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망은 도로망, 통신망과 같은 주요 사회 기반 시설이다. 현대의 모든 산업은 전기의 안정적 공급 위에 성장하고 있으며, 가정에서도 전기가 없다면 안전한 삶을 누리기 어렵다. 한편,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은 전력 소비의 ‘블랙홀’로 불린다. 그런데 급증하는 재생에너지 수요에 맞춰 태양광, 풍력발전소를 지으려 해도 전력망이 없어서 다수의 프로젝트가 지연되고 있다. 수십 GW 규모의 새로운 전력부하와 연계할 전력망이 시급히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RE100 기업들은 제때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지 여부에 따라 대규모 투자 결정을 망설이게 되고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판이 막힐 수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지속과 기후변화 대응 문제를 동시에 타결할 수 있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핵심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다. 전북 새만금, 전남 서남권, 경북, 강원 지역처럼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서 수도권 국가첨단산업단지까지 전력을 원활히 전송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한 전력망이 촘촘히 연결되어 전력수급 안정성이 강화되면 수도권 첨단산업 기업의 지방 이전도 수월해지고, 대규모 풍력, 태양광 발전 지역은 재생에너지 특구로 성장할 수 있다. 국가 경쟁력 강화와 지역 균형발전을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 바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다.
만약 정부 계획대로 전력망이 제때 구축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전북지역은 2025년 6월 기준 5.1GW의 재생에너지가 전력망 접속을 대기 중이다. 만약 이 전력이 모두 전력망에 연계된다면 연간 수천억 원의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 효과가 발생하여 지역주민의 에너지 소득이 기대된다. 또한 전력망은 대규모 정전을 예방하는 안전장치가 된다. 태풍, 폭설, 산불과 같은 돌발 상황에도 사통팔달 전력망이 구축돼 있다면 우회 공급을 통해 정전 지역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올해 국회와 정부는 전력망 건설 관련 주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그 시행령을 마련했다.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주민과 지자체에 대한 보상과 지원제도를 담았다. 사업시행자는 국가기간 전력망 경과지 보상 조기 협의시 토지주에게 인센티브를 추가 지급한다. 지자체에는 기존 지역별 지원금의 절반을 추가 지원한다. 송변전 설비 근접지역 또는 밀집지역에는 주민직접지원사업 시행시 지역별 지원금을 가산하여 지급한다. 가공선로 경과 지자체에는 선로 길이 1킬로미터당 20억원 한도의 재정적 지원을 한다. 지역주민의 소득증대를 위해 사업시행자는 10메가와트 미만의 재생에너지 발전 협동조합 설립시 행정적 지원과 전력계통 연계 비용 및 인허가에 관한 지원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력망 적기 건설은 주민, 지자체, 정부, 한전이 상호신뢰를 기반으로 협력할 때에만 가능하다. 서로의 이해를 조율하며 함께 나아갈 때 비로소 적기에 전력망을 완공할 수 있고, 동시에 지역발전도 이끌어 낼 수 있다.
세계는 이미 전력설비 투자를 대규모 확대하는 ‘전력망 슈퍼사이클’에 들어서고 있다. 우리가 지금 속도를 내지 못한다면 첨단산업 경쟁에서 뒤처지고, 재생에너지는 전력망에 접속되지도 못한 채 버려질 것이다. 이제 전력망 적기 확충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미래 전략산업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시급한 국가적 필수 과제이다.
송승호 광운대 교수·전기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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