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살아가다 보면 감당하기 벅차고 어려운 일을 맞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별을 해야 하면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옆에서 임종을 지켜도 그 슬픔을 견디기 힘들다는데, 하물며 느닷없는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되면 그 억장 무너지는 마음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손 한번 잡지 못하고, 함께한 세월이 고마왔다고 살가운 말 한마디 못하고 보내는 마음이 어땠을지 자식을 키워본 부모라면 자기 자식에 쏟았을 가슴 저미는 정성과 사랑을 생각하고 그나마 그 슬픔을 가늠할 수 있을런지요. 그래서 자식을 먼저 보내는 슬픔은 참척(慘慽)이라 하나 봅니다. 세상엔 이렇듯 설명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이 너무 많고, 우리네 삶이란게 참으로 이다지도 눈물겹습니다.
지난 10월 22일 오후 풍남문 광장에선 혁신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모여 작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을 위한 추모 음악회를 열었습니다. 너무나 애통한 죽음과 슬픔 앞에 서면 차마 무슨 위로를 줄 수 있을지 모든 언어와 단어가 무력해 지고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유족들을 진정 공감하고 위로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스스로 묻게 되고 그 큰 아픔에 다가 서기도 망설여 지지만, 그래도 음악으로나마 슬픔 속에서 힘이 되어 주고 어떻게든 아픔을 함께 하고자 하는 단원들의 마음이 모였습니다.
이날 단원들은 고인들이 즐겨 들었을 것 같은 노래들과 곡들을 엄선하여 9곡을 연주했습니다. 추모 공연이 시작하면 연주 소리는 허공으로 울려 퍼지고 곧 연기처럼 다시 흩어져 침묵 속으로 사라져 가지만, 듣는 이의 마음속에는 한곡한곡 이 음악들을 같이 했다는 기억들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연주자와 유족의 마음들이 서로 연결되고 그 아픔도 혹시 함께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일 겁니다.
사랑하던 이들이 떠나간지 이제 곧 1년, 세월이 약이라지만 유족들에게는 참 아프고도 쓰디쓴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간 떠나간 가족이 없는 매일매일 애통하고 쓰라렸던 세월을 뒤로하고 유가족들은 고인들이 즐겨 들었을 음악속에 다시 눈시울을 붉힙니다.
연주한 단원들도 이날 음악이 아무쪼록 일상을 회복하고 마음의 평온을 조금이나마 더해 주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과 정성을 모아 연주했습니다. 유족들이 이 음악들 속에 이젠 떠나간 이들과의 아름답고 해맑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고, 그 기억들을 영혼의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간직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해질녘 긴그림자를 끌고 돌아가는 유족들의 뒷모습을 보니 다시 오지 못할 누군가를 위해 연주를 하고 이를 듣는다는건 참으로 쓸쓸하고도 마음아린 일이란 생각입니다. 그래도 유족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잊지않고 연주를 해주어 감사하다고 하고,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겠다고 합니다. 아픔을 겪어야 했던 유족이 오히려 위로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배려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파하는 누군가에 먼저 손내밀고 일으켜 주려 하는 것,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도 함께 붙잡고 일어날 수 있게 하고 우리에게도 큰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듭니다.
연주회를 마친 텅빈 무대로 해질녘 노을 햇살 속에 가을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 옵니다. 집에 돌아 가는 길에 다시 한번 나지막히 간절한 기도를 올려봅니다.먼저 간 고인에겐 부디 영원하고 평안한 안식이, 살아 남은 유가족들에겐 하늘의 위로와 치유가 함께 하시길.
/류창수 혁신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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