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6-20 18:38 (토)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경제 chevron_right 건축 신문고

[건축신문고] 해외 스타 건축가만 추구…정체성 상실

“세계적인 건축가가 하면 다르다”는 한국 사회의 강한 믿음은 공공건축, 문화시설, 도시 랜드마크를 논할 때마다 해외 유명 건축가의 이름은 일종의 보증수표처럼 등장한다. 이러한 선택과 결과는 ‘국제적 위상 확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이 무한에 가까운 신뢰가 한국 도시의 경관과 건축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질문하지 않는다. 물론 해외의 저명한 건축가들—예컨대 자하 하디드, 렘 콜하스, 헤르조그 & 드 뫼롱, 노먼 포스터—이 남긴 건축적 성취는 분명 존중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그들의 작품 자체가 아니라, 이들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태도이다. 해외 유명 건축가에 대한 신뢰가 ‘선택의 기준’이 되는 순간, 건축의 본질인 맥락, 장소성, 공공성은 부차적인 요소로 밀려난다. 설계 공모는 아이디어 경쟁이 아니라 이름 경쟁이 되고, 평가의 중심은 건축적 질문이 아니라 ‘누가 했는가’로 이동한다. 2012년 9월 일본 신 국립경기장 공모전에서 영국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당선했다. 하지만 일본 건축가인 후미히코 마키가 주도하여 ‘가이엔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신 국립경기장 재사유하기라는 심포지엄을 조직하여 자하 하디드의 당선작이 역사적인 맥락을 전혀 따르지 않은 프로젝트라며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였고, 결국 재공모가 이루어지고 일본 건축가 켄고 쿠마의 목조구조의 경기장 프로젝트가 당선되었다. 한국의 주요 공공 프로젝트가 반복적으로 해외 스타 건축가에게 집중되면서, 우리의 땅과 도시는 ‘수입된 이미지’로 채워지고 있다. 해외 건축가의 설계는 종종 그들의 기존 언어를 반복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지역에 세워놓아도 다르지 않게 느껴질 이미지들을 심어놓기도 한다. 문제는 이 이미지들이 한국의 도시 맥락, 기후, 생활 방식과 충분히 조율되지 않은 채 ‘완성도 높은 오브제’로 도입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논의되고 검토되어온 한강 노들섬에 서울시는 최근에 영국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가 뉴욕에 디자인한 ‘리틀 아일랜드’의 변형된 프로젝트처럼 보이는 노들섬의 ‘소리풍경’은 ‘서울의 섬’이라는 인식보다는 ‘헤더윅의 섬’으로 간주될 만큼, 화려한 해외 명품을 얹어 놓은 듯한 형상이다. 이러한 서울시의 허세는 오랜 시간동안 시민들에 의해 만들어진 문화를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건축이 도시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 도시 위에 얹힌 장식물로 소비된 결과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일본건축가 야마모토 리켄또한 한국에도 좋은 건축가가 많은데, 외국인에게 기회를 주어서, 정작 한국에서는 한국 건축가들이 제대로 설계하고 건축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해외 건축가들에게는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있는 충분한 예산을 마련해주고, 국내 건축가들에게는 최저 공사비 내에서 주어진 규모의 건축물을 완성시켜 내야하는 엄격한 훈련 과제를 주는 이러한 태도는 결국 국내 건축가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갈 새로운 구조, 시스템, 재료, 공간 등을 실험하고 구현할 수 있는 기회조차 주지 못하게 되고, 성장과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결국 한국 건축의 침체를 초래한다. 이는 능력 부족이 아닌 신뢰의 편중에서 비롯된 구조적 결과이다. 우리의 건축가를 신뢰하지 못하는 사회의 도시는 결국 우리의 얼굴을 가질 수 없게 될 것이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6.17 17:43

[건축신문고]도면의 가치

종이 한 장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건축도면에 흔히 사용하는 A3 복사용지의 가격은 장당 몇원 수준이다. 하지만 이 빈 종이 위에 건축사의 고민과 기술이 기록되는 순간, 그 가치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해진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선들의 집합으로 보이겠지만, 그 선 하나하나에는 건물의 수명과 안전, 그리고 막대한 자산 가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도면그리는 법을 처음 배울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전달’이다. 흔히 “도면은 설계자의 언어”라고들 한다. 도면은 그림이 아니라, 현장의 수많은 기술자가 오차 없이 건물을 구현해낼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기술 설명서’라는 뜻이다. 이 설명서 한 장을 온전히 그려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기초적인 제도 기술을 익히는 데만 수개월이 걸리고, 그 후에는 현장의 용어들과 수많은 협력 업체와의 소통법을 몸소 부딪치며 배워야힌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복잡한 건축 법규를 검토하고, 전기·기계·구조 등 보이지 않는 설비들이 충돌 없이 배치될 수 있도록 조율해야 한다. 또한, 실제 시장에서 유통되는 자재의 특성을 파악하여 어떤 방식으로 고정하고 설치해야 하자가 없을지 고민한다. 수십 번의 자기 검열과 수정 과정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도면 한 장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건축사로서 실무를 하다 보면 도면이 필요한 다양한 분들을 만나게 된다. 간혹 예상 범위를 벗어난 비용에 당황하시며, “종이 몇 장 그려주는 게 뭐 그리 비싸냐” 혹은 “도면 쪼가리 하나 만드는 데 너무 과한 금액 아니냐”라고 묻는 분들을 마주하곤 한다. 그럴 때면 건축사로서 일말의 씁쓸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면 뒤에 숨겨진 막대한 노동력과 책임의 무게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도면은 단순히 거대한 빌딩을 세울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상가를 임대할 때 필요한 용도변경, 옥상이나 주차장에 설치하는 작은 비가림 시설, 밭에 놓는 농막이나 비닐하우스에 이르기까지, 도면은 우리 삶의 아주 가까운 곳에서 안전과 법적 권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누군가에게는 ‘도면 쪼가리’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숙련된 전문가들의 시간과 지식, 그리고 건축주의 꿈을 안전하게 현실로 바꾸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이제는 이 종이가 ‘쪼가리’라는 가벼운 이름 대신, ‘설계도서’로 불려지기를 바란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6.10 17:50

[건축신문고]작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한옥

오늘날 우리는 빠르고 편리한 삶을 추구하며 수많은 현대식 건축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높은 아파트와 단조로운 빌딩은 효율성과 경제성을 강조하지만, 그 속에서 점차 잃어가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던 우리의 전통 건축 문화, 한옥이다. 한옥은 단순히 오래된 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과 미적 감각이 담긴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이다. ]한옥의 특징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면 가장 큰 특징으로는 자연과의 조화에 있다. 서양식 건축물이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한옥은 자연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였다. 집의 방향을 산과 물의 흐름에 맞추고, 사계절의 변화를 고려하여 지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는 과학적이면서도 친환경적이다. 또한 한옥의 평면 구조는 ‘ㅁ자형’, ‘ㄷ자형’, ‘ㄱ자형’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평면은 가족 구성원들의 생활 방식과 지역의 기후 조건을 반영한다. 특히 가운데 마당을 두어 채광과 통풍이 잘되도록 하였으며, 가족들이 함께 생활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여 생활 공간의 기능을 나눈 점 역시 한옥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외형적으로 한옥은 부드러운 곡선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기와지붕의 곡선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우아함을 보여 주며, 처마는 햇빛과 비를 적절히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한옥의 창문과 문에는 한지를 사용하여 은은한 빛이 실내로 들어오게 함으로써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바로 한옥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구조적인 면에서도 한옥은 뛰어난 특징을 지닌다. 한옥은 못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기둥과 보, 서까래가 서로 균형을 이루어 건물을 지탱하며, 지진과 같은 충격에도 유연하게 견딜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바닥 아래에 불길과 열기를 통하게 하는 온돌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 방식이다. 재료 역시 대부분 자연에서 얻은 친환경 재료들이다. 나무, 흙, 돌, 기와, 한지 등을 사용하여 집을 짓기 때문에 자연과 잘 어우러지고 인체에도 해가 적다. 특히 흙벽은 습도를 조절해 주고, 나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은 멋을 더해 준다. 이러한 자연 재료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편안함을 제공한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한옥은 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생활의 불편함이 있다는 이유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한옥이 지닌 가치까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된다. 한옥은 단순한 옛집이 아니라 자연을 존중하고 사람 중심의 삶을 추구하던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공간이다. 우리는 한옥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작은 듯하지만 소박하고 아름다운 한옥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정신이 담긴 삶의 공간이다. 앞으로도 한옥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오래도록 보존되고 사랑받기를 기대하며 올 한 해에는 우리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한옥을 찾아가 그 멋과 가치를 직접 느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6.03 21:08

[건축신문고]자긍심의 무게, 그리고 훼손된 가치

최근 아는 인테리어 시공자로부터 아파트 발코니 확장 행위허가 신청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른 발코니 확장, 비내력벽 철거 등은 행위허가 대상이다. 2006년 1월부터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되었지만, 합법화된 것은 ‘확장 자체’이지 ‘허가 없는 확장’이 아니다. 며칠 후 시공자로부터 전국 프랜차이즈 같은 업체에 행위허가 신청을 맡겼다는 답이 왔다. 무슨 얘기인가 싶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행위허가 전문 업체들이 ‘전국 어디서든 가능’이라는 문구를 내걸고 있었다. 행위허가, 방화판, 유리, 입주민동의서, 승강기 보양 등이 하나의 상품처럼 묶여 있었고, 엄연한 법적 절차인 ‘행위허가·신고’가 마치 인터넷 쇼핑몰의 최저가 검색 대상이 된 듯했다. 그러면서 붙인 한마디는 “건축사님은 너무 비싸다”였다. 전국 단위로 박리다매를 내세우는 업체들의 가격에 맞춰, 지방에서 묵묵히 현장을 지키는 우리에게 “왜 이렇게 비싸냐”는 원성이 돌아올 때면 건축사로서 쌓아온 자긍심에 깊은 상처가 된다. 더 참담한 것은 현장의 풍경이다. 구조 안전을 검토하고 도면을 그려 적법성을 증명하는 전문 업무가, 시공사 하청업체의 ‘엘리베이터 보양비’와 한데 묶여 견적서의 한 줄로 전락하고 있다. 승강기 바닥을 덮는 합판 조각의 단가와, 건물의 구조 안전을 검토하고 법적 책임을 지는 건축사의 기술료가 동일 선상에서 합산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몇 년 전 건설업체의 설계 겸업 허용 건의에 건축계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알게 모르게 외면해온 부분에서 이미 건설사의 하청업체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축사는 ‘대행업자’가 아니다. 우리는 공간의 질서를 바로잡고, 불법과 위법 사이에서 안전의 경계선을 긋는 전문가다. 건축사의 도장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책임의 무게이며, 결코 서비스 품목이 아니다. 공공발주사업에는 설계 및 감리대가 기준이 있고, 민간사업에도 업무대가기준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는 ‘1식’으로 표현되는 대가가 명확하지 않은 업무들이 있다. 행위허가·신고 업무가 그렇다. 협회 차원에서 이러한 업무에 대한 표준 업무대가를 마련하고, 지나치게 낮은 단가로 시장을 교란하지 않도록 자정과 홍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해나가야 한다. 비록 시장의 물결이 박리다매와 편의주의로 흘러갈지라도, 건축사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자부심만은 결코 헐값에 넘기지 않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긋는 선 하나, 우리가 찍는 도장 한 번에 담긴 ‘사람을 향한 안전’이라는 가치는 그 어떤 최저가 견적서로도 살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5.27 17:52

[건축신문고] 설계변경에 따른 설계비 조정 필요성

건축물 시공 과정에서 설계변경은 단순한 도면 수정이 아니라, 건축물의 안전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구조변경과 에너지 절약 계획이 포함된 경우에는 외부 전문기관 검토와 인허가 절차, 감리 비용 등 외부비용이 발생하며, 동시에 설계사무실 내부에서도 추가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비용은 단순한 청구가 아니라, 건축물의 품질과 발주자의 장기적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정당한 투자라는 점에서 그 타당성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 첫째, 외주비용 및 설계사무실 인력비용의 불가피성이다. 구조변경과 에너지 절약 계획은 외부 전문기관 검토, 인허가 절차, 감리 비용 등 외주비용을 수반한다. 이는 법적 · 행정적 절차를 충족하기 위한 필수 비용으로, 단순한 추가 청구가 아니라 정당한 사업 수행 비용이다. 동시에 설계사무실 내부에서도 변경 허가를 위해 추가 인력을 투입해야 하며, 이는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구조 · 설비 · 전기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다시 투입되어 도면을 수정하고 검토해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설계비 증가를 초래한다. 이러한 인력비용은 설계변경을 원활히 수행하고 법적 절차를 충족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으로, 발주자와 시공자 모두에게 합리적인 보호 장치가 된다. 둘째, 에너지 절약 계획 반영의 중요성이다. 에너지 절약 계획은 건축법과 관련 규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반영해야 하는 요소로, 단열 성능 강화, 고효율 설비 적용, 친환경 자재 도입 등을 포함한다. 이는 초기 설계와 다른 검토 과정을 필요로 하며, 설계비 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은 단순한 추가 지출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운영비 절감과 친환경 인증 확보를 통해 발주자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탄소 저감과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긍정적 효과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셋째, 구조적 안정성 확보의 필요성이다. 구조변경은 건축물의 안전과 직결되는 사항으로, 기존 구조계산을 다시 검토하고 전문 엔지니어링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는 단순히 도면을 수정하는 수준을 넘어, 건축물의 하중 분산, 내진 설계, 시공 방법의 적합성 등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추가 인력과 전문 기술이 투입되며, 설계비 증가의 정당한 근거가 된다. 건축물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비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며, 이를 소홀히 할 경우 향후 더 큰 위험과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설계변경에 따른 변경 설계비와 외주비 · 인력비용 발생은 단순한 추가 비용이 아니라, 법적 준수 · 기술적 안전 · 지속가능성 확보 · 분쟁 예방을 위한 타당하고 불가피한 비용이다. 발주자는 이를 통해 건축물의 품질과 장기적 가치를 보장받고, 시공자는 책임을 명확히 하여 원활한 사업 수행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설계변경에 따른 설계비 조정은 정당하며, 오히려 건축물의 성공적 완성과 미래적 가치를 위한 필수적 조치라 할 수 있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5.20 18:21

[건축신문고] “안전은 효율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최근 국토교통부에서는 대규모 사업으로 다수의 건축물을 해체하는 경우에는 인허가 신청 및 처리, 감리 지정 등에 합리화라는 명목하에 건설사업관리자에게 해체공사감리자로 우선하여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건축물관리법 하위법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한 바 있다. 이는 철거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대규모 공공사업에서 건설사업관리자에게 둘 이상의 건축물을 해체하려는 경우 해체공사 감리를 우선 맡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이다. 행정 효율만 보면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행정 절차의 변경만은 아니다.우리는 이미 2021년 광주 학동에서 철거중이던 건물이 도로쪽으로 무너져 시내버스를 덮치고, 무고한 시민 1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완벽하지는 않겠으나 안전관리와 감리제도가 강화되어, 현재에는 일정 수준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었다. 이번 개정안은 공공건축물 등에 수반되는 해체공사, 재개발·재건축 아파트 공사 등 대규모 해체공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해체감리는 행정절차가 아니라 안전장치다. 해체공사는 단순히 건물을 부수는 철거가 아니다. 해체공사에는 해체계획서, 구조안전 검토, 현장 감리가 필요하다. 줄여야 할 것은 반복되는 행정절차이지, 현장의 위험을 확인하는 감리가 아니다. 감리는 독립되어 있어야 한다. 감리는 공사를 빨리 진행시키는 역할이 아니라, 위험하면 멈추게 하는 책임과 역할이다. 그러나, 기간과 공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우선시해야 하는 건설사업관리자에게 해체공사감리자로 우선하여 지정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면 해체공사감리자의 독립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고,해체공사감리자는 더 이상 견제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절차다. 제도를 바꿀 때는 해체공사에 대한 계획과 감리를 수행하는 현장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가인 건축사의 의견을 먼저 들어야 한다. 사고가 나면 현장 감리자와 건축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를 건축사와의 충분한 협의없이 바꾼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소규모 건축물의 민간 해체공사에는 엄격한 감리 기준을 적용하면서 대규모 공공사업에는 예외를 두는 것은 이중 잣대이자 건설사업관리자에 대한 특혜이다. 공공사업이라고 사고 위험이 낮은 것은 아니다. 한 감리자가 여러 건축물의 해체공사를 동시에 맡는 것도 우려스럽다. 여러 현장을 한 사람이 꼼꼼히 보기 어렵다면 감리는 현장 확인이 아니라 서류 확인으로 흐를 수 있다. 국민의 안전을 말하는 정부라면, 해체공사 현장의 위험을 감시하는 눈부터 지켜야 한다. 공공주택 공급도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의 생명과 맞바꿀 수는 없다. 국토부는 해체감리의 독립성을 흔드는 개정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5.13 18:36

[건축신문고] ‘위험한 침묵’, 이제는 응답해야 할 때

최근 우리 사회는 급격한 도시화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어떻게 잘 유지하고 관리할 것인가’라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먹고 자고 일하는 ‘건축물’의 노후화 문제는 여전히 개인의 영역이나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되곤 한다. 특히 전북 특별자치도의 경우, 구도심을 중심으로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 비중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에 대한 경각심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건축물도 생명체와 같다. 시간이 흐르면 골조가 약해지고 외벽에 주름(균열)이 생기며 내부 설비는 노후화된다. 문제는 건축물의 노후화가 매우 서서히, 그리고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붕괴나 화재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천재지변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건축물이 보내온 수많은 구조적 위험 신호를 우리가 무심코 지나친 결과인 경우가 많다. 건축 전문가로서 현장에서 마주하는 가장 안타까운 상황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를 방치하여 큰 재산 피해와 인명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다. 벽면의 미세한 대각선 균열, 창문이 갑자기 뻑뻑해지는 현상, 특정 부위의 누수와 백화 현상은 건축물이 시민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구조 요청이다. 이를 단순한 미관상의 문제로 치부하고 페인트칠로 가리는 임시방편은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부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안전은 비용이 아닌 투자’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노후 건축물의 점검과 보수·보강을 단순한 지출이나 매몰 비용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이는 건축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자산 가치를 유지하는 동시에, 무엇보다 인명 피해를 예방하는 가장 확실한 대비책이기 때문이다. 둘째, 전문가에 의한 정기적인 ‘정밀 검진’을 생활화해야 한다.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적 결함이나 내진 성능 저하 등은 건축사나 구조기술사의 진단을 통해서만 정확히 파악될 수 있다. 특히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노후 건축물 안전 점검 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다만 이러한 사업은 지역별로 운영 여부와 지원 범위에 차이가 있는 만큼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셋째, 지역사회의 공동 대응이 중요하다. 노후 건축물은 인접 건물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치며, 구도심의 밀집 주거지에서는 개별 건축주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각 시·군은 안전 점검 예산을 확대하고, 노후 건축물 데이터베이스를 정밀하게 구축해 상시적인 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안전한 도시는 화려한 마천루가 아니라, 낡은 골목 속 오래된 건축물들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 집 벽면에 생긴 작은 균열 하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곧 안전의 출발점이다. 건축물이 보내는 ‘침묵의 신호’에 우리가 응답할 때, 비로소 전북은 보다 실질적인 안전 도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5.06 18:43

[건축신문고] 건축 유리의 역사적 변천과 기술적 진화

인류가 건축에 유리를 처음 사용한 것은 로마 시대였다. 당시의 유리는 오늘날처럼 투명하고 매끄럽지 않았다. 틀에 녹은 유리를 붓는 ‘캐스트 글라스’ 방식은 불투명하고 두꺼워 외부를 보기보다는 희미한 빛을 들이는 정도에 그쳤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유리는 종교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큰 판유리를 만들 기술이 부족했던 장인들은 작은 조각을 납선으로 이어 붙여 스테인드글라스를 완성했다. 고딕 성당의 창을 수놓은 이 빛의 예술은 기술적 한계를 오히려 경외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근대에 이르러 유리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크라운 유리’ 공법은 얇고 투명한 유리를 가능하게 했지만 크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 한계를 넘어선 사건이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였다. 수정궁(The Crystal Palace)은 철골 구조와 규격화된 유리를 결합해 벽을 대신하는 투명한 건축을 선보였다. 조립식 공법으로 9개월 만에 완공된 이 건물은 커튼월의 시초이자, 석조 건축의 시대가 저물고 철과 유리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린 상징이었다. 20세기 중반에는 필킹턴의 플로트 공법(Float Process)이 등장했다. 녹은 주석 위에 유리액을 띄워 굳히는 방식은 별도의 연마 없이도 평평하고 깨끗한 대형 판유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했다. 커튼월과 결합한 이 기술은 마천루의 탄생을 이끌었고, 도시 풍경을 완전히 바꾸었다. 오늘날 건축 유리는 단순한 창을 넘어선다. 로이(Low-E) 유리는 냉난방 효율을 높이고, 접합 강화 유리는 초고층 빌딩의 안전성을 확보한다. BIPV 유리는 건물 외벽을 발전소로 바꾸며, 스마트 글라스는 투명도와 온도를 스스로 조절해 에너지 절감을 가능하게 한다. 투명 OLED와 AR 윈도우는 유리를 정보 전달 매체로 확장시켜, 건축이 곧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되는 시대를 열고 있다. 유리의 역사는 곧 인류가 빛과 공간을 제어해온 방식의 역사다. 단순히 어둠을 밝히던 도구에서 출발해, 이제는 에너지를 생산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능동적 매체로 진화했다. 건축 유리는 더 이상 건물의 재료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도시의 미래를 비추는 투명한 스크린이자, 탄소 중립 시대를 이끄는 핵심 소재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4.29 19:58

[건축신문고]“건축은 관계속에 형성되는 작업”

건축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완성되는 작업이다. 설계는 건축사와 클라이언트가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조율해가는 긴 대화의 과정이며, 그 과정의 깊이가 곧 건축의 완성도를 좌우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과정이 충분히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현장에서 경험하는 많은 프로젝트에서, 건축사는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전문가라기보다 정해진 요구를 빠르게 구현하는 역할로 한정되곤 한다. 이미 방향이 결정된 상태에서 설계가 시작되고, 건축사는 그것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때로는 “이렇게 해달라”는 요청이 설계의 출발점이 아니라 결론처럼 제시되기도 한다. 이 경우 설계는 선택의 과정이 아니라 확인의 과정으로 축소되며, 건축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하지만 건축에서 중요한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질문에서 시작해 대화를 통해 구체화되고, 때로는 기존의 생각을 수정하거나 뒤집는 과정을 거쳐 비로소 형태를 갖춘다. 설계 초기 단계에서의 충분한 탐색과 시행착오는 비효율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한 번의 스케치로 결정된 안보다, 여러 번의 수정과 고민을 거친 안이 더 설득력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 과정을 줄이거나 생략하려 하고, 빠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설계 기간은 가능한 한 짧게 설정되고, 검토 과정은 최소화되며, 변경은 비용과 시간의 낭비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기보다,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선택으로 수렴하게 된다. 결국 건축은 점점 더 비슷해지고, 공간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도 단순해진다. 이러한 태도는 단지 하나의 프로젝트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반복될수록 건축 전반의 수준과 다양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시도는 줄어들고, 건축사는 점점 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반대로 설계 과정을 하나의 탐색으로 받아들이고, 서로의 생각을 열어두는 태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예상하지 못했던 해법과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건축사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공간의 방향을 제안하고 가능성을 확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이 역할은 클라이언트와의 신뢰 속에서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 설계의 각 단계는 결과를 위한 절차가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이 과정을 충분히 거쳐야만 건축은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물론 현실적인 제약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산과 일정, 법적 기준 등은 언제나 설계의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 속에서도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는지는 분명 결과에 차이를 만든다. 같은 조건에서도 전혀 다른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은 결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 쌓인 수많은 대화와 고민, 그리고 선택의 과정이 공간의 깊이를 결정한다. 이제는 속도와 효율만을 앞세우기보다, 과정을 존중하는 문화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결국 우리 도시와 일상의 풍경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길이 될 것이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4.23 13:53

[건축신문고] 규모보다 밀도가 중요하다

지방 소멸이라는 표현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통계는 이미 다수의 중소도시와 군 단위 지역이 지속적인 인구 감소 국면에 진입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인구가 줄어드는 속도에 비해 공공건축의 공급 속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종 생활SOC, 문화시설, 체육시설, 복지시설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확충되어 왔으나, 완공 이후의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이용률 저하와 유지관리 부담 증가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동일 생활권 내에 유사 기능의 공공시설이 중복 배치되어있고, 시간대별·요일별 가동률은 현저히 낮다. 공간은 존재하지만 프로그램은 채워지지 못하고, 관리 인력과 예산은 분산된다. 건축물은 준공 순간 완성되지만,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때 문제는 건축의 양이 아니라, 건축의 밀도다. 여기서 말하는 밀도는 단순한 건폐율이나 용적률의 개념이 아니다. 동일한 연면적 안에 얼마나 다양한 기능과 활동이 중첩되고, 얼마나 유연하게 전환 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지방 소멸 시대의 공공건축은 ‘더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첫 번째 전략은 기능의 복합화다. 행정, 문화, 교육, 복지 기능을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동선과 공간구조 자체가 프로그램의 교차를 유도하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낮 시간대에는 행정 민원 공간으로, 저녁에는 주민 모임 공간으로 전환되는 구조, 평일에는 교육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주말에는 문화 활동 공간으로 전환되는 구조와 같이 시간에 따라 기능이 변환되는 공간 체계가 필요하다. 두 번째는 가변성이다. 지방의 인구 구조는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특정 세대를 위한 시설이 수년 내 이용 대상을 상실하는 사례도 발생한다. 고정된 공간구성과 특정 단일기능에 종속된 구조는 사회적 수요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빠르게 노후화된다. 이에 따라 가변형 공간구성과 구조적 유연성을 전제로 한 설계는 변화하는 지역 여건과 인구 구성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공간 계획과 동시에 운영 주체, 수익 구조, 프로그램 기획,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계 모델이 함께 설계되어야 한다. 건축은 물리적 그릇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지역 활동을 조직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해야 한다. 지방 소멸 시대에 공공건축은 오히려 작은 면적 안에서 얼마나 높은 활용도를 구현하는지, 제한된 예산 속에서 얼마나 지속 가능한 운영 체계를 마련하는지가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이는 건축사의 역할 변화를 요구한다. 건축사는 공간뿐만 아니라 지역의 인구 구조와 재정 여건, 사회적 네트워크를 분석하고 이를 공간 전략으로 통합하는 기획자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방의 공공건축은 이제 ‘무엇을 더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공간을 어떻게 더 밀도 있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규모의 시대는 저물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경쟁력은 활용도 높은 공간의 밀도와 운영을 전제로 한 설계 역량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4.15 19:09

[건축신문고]“지역의 기억 정리하는 건축사”

전라북도의 많은 마을은 지금도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인구는 줄고, 집은 비어가며, 한때 마을의 중심이던 골목과 상점은 기능을 잃어간다. 이 변화는 급격하지 않기에 쉽게 지나치기 쉽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익숙했던 풍경은 더 이상 현재가 아닌 과거가 되어 있다. 지역의 변화는 늘 조용하게 진행되며, 그 과정에서 공간은 가장 먼저 흔들린다. 우리는 흔히 낡은 공간을 ‘정리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불편하고 오래되었으며, 새로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 공간이 존재해온 시간과 그 안에 쌓인 기억까지 함께 고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지역에서의 건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과연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건축은 흔히 새로 짓는 일로 인식된다. 그러나 지역을 다루는 건축에서 신축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때로는 고치는 일이고, 때로는 비워두는 일이며, 때로는 쓰임을 바꾸는 일이다. 이 모든 판단의 기준에는 지역이 지나온 시간이 자리 잡고 있다. 건축사는 단순히 형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시간을 읽고 현재의 삶에 맞게 재구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농촌의 빈집이나 오래된 상가는 기능을 잃었지만,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누군가 살았고, 모였고, 장사를 했던 흔적은 여전히 공간에 남아 있다. 이 기억을 무시한 채 모두 철거하고 새로 짓는 방식은 빠르고 명확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종종 오래 사용되지 못한다. 지역의 생활과 연결되지 못한 공간은 결국 다시 비어가기 때문이다. 공공건축 또한 마찬가지다. 주민공동이용시설이나 생활거점 공간은 규모나 외형보다 지역과 맺는 관계가 중요하다. 이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모였는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왔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면, 새 건물은 낯선 시설로 남는다. 건축사는 이 간극을 조율하는 사람이다. 과거의 사용 방식과 현재의 요구를 연결하고, 기억을 현재의 언어로 번역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건축사가 기억을 정리한다는 말은 과거를 그대로 보존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것을 남길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다. 어떤 기억은 남기고, 어떤 기억은 정리하며, 어떤 부분은 과감히 바꾸는 일이다. 이 선택이 쌓일수록 지역의 공간은 무작위로 변하지 않고, 나름의 흐름을 갖게 된다. 결국 건축은 ‘무엇을 더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묻는 작업이다. 지역의 기억을 존중하면서도 현재의 삶을 담아낼 수 있을 때, 공간은 비로소 오래 사용된다. 건축사는 도면을 그리는 기술자이기 이전에, 지역의 시간을 정리하는 사람이다. 그 조용한 정리가 반복될 때, 지역은 사라지지 않고 다음 모습으로 천천히 이어진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4.09 10:29

[건축신문고] 시민 없는 건축문화제

건축문화제는 건축을 시민과 나누기 위해 열리는 행사다. 사람은 누구나 건축물 안에서 살고, 일하고, 쉬고, 이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을 시민과 나누는 일은 취향이 아니라 공익의 문제다. 좋은 건축이 무엇인지, 도시 환경이 왜 중요한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공간을 어떤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건축이 전문 영역에 머물지 않고 시민의 삶 가까이 다가갈 때 건축문화제는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지금의 건축문화제를 돌아보면 아쉬움이 크다. 전시는 열리지만 시민의 모습은 드물다. 패널은 서 있지만 오래 머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행사는 열리지만 축제의 온기는 약하다. 문제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장소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건축문화제는 주로 도청 로비 같은 공공청사 공간에서 열린다. 공공행사를 열기에는 익숙한 장소지만 시민의 생활 동선과는 거리가 있다. 일부러 찾아와 전시를 보고 머물기에는 한계가 있고, 주말이면 공간은 더 조용해진다. 자연스럽게 발길이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다. 건축문화제가 진짜 문화제가 되려면 시민 곁으로 가야 한다. 도서관, 복합문화공간, 구도심 상점가, 빈 점포, 광장, 실제 건축 현장처럼 사람들이 걷고 머무는 곳에서 열려야 한다. 패널 전시만으로는 부족하다. 건축사가 설명하고 시민과 함께 공간을 걷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필요하다. 건축은 몸으로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건축문화제가 시민과 만나는 행사라면 전시 방식뿐 아니라 수상 제도 역시 시민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건축문화제의 수상은 단순한 시상이 아니라 그 지역이 어떤 건축을 가치 있게 보는지 보여주는 공적 메시지다. 그래서 심사 기준과 이유는 더 분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무엇을 평가했고 왜 이 작품이 선정되었는지 시민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수상작이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건축에 대한 사회적 대화가 된다. 시민의 관점을 반영하는 별도 장치도 필요하다. 시민공감상 같은 부문을 두거나 전시 기간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전문가의 판단과 시민의 경험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 놓일 때 건축문화제는 더 넓은 공공성을 갖게 될것이다. 건축문화제는 건축계 안의 행사로만 머물러서는 아쉽다. 해마다 열린다고 문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찾아오고, 이해하고, 질문할 때 비로소 문화가 된다. 중요한 것은 행사를 반복하는 일이 아니라 건축과 시민이 실제로 만나는 자리를 다시 만드는 일이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4.01 19:07

[건축신문고] 전주, 잠들어 있는 후백제의 숨결을 깨워야 할 때

전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개는 ‘한옥마을’, ‘비빔밥’, 혹은 ‘조선왕조의 본향’을 떠올릴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전주의 역사라는 거대한 도서관에서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역사를 간과하고 있다. 바로 후백제(後百濟)의 역사다. 서기 900년, 견훤은 완산주(현재의 전주)를 도읍으로 정하고 후백제를 건국했다. 전주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당시 후삼국 시대의 중심이자 강력한 왕권이 꿈틀대던 국제적 수도였다. 그러나 지금 전주의 도심 곳곳에 흩어진 후백제의 흔적들은 개발하면서 훼손되거나, 안내판 하나 없이 방치된 경우가 많다. 그럼 왜 지금 ‘후백제’인가? 첫째, 역사적 정체성의 확립이다. 전주가 진정한 ‘역사 문화도시’로서의 격을 갖추려면 조선시대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후백제는 우리 민족이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굴레를 벗어나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치열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를 복원하는 것은 잊힌 역사를 되찾는 일이며, 전주 시민들에게는 도시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주는 과정이 될 것이다. 둘째, 지속 가능한 문화관광 자원화다. 이미 관광객으로 포화 상태인 한옥마을에서 벗어나, 전주 구도심 전체를 후백제 유적을 잇는 ‘역사 탐방 벨트’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관광객의 체류 시간을 늘리고, 골목 구석구석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도시 재생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역사는 과거를 비추는 거울인 동시에 미래를 만드는 나침반이다. 전주가 가진 잠재력은 조선왕조에 국한되지 않는다. 1,100여 년 전 완산벌을 호령했던 후백제의 기상을 제대로 복원하는 일이야말로, 전주가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 문화 도시로 한 단계 도약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이제라도 전주시는 후백제 복원을 도시 브랜드 전략의 최우선 순위로 올려놓고,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로드맵을 그려야 할 때다. 이정상 건축사(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주)해누리 건축사사무소)

  • 경제일반
  • 기고
  • 2026.03.26 14:50

[건축신문고] 집, 삶을 담다

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삶을 담는 그릇이다. 오늘날 주거가 투자와 가격 중심으로 재편되며 ‘사는 곳’이 아닌 ‘사는 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축가 백우현은 집을 설계하는 과정이 단순한 도면 작업이 아니라 가족의 생활방식과 미래를 공간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House’가 물리적 구조를 뜻한다면 ‘Home’은 삶의 기억과 정서를 담는 보금자리라는 점에서 출발부터 다르다는 설명이다. 주거에 대한 인식 역시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마당과 흙, 나무를 떠올리던 세대와 달리 아파트 중심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는 집을 곧 아파트로 인식한다. 최근에는 주거가 단순한 거주 기능을 넘어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질을 규정하는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집의 본질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입지와 학군, 면적, 향 등 조건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고, 아파트 브랜드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주거가 인간의 삶을 담는 공간이 아니라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소비되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집의 역할은 더욱 확장됐다. 과거 잠을 자는 공간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일과 휴식, 놀이와 건강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복합 공간으로 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 ‘얼마에 팔 것인가’가 우선되는 현실은 주거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결국 핵심은 공간이 아닌 삶이다. 집은 인간이 안정을 찾고 에너지를 회복하는 최후의 보루이자, 존재의 뿌리가 되는 장소다. 건축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삶의 방식을 설계하는 행위여야 하며, 우리는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사는 것’에 더 많은 가치를 두어야 한다. AI 시대 역시 새로운 과제를 던진다. 기술이 설계를 대체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의 삶과 감성을 담아내는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집을 ‘House’로 지을 것인가, ‘Home’으로 완성할 것인가.

  • 경제일반
  • 기고
  • 2026.03.18 19:13

[건축신문고]지방소멸 시대, 건축사가 만들어야 할 새로운 공간

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무섭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인구감소는 단순히 숫자의 줄어듦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기억이 담긴 물리적 공간이 해체됨을 의미한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건축사는 이제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 건축사는 지역의 생존 전략을 세우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려내는 ‘공간기획자’가 돼야 한다. 과거의 건축이 개발 중심의 ‘채우는 것’이었다면, 지금의 건축은 달라졌다. 이제 건축사는 ‘어떻게 남기고, 어떻게 다시 쓸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해야 한다. 첫째, 유휴 공간의 재활용 또는 재해석을 통한 ‘공간의 재생’이다. 지역에 남겨진 폐교나 소규모 공공시설물은 지방소멸의 첫번째 징후이다. 많은 지자체가 오래된 보건소, 파출소 등의 유휴 자산을 철거하고 주차장으로 만드는 데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건축사는 그곳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봐야 한다. 오랜 시간 지역을 지켜온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할 복합문화공간으로 계획하거나 현대적 인테리어를 결합해 레트로 감성의 숙박시설로 재해석 할 수 있다. 이때 공간은 다시 생명력을 얻는다. 둘째, 무너진 공동체를 잇는 ‘사회적 거점’의 형성이다. 지방소멸을 가속화하는 요인 중 하나는 커뮤니티의 붕괴다. 기존의 정형화된 마을회관과 경로당에서 벗어나 건축사는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고 소통할 수 있는 ‘공유 주방’, ‘마을 도서관’ 등의 새로운 공간을 계획하여야 한다. 건축사가 고민하여 설계하는 동선 하나, 창의 크기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끈끈한 가교가 될 때 공동체는 비로소 회복된다. 셋째, 인구 구조 변화에 따르는 ‘맞춤형 정주 환경’의 구축이다.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지역의 현실을 외면한 채 대도시의 아파트 모델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은 자원 낭비일 뿐이다. 지역의 특수성과 고령층의 생활 양식을 반영한 ‘케어 안심 주택’ 등 대안적 주거 모델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실질적인 인구 유입의 요소가 될 것이다. 결국, 지방소멸 시대의 건축사는 단순히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을 넘어 ‘지역의 시간을 연장하는 사람’이다. 특히 지역건축사는 누구보다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전문가이다. 지방소멸이라는 현실앞에 지자체와 협력하여 무분별한 신축보다 지역주민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지역만의 고유한 브랜드를 구축해야 한다. 건축사의 전문성과 깊은 통찰이 정부의 정책적 지원, 그리고 주민들의 적극적 참여와 결합될 때, 소멸의 위기는 비로소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회로 전환될 수 있다. 권세란건축사 (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 / 꿈꾸는 건축사사무소)

  • 경제일반
  • 기고
  • 2026.03.11 18:41

[건축신문고] 건축 발주 문화 이대로 좋은가?

거주 목적의 개인 주택을 짓는 경우를 제외하고 영리 목적의 민간사업인 경우 건축을 상품이나 경제적 수단으로만 보는 일이 빈번하다.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발주 사업의 경우에도 건축물의 공공성 및 가치를 우선하기보다 빠른 행정 처리를 위해 급하게 발주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원인을 생각해보면 다음 몇 가지로 간추려볼 수 있다. 첫째, 최저가 가격 중심의 발주 시스템 문제! 공공 또는 민간 발주 모두 더 적은 예산으로 건물을 짓고자 설계용역 발주 단계부터 실질적인 변별력 없이 낮은 설계비를 책정하고 설계자의 아이디어 및 진행 과정에 대한 대가를 비용 절감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이다. 이는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고 공공성 및 도시 맥락을 생각하기보다 빠른 시간 내에 적은 비용으로 더 큰 면적을 만들어내는지가 능력이 되는 수익성 위주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둘째, 발주자 역량에 대한 제도적 요구가 없다. 조사, 분석, 기획 등을 거쳐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 건축에 대한 발주자의 전문적 지식 부재, 즉흥적인 판단, 주관적인 감정 등으로 인해 설계 전문가인 건축사를 발주자의 요구사항을 처리해주는 단순 업무자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건축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존중하고 발주자와 설계자의 상호 협력이 이루어져야 더 좋은 건축물과 사업 성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셋째, 설계 변경 및 업무 범위 확대에 따른 책임의 부재! 발주자의 변심 또는 사업 범위의 확대 등에 따른 설계 변경 진행시 추가 대가 지급 없이 설계 도서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다. 건축사의 전문적인 가치 노동을 인정하지 않고 당연한 서비스로 인식하기 때문에 설계자의 업무는 누적되고 이는 설계 품질의 저하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넷째, 건축사의 애매한 지위 문제! 법적으로 건축사는 설계, 감리의 책임자로 규정되어 있지만 발주자에게 설계안을 강제할 권한이 없어 책임은 건축사에게 요구되고 전문성은 계약으로 무력화되어 발주자와 건축사가 상호 협력의 동등한 입장이 아닌 지시하는 상급자와 지시를 이행하는 하급자처럼 행동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하자가 발생하면 발주자의 잘못된 요구나 개입은 법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설계 건축사가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끝으로 공공건축 사업의 교육 기능 상실의 문제다. 공공으로 진행되는 건축사업조차 저가 발주 위주의 전형적인 형태가 반복되다 보니 일반 시민과 민간 사업자 등이 올바른 건축 발주 사례를 접할 기회가 적어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가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을 존중하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건축 발주 문화는 한순간에 바뀔 수 없다.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아도 사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사회 제도, 권한 없이 책임만 강요하는 법과 규정, 공공성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사회 인식 구조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랫동안 좋은 건축물을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동철 건축사(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종합건축사사무소 세림(주))

  • 경제일반
  • 기고
  • 2026.02.25 19:50

[건축신문고]좋은 공공건축은 시민과 국가 사이에 신뢰를 만든다

공공건축은 국가와 지방정부가 시민에게 제공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공공서비스다. 주민센터·도서관·학교·복지·문화시설은 일시적 정책이 아니라, 시민이 매일 반복해 경험하는 ‘국가의 물리적 얼굴’이다. 그러나 공공건축의 평가는 여전히 예산 집행 효율, 법적 기준 충족 여부에 갇혀 있다. 이 지표의 한계는 공공건축의 사회적 성능을 과소평가하게 만들고, 결국 시민의 신뢰를 깎아먹는다. 공공건축의 품질은 미관이나 상징의 문제가 아니다. 시민의 국가 신뢰는 제도 설계만으로 생기지 않는다. 일상적 경험이 누적되며 형성된다. 공공건축은 그 경험이 가장 자주, 가장 오래 발생하는 장치다. 공간의 안정성, 접근성, 머무를 수 있는 여유, 관리 수준은 공공의 역량과 의지를 시민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기준만 겨우 넘긴 공간은 단기적으로 행정 리스크를 줄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공공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동시에 떨어뜨린다. 이용률 저하, 유지·관리비 증가, 공공정책에 대한 무관심으로 되돌아오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공공건축의 퀄리티가 예산 총량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발주 방식, 설계 평가 기준, 운영을 포함한 ‘전 생애주기 관점’의 부재가 품질을 결정한다. 초기 비용 절감에 매몰되면 시간의 축을 고려하지 못한 의사결정이 장기적 비효율을 내재화한다. 반대로 품질을 생애주기 성능으로 평가하면, 설계의 완성도는 ‘추가 비용’이 아니라 ‘공공투자의 합리성’으로 바뀐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공건축은 ‘최저가’와 ‘최소 기준’이 지배한다. 최저가 중심 발주는 설계를 가볍게 만들고, 최소 기준 중심 행정은 공간의 가능성을 닫는다. ‘더 좋아질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 구조에서 좋은 건축은 행정 부담으로, 높은 수준의 설계는 관리 리스크로 오해되기 쉽다. 공공건축의 완성도를 묻는 일은 결국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지 묻는 일이다. “예산 안에서 법을 지켜 지었는가”에서 멈추지 말고, “이 공간이 공공의 삶을 책임지고 풍요롭게 하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공공건축을 비용으로만 평가하는 사회와 삶의 기반으로 평가하는 사회는 전혀 다른 도시를 만든다. 공공건축의 수준은 국가가 시민과 맺고자 하는 관계의 수준이며, 그 관계는 도시 곳곳에 선 공공건축의 질로 분명히 읽힌다. /채가을 건축사 (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 가을 건축사사무소)

  • 경제일반
  • 기고
  • 2026.02.18 18:29

[건축신문고] 아쉬움이 남는 건축물

건축 설계를 하다 보면, 어린 시절 보았던 건축물들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옛 건축물(근대건축물)을 보면 요즘의 건축보다 더 감성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배고파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좋아서 찾는 맛집이 있듯, 건축물에도 ‘좋아하는 마음’이 담겨 있으면 좋겠다. 가끔 길을 걷다 그런 건축물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그 앞에서 감탄하고, 박수를 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본다. 그런 건축물을 짓기 위해 설계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민을 쏟았을까. 시공 과정에서도 얼마나 많은 정성과 노력이 들어갔을까. 그 생각을 하면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 문제는 요즘 현장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축’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일정은 촉박하고, 예산은 빠듯하다. 도면 한 줄이 현장에서 ‘원가 절감’이라는 말로 지워지고, 재료 한 조각이 ‘대체 가능’이라는 판단으로 바뀐다. 결국 남는 것은 효율만 남긴 표정 없는 외관, 비가 오면 곧바로 드러나는 마감의 허술함, 이용자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동선이다. 건물은 완공되었지만, 공간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사실 모든 건축물이 특별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감정이 묻어나는 건축’이 있으면 좋겠다. 창 하나의 비례, 빛이 스미는 깊이, 손이 닿는 난간의 감촉, 계단 폭과 경사의 배려, 바람을 피하게 하는 처마의 길이 같은 것들. 이런 디테일은 비용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런 태도는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다. 떠나가다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건축물 말이다. 빠르고 효율적인 건축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속도와 효율 사이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 번의 현장 방문, 한 조각의 재료 선택, 한 문장의 설명이 결국은 사람의 마음을 담아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유지관리의 현실까지 고려한 설계, 주변 거리 풍경과의 조화, 장애인·노약자·아이 모두가 편히 드나드는 보편적 접근성도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이 되어야 한다. 건축 설계를 하면서 나 또한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늘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아쉬움이 크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민하고, 또 노력한다. 도면 위에서 끝나지 않는 건축, 사진으로만 남지 않는 건축을 위해서. 나는 계속 노력할 것이다. 그 생각 하나로, 오늘의 글을 마친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2.11 18:29

[건축신문고] 건축사가 만드는 작지만 큰 변화, 도시 주차의 미래

도시의 주차장 문제는 단순히 차량이 많아서 생긴 현상이 아니다. 오래된 건물 구조와 좁은 골목길, 현실과 맞지 않는 주차 기준이 얽혀 만들어진 복합적 문제다. 특히 2018년 주차장법 개정 이후 신축 건물의 기준은 강화되었지만, 그 이전에 지어진 병원·학원·상업지역·주거지 등은 여전히 주차 공간이 부족해 시민 불편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현장을 가장 잘 이해하는 건축사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건축사는 신축·증축·리모델링 과정에서 실질적이고 적용 가능한 주차 개선안을 제안할 수 있으며, 작은 조정만으로도 건물의 주차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첫 번째 해결책은 리모델링 시 적용 가능한 주차 확충 인센티브 활용이다. 전주시는 유휴시설이나 담장을 주차장으로 바꾸는 경우 공사비를 지원하고, 노후 공동주택이 부대시설을 주차장으로 전환할 때도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이러한 제도는 건축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기 때문에, 건축사가 제때 안내하면 주차 공간 확보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다. 실제로 주차면 2~3개만 추가해도 인허가 절차가 유리해지고 건물의 가치 역시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 두 번째는 공유주차 활성화다. 전주시는 종교시설, 공동주택, 학교를 대상으로 부설주차장 개방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시설들은 낮과 밤, 평일과 주말의 이용 패턴이 크게 다르다. 같은 공간을 시간대별로 나눠 사용하면 불필요한 신규 주차장 건설 없이도 주차난을 완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인센티브 제공, 사고 및 관리 책임 명확화, 앱과 센서를 통한 실시간 주차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 건축사는 공유주차 운영을 전제로 출입구와 램프 구조, 차단기 위치, 회차 공간 등을 설계 단계에서 고려해야 하며, 관리사무실이나 관제시설 배치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주차장 계획은 건축물의 부속시설이 아니라 도시 설계의 한 요소로 보아야 한다. 건물 하나가 아닌 도시의 주변 도로 환경, 대중교통 접근성, 보행 동선까지 통합적으로 고려해 인접 건물의 출입 동선·운영 시간·출입구 배치를 조율하면 추가 비용 없이도 주차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결국 주차장은 단순한 차량 보관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흐름과 생활을 연결하는 공간이다. 도시 주차 문제의 해법은 새로운 기반시설을 만드는 데만 있지 않으며, 기존 건물과 골목을 얼마나 현명하게 개선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 경제일반
  • 기고
  • 2026.02.04 18:53

[건축신문고] AI시대, 그리지 말고 ‘지휘’하라

2025년 최대 화두는 단연 AI였다. 챗GPT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텍스트 한 줄로 평면도와 조감도를 뽑아내는 AI들이 쏟아졌다. 사석에서 만난 동료, 후배들도 걱정스레 묻는다. “건축사라는 직업, 이러다 AI에 대체되는 거 아닙니까” 내 대답은 명확하다. 건축사는 대체되지 않는다. 다만, 지금 방식에 안주하는 건축사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AI는 밥그릇 뺏는 경쟁자가 아니라, 우리 한계를 넓혀줄 ‘파트너’라는 것을... 솔직히 법규 검토, 잦은 설계 변경, 엑셀 씨름 등 우리 업무 상당수는 단순 반복이다. 슬프게도 이 분야에선 AI가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우리가 그저 ‘도면 그리는 기능인’이나 ‘서류 처리자’에 머문다면 미래는 없다. 하지만, 건축 본질은 기술 너머에 있다. 땅의 맥락을 읽고 건축주의 철학을 공간으로 빚는 일은 고도의 인문학적 행위다. AI가 수천 개 대안을 내놓을 순 있어도, 무엇이 공공 가치에 부합하고 법적·윤리적으로 옳은지 판단하고 ‘책임’지는 건 결국 ‘사람’인 건축사의 몫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는 자’에서 ‘지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밤새 매달리던 렌더링, 기초 분석은 AI에게 맡기자. 대신 그 시간에 디자인 깊이를 더하고 현장을 챙기며 건축주와 소통해야 한다. 이것이 기술로 역량을 ‘증강’시키는 유일한 길이다. 문제는 제도의 속도다. 세상은 천지개벽하는데 대학과 자격시험은 여전히 암기식 지식과 작도 능력만 평가한다. 실무에 맞는 AI 활용력과 데이터 해석력을 기르도록 교육과 평가 방식부터 확 뜯어고쳐야 한다. AI는 전지전능하지 않다. CAD나 BIM 같은 도구일 뿐이다. 핵심은 도구를 쥔 사람의 ‘통찰’이다. 질문을 바꾸자. “AI가 우리를 대체할까?”가 아니라, “AI를 다루는 건축사가 그렇지 못한 이를 대체할 것인가?”로. 두려워 말고 올라타자. 펜 대신 데이터를, 자 대신 알고리즘을 지휘봉처럼 휘두르는 ‘총괄 기술자’의 시대를 기대한다. /김병수 건축사 (전북특별자치도건축사회/강천 건축사사무소)

  • 경제일반
  • 기고
  • 2026.01.28 18:08
경제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