나는지 참말로 애타 죽겄고만.” 하면서 마음 닳던 아랫집 점순이 어머니와 같다. 사람이 사는 마을의 인연들은 임실군 진뫼마을 산허리와 골짜기에 내려앉았다가 하나씩 하나씩 섬진강 푸른 물이 되고, 징검다리가 된다. 도수 씨 글이 더 삭고 익을수록 지금은 비어 있는 집들에도 불빛 환하게 켜지는 날이 올 것이다. 

‘난 언제까지나 지금처럼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이고 싶다. 강마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얼굴에 흐르는 땀과 손발에 묻은 흙도 씻어주며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고 싶다.’(본문 중에서)

도수 씨의 보따리 매듭은 ‘우리 사우가 조깨 특이허긴 혀.’ 하면서도 말없이 사위를 품어 주던 장모님의 속 깊은 정이 있어 더 단단하다. 그런데도 도수 씨 글에서 악역은 늘 아내다. 허구한 날 고향 타령에 엄니 손맛 타령만 하는 남편이 달가울 수는 없는 일. 그러나 도수 씨가 ‘김치 하나에 밥 묵어도 이보다 배부른 상이 또 어디 있을까.’ 자랑하는 것은 모두 아내 덕이다. 그 아내는 “저기 저 동태는 얼매요? 좀 싸게 줏쇼.” 하며 동네 어르신 대접할 음식을 먼저 챙기고, 돼지 앞다리 하나는 충분히 낼 줄 안다. 냉랭하게 토라져 있다가도 못 이기는 척 어머니가 키우던 솔밭에서 솔을 베어다 양념을 넣고 무쳐서 밥상에 올리고, 수술한 동네 어머니의 ‘몸빼’에 봉투를 넣고는 잽싸게 돌아서기도 한다. 품삯 안 나오는 일들의 보람을 아는 것이다. 그래서 흐드러지게 피어 강물에 어린 ‘저 건네’ 밤나무와 감나무의 흰 꽃들은 모두 아내 덕이다. 도수 씨는 그 품에서 포근히 내린 눈 속 까치밥. 새들 먹이 주려고 남겨놓은 먹감처럼 마음만 곱다. 

‘고향사랑 기부제’가 시행되며 ‘고향’이란 단어가 부쩍 분주해진 요즘, 기부보다 더 소중한 것은 고향 마을 산마루에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을 맞으러 가는 일이다. 강물에 비친 걸음걸음이 마을을 한층 더 기운 나게 할 것이다. 

최기우 극작가는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한 이후 우리 민족의 역사와 설화, 인물과 언어, 민중의 삶과 유희, 흥과 콘텐츠를 소재로 한 집필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희곡집 『상봉』,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은행나무꽃』, 『달릉개』 인문서 『꽃심 전주』, 『전주, 느리게 걷기』 등을 냈다. 현재 최명희문학관 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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