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11-05 04:32 (Wed)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남원 · 전라도 배경의 극작품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막물 <철새>가 당선되고 희곡작가로서 등단, 새 얼굴을 내민 지 60여 년을 헤아린다. 그동안 나름대로 나는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우직하게 극작품을 생산해 왔다. 희곡작품 40여 편. 낼모레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에, 내 고향 전라도/ 남원 땅을 배경으로 한 소재의 극작품들을 손꼽아보니 모두 9편에 이른다. 춘향골 남원의 4편과 전북 2, 광주 전남 3. 그래도 적지 않은 숫자라고 생각하니까, 조금은 덜 미안하고 고향에 대한 고마움과 은혜, 스스로 위안을 받고 있다는다는 생각이다. 남원의 소재는 <달집>(1971)과 <소작지>(1979) <만인의총>(1986)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2011), 전북은 <정읍사>(1982)와 <징게맹개 너른들>(1994), 광주 전남은 <江건너 너부실로>(1986) <서울 가는 길>(1995) <찬란한 슬픔>(2002) 등. ‘서울 가는 길’과 ‘찬란한 슬픔’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의 역사적 참상과 비극을 묘사한 작품이다. 여기서 주목하고픈 작품은 ‘달집’이다. 일제 강점기와 8.15와 6.25 한국전쟁의 지리산 빨치산까지, 산골마을에서 할머니와 며느리, 손자며느리 등 사회적 역사적 수난(受難)의 여인 3대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국립극단 제61회/ 임영웅 연출/ 백성희 주연)은 그해에 ‘백상예술대상’의 작품상과 여우주연상 연출상 희곡상 등 4관왕을 차지하는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오늘날 ‘달집’ 작품은 유치진 <소>(1930년대), 차범석<산불>(1960년대)과 함께 한국 리얼리즘연극의 3대 대표작(傑作)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후에도 ‘정읍사’와 ‘江건너 너부실로’ 역시 나는 그해의 백상예술대상 ‘희곡상’을 세 번째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작품 ‘징게맹개 너른들’(뮤지컬)은 한국 근대화의 분수령이 된 전봉준 장군의 「동학농민혁명」이 그 소재이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간다 ⋯⋯”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기념공연으로 서울의 예술의전당 오페라대극장(극단 서울예술단/ 김효경 연출)에서 팡파레의 첫막이 올랐다. 그해는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으로 여러 곳에서 기념공연들이 올랐었다. 그런데 이 작품이 가장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하여 제주 등 여러 지방에서 초청공연이 있었는데, 전북은 군산과 전주에서 였다. 전주공연은 때마침 『전북일보』의 창간44주년 기념으로 당해 언론사가 직접 초대를 요청하였으며, 대공연이 성사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새삼스레 오늘의 신문 [타향에서] 즐거운 추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때에 본사 문화부의 담당기자 김은정씨의 노력이 가상(嘉尙)하였으리라. 춘향골 남원 땅의 역사 유적지를 소재로 한 <만인의총>(萬人義塚) 작품은 국방부의 육군본부 정훈감실의 청탁을 받아 집필한 것이다. 16세기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조선침략은 미증유의 7년국난(國難). 전쟁의 막바지 정유재란(丁酉再亂 1597년) 때는 호남의 요충지 남원성(城)이 함락 초토화되고, 민관군 1만여 명이 옥쇄(玉碎)하는 참극을 맞이한다. (이하 다음 기회로 생략한다) /노경식 극작가∙대학로연극인광장 회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3.13 17:36

해양의 가치를 알고 바다여행을 즐기자

“자유인이여! 그대는 바다를 사랑하라!” 하고 시인은 외쳤다. 지구 표면적의 약 71%인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고 인류에게 필요한 산소의 75%를 공급해 주며, 인구의 약 30%가 살고 있는 생활공간이자 수산물과 해저광물, 석유와 가스를 제공해 주는 생산의 공간이다. 우리나라는 육지면적의 4배에 이르는 해양영토가 있으며, 독도와 이어도등 총 3,358개의 섬이 있다. 농경지보다 100배의 경제적 가치가 있는 세계5대 갯벌 2,520km2를 보유하고 있으며, 부산 광양항등 60개소의 크고 작은 항구도시와 1,874개소의 어촌계에서 인구의 약 23%인 1400만명이 연안 72개 시군구에 거주하고 있다. 해양생물 종수도 다양해서 영해면적 기준으로 세계1위이며, 단백질 공급의 40%를 해산물이 담당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 무역선과 원양어선들은 세계5위의 해운강국을 목표로 태극기를 휘날리며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있다. 해양은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무궁무진하다. 우선 놀거리 자원으로는 해수욕, 바다낚시, 요트와 보트, 해파랑길, 유람선과 쭈꾸미축제등 지방축제가 있고, 볼거리로는 해안절경과 등대, 일출과 일몰, 바다갈라짐, 해양박물관, 포항 호미곶의 국립등대박물관, 여수엑스포장, 수상비행기, 크루즈, 해상국립공원등이 있다. 체험형으로는 갯벌, 바다목장, 고래관찰, 섬 생활이 있으며, 즐길거리로는 스킨스쿠버, 수상스키, 윈드서핑, 레저잠수, 해저잠수함이 있고, 바닷가에는 생선회등 해산물 먹거리자원이 풍족하다. 특히, 전국에 360개의 해수욕장이 있어서 연인원 약 9000만명 이상이 해수욕과 해변관광을 즐기고 있다. 바다낚시 인구도 계속 늘어 나면서 매년 600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 내고향 전북지역에도 유서 깊은 어청도 등대와 변산반도,고창의 갯벌, 격포항, 특히 선유도등 고군산 군도와 새만금의 해양관광자원은 전국 최고의 수준이다. 바다여행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먹거리와 놀거리, 볼거리를 결정한 다음에 숙소를 예약하면 되는데 조금 불편하더라도 어촌계에서 민박을 권하고 싶다. 여객선을 타고 섬에 가서 1박하는 기쁨은 아주 크다. 섬주민들과 오순도순 등대와 바위에 얽힌 전설과 애환도 들어보고, 특히 밤하늘의 별들과 놀다가 가슴에 담고 오면 그 감흥이 꽤 오래 간다. 완도에 가서는 해상왕 장보고의 유적지와 개척정신을, 진도와 통영에 가서는 성웅 이순신장군의 애국심을, 우리나라 최초의 인천 팔미도 등대에서는 맥아더 장군에게 감사함을 다시 새겨 보는 테마여행도 좋다. 바다여행을 통해서 한가지 더 얻을 수 있는 선물은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처럼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해야 한다는 뜻) 정신이다. 이처럼 소중한 해양의 가치와 중요성을 잘 알고, 우리가 잘 보전하고 잘 이용하고, 풍요로운 바다를 만들어서 미래세대들에게 잘 물려 주어야만 한다. 경관이 빼어난 속초해변과 등대, 태종대와 영도등대, 남해 해상공원과 소매물도 등대, 여수의 밤바다와 오동도등대에는 해양문화공간도 잘 만들어져 있다. 바다여행과 함께 전국의 문화예술인들이 등대 박물관과 전국의 명소 등대에서 정기적으로 모여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위로와 희망을 노래하는 날을 고대해 본다. /류영하 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3.06 15:21

늘봄학교에 바둑이 정착되었으면

기존의 초등학교 방과후 교실에 돌봄의 의미를 더한 늘봄학교 정책이 올해 시범운영을 거쳐 내년에는 전국으로 전면 확대된다. 늘봄학교에서는 방과 후 오후 8시까지 초등학교 학생들의 성장 발달단계를 고려하여 만든 놀이와 체험 중심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공되며, 학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밖의 늘봄센터, 도서관, 공공기관 등에서도 운영될 예정이다. 필자는 이 기회에 바둑 프로그램이 기초소양 프로그램으로 정착되었으면 한다. 최근 바둑은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외면받고 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소일거리로 치부되고 있는 마당에 왠 바둑 타령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바둑은 어린아이들에게 주는 교육적 효과가 크고 게임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 온라인 게임에 집착하는 어린 학생들을 위한 놀이프로그램으로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다. 아동심리전문가와 프로기사가 협력하여 바둑이야기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바둑지도사 주도하에 수업을 진행하면, 우리 아이들은 바둑의 개념과 원리는 물론 바둑을 대하는 마음가짐까지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무릇 학문의 본질은 원리나 개념을 이해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것에 있다. 바둑을 배우는 과정도 이와 유사하다. 창의적인 사고력이 더욱 중시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바둑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과학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바둑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한 사례가 있다. 도쿄대학은 2005년 일본기원의 이사장이었던 가토 마사오의 제안을 받아들여 바둑을 정규 교양과목으로 채택했다. 이 과목은 물리학, 뇌과학, 심리학 교수들이 협력하여 ‘바둑으로 키우는 사고력 세미나’를 교양강좌로 개설하였으며, 교수와 프로기사가 참여하는 체험형 세미나 수업으로 진행되었다. 그후 바둑 강좌는 전 학년을 대상으로 매 학기 개설되고 있으며, 도쿄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이 되었다. 도쿄대는 왜 바둑을 정규과목으로 채택했을까? 바둑을 통해 학생들의 능력을 계발하고 교양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전통 놀이문화인 바둑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이 강좌를 담당하고 있는 도쿄대 효도 도시오 교수는 바둑을 가장 단순하면서도 추상적인 최고의 지적 게임으로 규정한다. 바둑은 깊이 생각하면서 두는 게임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뇌가 단련된다. 이러한 이유로 바둑은 예로부터 두뇌 훈련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오늘날에는 대표적인 두뇌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학생들은 바둑을 두는 과정을 통해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고 연마하면서 독창적으로 연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배운다. 이것은 학문을 할 때도 매우 중요한 프로세스다. 도쿄대는 바둑이야말로 학업과 인간관계,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통찰력과 분석력을 길러주는 최적의 학습법이라는 데 주목했고, 실제로 바둑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물리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사고능력을 측정한 결과 현저하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어디 그뿐인가? 인생은 바둑과 같다는 말처럼, 바둑은 경쟁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네 인생 전반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바둑의 룰은 간단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경우의 수가 많아 전략전술과 수단이 자유롭고 선택지가 많다. 고도의 인내력과 집중력이 게임의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전체 판세를 보아가면서 넒은 시야로 공격과 수비를 결정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눈 앞의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바둑이 끝난 후 두 대국자가 복기를 통해 성패의 원인을 찾고 자신의 판단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재검토한다. 바둑을 통해 축적되는 성찰적 경험은 아이의 성장과 발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우리 아이들이 늘봄교실의 현장에서 친구들과 재미있게 바둑 두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28 17:25

소멸 위기 전북, 스마트한 축소전략이 필요하다.

2024년 2월 13일 전북도민의 삶의 질을 알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격년으로 발표하는 <전북 사회조사> 결과, 2023년 삶의 질은 6.55로 2021년 대비 0.05 높아졌다. 지역 생활이나 행복 또한 비슷하다. 멀리서나마 보는 기분 좋은 뉴스였다. 그러나 전북의 상황은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다. 같은 조사에서 ‘10년 후에도 전북에서 살겠다’는 답이 77.9%로 지난 조사보다 2.3% 늘었으나, 전북 인구는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 2023년 12월 기준 175만명. 전북은 이미 소멸위험 지역이다. 전주만 주의 단계에 있을 뿐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펴낸 인구변화를 보면, 50년 뒤인 2073년 전북 인구는 45만 명으로 줄 것이고 최악의 경우 100년 뒤엔 4만 명에 불과할 것이라 말한다. 충격적인 예측이다. 사실 인구문제는 전북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0.6으로 떨어진 합계출산율로 우리나라는 심각한 소멸위기를 겪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2023년 12월 2일 ‘한국은 소멸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했고, <마이니치신문>은 ‘한국 국가소멸위기감’을 다룬 바 있다. 캘리포니아대학 조앤 윌리엄 교수가 ‘한국 망했네’라고 통탄할 정도다. 이런 인구감소를 멈출 방법이 있을까? 여야를 막론하고 출산 정책에 나섰다.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인천은 아이를 낳으면 1억 원을 준다 했고, 서울은 1.8조원을 투입하여 아이 탄생을 응원한다 했다. 전북도 인구정책종합계획(23~27)을 세워 대응하며 여러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주장에 따르면 지금껏 우리나라가 출산율에 쓴 예산이 무려 280조라 한다. 그러나 인구는 여전히 줄고 있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은 자기가 사는 공간에 먹이가 없을 것이라 예상되면 모든 동물은 개체 수를 감소시킨다라고 말한다. 출산 여건도 그렇지만, 엄청난 경쟁률과 높은 노동시간,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여건과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지구환경 변화는 아이 낳길 주저하게 만든다. 여기에 나 혼자라도 행복하게 살겠다는 ‘나혼산’ 문화는 출산의 가능성을 확연히 떨어뜨린다. 지금에 출산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다. 인구변화는 복지, 노동, 문화, 환경 등 모든 정책의 결과일 뿐, 출산율 정책 하나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선 출산율 자체를 자극하기보다 출산하고 싶은 욕망을 만드는 환경 창출이 중요하다. 인구감소에 맞는 적절한 지역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MIT대 브랜드 라이언 교수는 디트로이트 등 미국의 쇠퇴한 공업도시를 연구하며 쇠퇴기의 도시전략으로 ‘완화적 도시계획’을 주장한 바 있다. 쇠퇴하는 도시 여건에 맞춰 축소를 완화하고 축소에도 지역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만 도시는 유지되고 재발전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도시는 성장기에 건립된 도시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건물을 높게 세우고, 도로를 넓게 만들었다. 이런 도시론 인구가 감소하는 축소사회에 대응하기 어렵다. 스마트한 축소전략이 필요하다. 인구감소로 여유가 생긴 만큼 좀 더 인간적인 도시, 문화적이고 친환경적 도시로 만들고, 여기에 다양한 교류와 기회가 펼쳐지는 도시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요컨대 출산의 욕망을 자극하는, 미래가 있는 도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심각한 위기에 서 있는 전라북도, 스마트한 축소전략을 기대한다.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화정책)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21 16:41

역사극 '두 영웅' 이야기

지난해 여름 7월 달에 나의 졸작 <두 영웅>의 전주 공연이 있었다. 공연의 경위는 도지사 김관영님의 호의와 초청에 의해서 ‘한국소리문화의전당’(대표 서현석) 연지홀(666석)에서 멋지게 성사된 것. 객석은 전주 시민과 연극인 및 중학생들로 꽉 채워서 감동적인 연극이라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역사극 <두 영웅>은 지난 2016년 봄에 ‘노경식 극작가 등단50년 기념공연’이라는 명분을 걸고 서울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초연의 막이 올랐다. 작품의 소재와 배경은 조선왕조의 ‘임진정유왜란’. 16세기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침략에 의한 미증유의 참혹한 7년 국난(國難)이 끝나고, 전후처리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승병장 사명대사 큰스님(오영수/배상돈)이 일엽편주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너서 일본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에도막부의 권력자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김종구)를 만나고 평화담판을 행하여, 향후 260여 년 동안 한일간 양국평화와 선린우호의 주춧돌을 쌓는다는 줄거리. <두 영웅>은 극단동양레퍼토리(김성노 연출)의 초연 이후 지난해까지 8년 동안 10여 차례의 순회 초청공연을 가진 바 있었다. 2016년 가을에 내 고향 남원의 ‘춘향문화예술회관’에서 첫시작으로 하여, 해마다 경기 용인, 제주 ‘설문대여성회관’, 충남 공주와 태안 ‘문화회관‘, 다시 ’제주문화회관‘과 부산 ’금정문화회관’, 수원 ‘경기아트센터’, 전주의 ‘한국소리문회의전당’(7월 8일)과 경남 밀양의 ‘성벽극장’(7월 28일) 등등. 극중에서 사명당은 전란 중에 납치돼서 끌려간 옹기 굽는 도공(陶工), 남원 고을의 심당길(沈當吉)을 만난다. “큰스님, 쇤네는 정유재란 때 남원성이 함락되고 온 고을이 쑥대밭이 됐지라우. 그런 와중에 저를 포함한 80여 명의 옹기쟁이들이 한꺼번에 붙잡헤갖고 여그 가고시마(鹿兒島)까지 끌려오게 되었습니다요. --” 큰스님 사명대사는 깜짝 반가움에, “전라도의 남원 땅에서? 남원 고을이라면 나하고도 인연이 없지를 않아요. 갑오년에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을 수축할 적에, 성안에 있는 선국사(善國寺) 절에서 수개월 동안을 보냈었다. 해남 대흥사의 뇌묵당 처영(處英) 스님이 도원수 권율 장군의 명을 받들어서 의승군 수백명을 데리고 교룡산성을 새롭게 고치고 세울 때말씀이야. 그러고 운봉(雲峰)의 지리산 바래봉 철쭉꽃밭이 유명하고, 전주 완산칠봉(完山七峰)의 꽃밭도 아름다운 경승지이고 ⋯” 하면서 조선 백성의 뿌리와 핏줄임을 한시도 잊지 말고, 자식새끼도 풀풀 많이 낳아서 부디부디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당부한다. 그 도공 심당길의 가문은 <심수관>(沈壽官)의 이름으로 15대째 400년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었다. 심수관의 ‘사쓰마야키‘(薩摩燒, 窯)는 오늘날 일본 도자기의 세계적 명문 대명사로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지난 1998년에는 남원에서 <심수관 400년 귀향제>가 열려서 ’도자기 불씨‘를 일본에 가져가고, 서울에서도 심수관 도자기 작품 전시회가 개최된 바 있었다. 역사학자이고 항일독립운동가로 일제(日帝)의 괴뢰정부 만주국의 뤼순(旅順) 감옥소에서 순국하신, 단재(丹齊) 신채호 선생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씀을 곱씹어본다. /노경식 극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14 15:59

고향사랑 버스에 타자

고향이 장수라고 하면 어디쯤에 있냐고 되묻곤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전라북도에는 무주 진안 장수군이 있는데 합쳐서 무진장이라고 하고요, 무진장 눈도 많이 와서 토끼하고 발 맞추면서 누에와 돼지도 기르고, 담배농사 지으면서 살아왔던 두메산골입니다. 지금은 고속도로가 3개나 연결되고 사과와 한우, 오미자의 빨강색, 즉 3Red로 유명해 졌습니다.“ 그러면 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늘 가고싶고 그리운 내고향 장수읍에는 약 20여개의 크고 작은 동네들이 있다. 우리 베이비부머세대들은 학생이 점점 늘어나서 초등학교 4곳에서 공부했다. 누나와 형이 동창이면 동생들도 모두 친구이고, 부모님들도 형제자매나 다름없이 서로 돕고 위로하면서 살아왔다. 요즘은 인구가 계속 줄어서 전국 226개 지자체중에서 223위로 지역소멸 위기에 있다. 엄청난 산악고원지대로서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학생들도 도시로 떠나가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뾰족한 해결책도 없다. 충주시의 깊은산속옹달샘(명상치유센터)이나 인제군의 기적의 도서관과 같은 성공사례를 볼 때, 77%가 산으로 둘러쌓인 내고향 장수는 산과 숲, 강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백두대간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시작점에 장안산과 팔공산이 있고 전북과 충남의 젖줄인 금강의 발원지 뜬봉샘, 섬진강의 최상류인 덕산용소와 수분리, 빼어난 절경과 깊은 숲이 있는 방화ㆍ와룡 자연휴양림, 의암 주논개열사의 생가와 유적, 승마학교와 동가야 유적지만 연결해도 '장수만세 으뜸관광지'가 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있다. 동선도 길지 않고 기존 도로와 국유산림을 잘 활용하면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순환버스노선과 산악궤도 열차로 연결할 수 있다. 기존의 리조트와 호텔을 잘 활용해서 잘 놀고 잘 먹고 푹 쉬었다 가는 힐링명소로 발전했으면 좋겠다. 이러한 프로젝트를 장수군에서 선도적으로 성사시킨 다음에 진안 마이산과 탑사, 무주 덕유산과 구천동으로으로 확산시키면 '무진장 즐거운 최고의 힐링허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김수환 추기경님도 "결국 남는 것은 마음 닦는 일과 나누면서 복 짓는 일"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 세대들은 고향발전을 위해서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시대적 소명이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전쟁을 겪으시면서 가장 극한의 가난과 역경을 이겨내면서 우리를 올 곧게 키워주신 우리의 부모님들은 영웅이시다. 지금도 고향하늘위에서 우리들을 지켜주고 계신다. 다 하지 못 한 효도를 고향사랑으로 보답해 나가면 된다. 성공한 고향기업가들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이행해야 한다. 이제는 고향발전을 위해서 모두가 힘을 모을 때가 되었다. 타지에 사는 고향사람들로부터 애향심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읍면사무소에서는 동문회를 통하여 고향소식도 전하고, 고향발전을 위한 지원협력을 요청해 나갔으면 한다. 군청에서 동문들의 뜻을 모아 '논개고향사랑재단'을 설립하여 추진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고향발전 사업계획도 수립하고, 군의회에 제안하고, 기금도 조성해 가면서 고향사람들이 고향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한다. 애향심이 곧 효도이고 애국심이다. 고향살리기에 서로서로 힘을 모으고 보태자. 고향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고향사랑 버스에 함께 타서 고향사랑 길을 힘차게 달려 보자. /류영하 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

  • 오피니언
  • 기고
  • 2024.02.07 15:18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위기 극복을 위한 제언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다. 위기 상황에서 자주 사용되는 역설적인 표현이다. 서서히 다가오지만 치명적인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의 조짐은 우리의 마음속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예고된 위기에 맞서고 있는 지역과 도시의 운명은,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표현처럼, 큰 도로에 접해 있는 작은 골목길의 신세와 같다. 우리를 위협하는 위기(危機)에는, 그 단어가 암시하는 것처럼, 위험만 있고 기회는 없는 것일까? 이 질문이 이 글의 시작이자 끝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장소의 매력과 재능을 가진 지역이나 도시에 살고 싶어한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는 도시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자, 도시 성장의 비밀이기도 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도시에서는 혁신과 부를 창조하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협력이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도시를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도시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진화시킨 독창적인 메카니즘이라고 주장한다. 도시의 역사를 보아도 도시의 재능을 키워주는 것은 다름 아닌 인구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사람들을 특정한 지역이나 도시에 모이게 하는 일이 도시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일깨우는 대목이다. 인구 감소의 위기에 처한 지역이나 도시의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사람을 끌어들이는 특별한 전략과 구상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전 세계로 매력을 뿜어내는 대중문화가 있다. 덕분에 해외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방문 욕구는 최고조다. 이 기회에 이들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와 산업을 이해하고 체험하는 것을 교육과정으로 하는 온라인 글로벌 대학의 설립을 제안한다. 대학 입학의 문턱을 낮추어 제한없이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온라인 강좌와 현장에서의 일과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매우 혁신적인 신개념의 대학이다. 학생이 모자라 대학이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지역에 대학을 신설하는 것은 역발상에 가깝다. 그러나 고등교육 현장에서는 시대변화를 반영한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실험이 시작되고 있다. 미국의 애리조나 주립대학(ASU)은 과감한 혁신을 통해 성공한 사례로 유명하다. 온라인과 온·오프라인 혼합형 강의를 통해 비용을 줄이고 학습효과를 향상시키는 한편, 개인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학생의 성장을 돕고 있다. 최근에는 오픈AI와 협력하여 교육 현장에 챗GPT를 도입하는 등 미국 대학 최초로 AI를 공식 교육프로그램으로 채택하여 주목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미 한국형 미네르바 스쿨이라 할 수 있는 태재대학이 작년 8월에 개교하여 신입생을 뽑고 있다. 이 대학은 온라인 수업과 현장 중심 경험학습으로 21세기형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교육목적으로 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하는 신개념의 글로벌 대학은 한국학을 교과과정으로 만들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문화를 체험하는 대안대학이다. 한국어와 K-culture가 교과과정의 핵심이지만,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산업에 대한 이해와 경험도 포함된다. 전문화된 지식을 전수하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을 추구하기보다는 일(실무)과 체험을 통해 학생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교육 목표이다. 또한 비용이 적게 들고 학습효과가 크다는 점도 장점이다. 온라인 학습플랫폼과 현장 중심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은퇴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대학이기에 가능하다. 경험이 풍부하고 교육에 신념을 가진 은퇴한 전문가들이 수업을 이끌기 때문에 비용이 적게 들고 교육효과도 크다. 게다가 AI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있어 온라인 기반의 대학 설립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온라인 기반의 글로벌 대학이 전북특별자치도에 세워지길 기대해 본다.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전 총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4.01.31 17:36

세 번째 문화도시, 전주의 파이팅을 기대합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전주가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화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전주는 특히 역사가 잘 보전되어 있고, 국제영화제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고 있어 문화도시로 지정되기 충분한 여건을 갖추고 있다. 이번에 추진되는 문화도시는 ‘대한민국 문화도시’다. ‘K-문화도시’라 이름 붙인 이 문화도시는 이전 문화도시와 달리 성과를 중시한다. 시민의 활동보다 ‘세계적인 도시로의 성장’, ‘지역 변화’, ‘문화의 거점으로 지역발전’ 등이 주요 목표다. 아마 예전보다 빡빡하게 성과를 관리할 것 같다. 역사적으로 문화도시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문화도시는 우리나라가 아닌 유럽에서 탄생한 문화도시다. 1980년대 동서 간 냉전으로 긴박한 상태에 있던 유럽은 소련에 맞서 유럽공동체를 구성하고 NATO를 구성하고, 정치적․경제적․군사적 통합을 이룬다. 그러나 문화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서로 말이 다르고 정서가 다른 상태에서 유럽을 통합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에 그리스 문화부 장관이었던 ‘멜리나 메리쿠리’(Melina Mercouri)가 1983년 유럽 문화부 장관회의에서 매년 유럽 국가 중 한 도시를 정해 문화도시를 지정하자고 제안을 하자 만장일치로 찬성해 1985년 아테네를 첫 문화도시로 지정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유럽 문화도시다. 1999년부터 ‘유럽 문화수도’로 명칭을 바꿨지만, 유럽 문화도시의 목적은 하나다. 유럽을 통합하고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선정된 도시는 1년간 행사를 집중해 유럽문화를 보여주고 유럽의 시민과 세계인들에게 유럽을 느끼도록 해준다. 최근 도시재생이란 새로운 목표로 붙었지만, 유럽 문화도시가 추구하는 건 동일하게 ‘통합’이다. 우리나라에서 문화도시가 추진된 건 노무현 정부 때다. 광주를 문화도시로 만들겠다는 공약에 따라 특별법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를 만든다. 그리고 부산과 경주, 공주․부여, 전주 등을 ‘지역거점 문화도시’로 지정한다.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하는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전주는 ‘한스타일 거점도시’로 문화도시가 되었다. 2014년 또 다른 문화도시가 탄생한다. 한․중․일 문화부 장관이 모여 유럽처럼 매년 각국 도시 중 한 곳을 문화도시로 지정하자는데 합의한 것이다. 그 결과 2014년부터 동아시아 문화도시가 탄생한다. 전주는 2023년 ‘동아시아 문화도시’로 지정되었다. 두 번째 문화도시가 된 것이다. 이번이 세 번째다. 이번 문화도시는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른 법정 문화도시로, 문화자원을 활용한 지역발전이 목표다. 전주는 전통문화와 첨단기술을 접목한 문화산업 생산기지를 조성하겠다고 사업을 제안했다. 이제 이제 1년간 예비사업을 잘하면 2025년부터 3년간 100억 원의 국비를 지원받아 본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모쪼록 좋은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 도민 의견을 잘 모으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 사업목적에 맞는 성과를 냈으면 한다. 문화로 성과를 내긴 쉽지 않다. 문화라는 단어는 매력적이지만, 정책으론 쉬운 것이 아니다. 전주의 파이팅을 기대한다. 다른 어떤 도시도 해 보지 못한 세 번째 문화도시를 하기에 전주는 분명 잘하리라 기대한다. /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문화정책) △라도삼 위원은 서울연구원 연구기획조정본부장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겸임교수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1.24 15:51

'남원문학관' 창설을 위한 제언

남원시 춘향골은 예로부터 예향(藝鄕) 또는 ‘충절의 고장’으로 일컬어져왔다. 남원 고을은 전통 판소리 가운데 <춘향가>와 <흥보가> 및 <변강쇠타령> 등 세 마디의 발상지이고, 판소리 동편제의 가왕(歌王) 송흥록 대명창의 탯자리가 운봉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5월 달에도 해마다 열리는 그 풍성한 <남원춘향제>는 94회째를 맞이하며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민속예술 축제를 자랑할 것이다. 그리고 ‘충절’(忠節)은 나라와 백성에 대한 충성과 절개를 뜻한다. 16세기 왜적 일본의 무도한 침략과 임진국난을 당하여 1597년 정유년 싸움에서 민관군 1만여 명이 옥쇄한 비극의 남원성 함락을 기리는 ‘만인의총’이 시내 향교동에 있으며, 19세기 동학농민혁명 때는 김개남 장군이 남원에 대도소를 설치하고, 무주 진안 장수 순천 낙안 고흥 등 전라좌도를 호령하였던 곳이다. 남원은 또한 문학예술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일찍이 조선왕조 초기에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 속에 등장하는 <만복사저포기>는 남원 왕정동이 그 소재이다. 이승과 저승의 생사를 초월하는 젊은 남녀간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그 줄거리. 조선 중기의 삼의당 김씨(三宜堂金氏)도 남원 태생으로 유명한 허난설헌과 쌍벽을 이루는 여류시인. 그녀는 소박한 살림살이의 여염집 아낙네로서 평범한 일상적 삶과 전원생활의 풍치를 아름답게 묘사한 한시(漢詩)와 산문을 260여 편이나 남기고 있다. 이와 같이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남원 고을은 수많은 문화재와 유적지와 기념관을 가지고 있다. 최명희의 장편소설을 기리는 사매면 노봉마을의 <혼불문학관>과 요천강가 함파우길의 <김병종미술관>, 향단로의 <남원고전소설문학관> 및 판소리 <춘향가> 국가무형문화재의 명창 <안숙선기념관> 등등. 그런데 『문학관』은 없다. 음악 미술 건축 등 모든 문화예술 중에서 가장 중추이자 앞자리에 서있는 것이 바로 ‘문학관’ 아닌가. 문학이란 시와 소설 희곡 수필 아동문학 전부를 아우르는 문화예술 장르이다. 여기에 한 가지 사실을 덧붙이자면, 현재 한국문인협회의 남원지부 회원숫자는 40여 명, 고향 남원을 떠나서 서울 등 외지에서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재경남원문인협회』(손해일 회장)도 70여 명에 이른다. 그러고 보면 춘향골 남원 태생의 문학인은 1백여 명을 훨씬 뛰어넘는 숫자이다. 아마도 서울 부산 등 대도시를 제외하면 전국의 시군읍 중에서도 가장 많은 문학인을 배출하고 있는 곳이 전라북도의 남원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언필칭 ‘예향남원‘이라고 큰소리치는 고을에서 지금껏 순수 문학관 시설 하나를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은 스스로 미안하고 안타깝고 부끄럽다는 생각이다. 바야흐로 재경남원문인협회가 『남원현대문학관』 창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니 뜻있는 인사들의 적극적인 성원과 수많은 협조를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늦는 것이 빠른 것이다. 18세기의 대실학자 연암 박지원님의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과 정신으로 기쁘고 행복한 그날이 하루 빨리 성취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노경식 극작가 △노경식 극작가는 남원에서 태어나 경희대를 졸업했고 대학로연극인광장 초대회장과 한국연극협회∙한국문인협회∙한국작가회의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수많은 희곡작품과 희곡집∙산문집∙역사소설 등을 집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1.17 18:20

애향심으로 전북의 희망을 살리자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다. 해양영토와 자원을 선점하고, 해상무역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다. 뉴욕, 상해, 동경등 세계적인 대도시도 해상교역과 항만산업을 통해서 발전하였다. 다행이 우리나라는 1976년도에 해운항만청을 신설하여 ’해운입국‘ 기치를 내걸고 조선산업과 해운회사를 집중육성하였으며, 항만개발과 국제물류기업 유치정책들을 과감하게 추진하여 오늘날 세계 일류의 해운강국이 되었다. 해양에 관한 나라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 늘 ’전북의 희망인 군산항과 새만금‘을 통한 고향발전을 소망해 왔었다. 평택항만청장을 거쳐 드디어 군산항만청장으로 부임하면서 바로 군산시장과 도부지사, 중앙행정기관장들간에 호흡을 맞추고 협력발전방안을 모색하였다. 현대조선소에 부두1선석과 항만부지 사용허가를 시작으로 군산과 중국석도간 카훼리 취항, 컨테이너선사 유치, 서해남부권 수요에 충족하기 위한 자동차 및 석탄부두 민자유치를 과감하게 추진하였다. 보람도 컸고 고향에서 인정을 받으니 더 신바람 나게 일했었다. 이후 국토해양부에서 잠시 항공정책 일을 맡았을 때는, 새만금을 우리나라 수상비행기산업 메카로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을 갖고 뉴질랜드와 호주를 직접 찾아가서 배우고 온 경험이 있었다. 지역주민들은 수상비행기 연관산업과 관광레저업에 종사하면서 아주 잘 살고 있었다. 은퇴후에 돌이켜 보니, 좋은정책을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성사시키지 못한 후회와 사람이 바뀌면 중단되는 공직사회의 폐단이 안타깝기만 하다. 지난 가을여행때 새만금 전망대에서 느낀점을 소개해 본다. 김제시쪽에 건설중에 있는 컨테이너부두도 군산과 김제시가 관할권 다툼만 하다가 부두가 준공된 후에서야 항만명칭부터 운영주체 선정, 화물과 선사유치, 배후물류단지 조성문제등을 해결하느라 시간만 낭비할 것이 불보듯 뻔했다. 취항하는 항공기가 없어서 무안하기만 하는 무안공항도 공항개발 초기단계부터 항로개설, 항공사 유치등 공항 활성화정책들이 동시에 추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항만, 공항, 새만금개발사업이든 반드시 건설과 운영, 활용정책을 동시에 추진하면서 그때 그때 노정된 문제점들은 바로 해결해 나가야만 하고, 시대변화에 맞추어 사업계획을 신속하게 수정보완해 나가야만 한다. 국가해양과 항공정책을 기획하고 직접 수행해 본 경험에서 얻은 지식이고 조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전북도에서는 새만금의 단계적 활용계획을 주도적으로 수립하고, 중앙부처와 협의해서 과감한 민자유치와 전폭적인 금융지원정책들을 추진하기 바란다. 또 조속히 새만금항으로 명명하고, 지방항만공사를 설립해서 선사와 국제물류기업 유치, 최상의 운영인프라 구축등 활성화 대책도 강구해 나갔으면 한다. 새만금을 자세히 보면, 미인이 중국을 향해 미소를 짓고 있는 형상이다. 특히, 중국인들은 바다와 섬을 좋아하므로 천혜의 절경 고군산군도와 웅장한 새만금에서 쉽게 창업도 하도록 하고, 해양레포츠도 즐기게 하는 놀이터로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 지금부터 우선 전북인들이 군산항과 새만금에 더 관심을 갖게 하고, 애향심을 끌어내고 힘을 모아서 발전시키길 소망한다. 전북의 오피니언 리더들과 기업가, 공직자, 문화체육예술인 모두의 시대적 소명이다. /류영하 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해양학 박사 △류영하 전 국토해양부 고위공무원은 장수 출신으로 해양학 박사이며 한국항로표지기술원 이사장, 팬스타그룹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고 현재 대한민국해양연맹 부총재, 시인·수필가로 활동중이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1.10 16:13

갑진년 새해 아침에

갑진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올해는 전라북도가 128년 만에 전북특별자치도로 출범하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특별자치도는 기능적으로는 이전의 도와 별 차이가 없지만 법에 의해 자치권이 보장되는 것은 물론이고 중앙정부로부터 다양한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이전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위기를 겪고 있는 전라북도로서는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린 셈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반기는 것은 필자가 전북을 사랑하는 출향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면한 위기를 낭비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해 9월부터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에 따른 새로운 슬로건과 디자인을 개발하는 브랜드위원회에 위원장으로 참여한 바 있다.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북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시간이었다. 전라북도가 과거 호남평야를 기반으로 천년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축적한 농경사회의 핵심적인 거점 공간이자 뿌리 깊은 정체성의 기반이 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전북은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 물결 속에서 인구 유출과 산업구조의 취약성으로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 침체에 직면한 지 오래다. 디지털 사회의 진전으로 현대인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이 변하고 산업의 근간이었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되자, 우리의 미래인 청년세대의 취업 기회가 급속도로 줄고 있다. 국가나 지자체들은 앞다퉈 미래 신산업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소이다. 전라북도도 예외가 아니다. 새만금과 신산업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전라북도는 특별자치도 출범을 계기로 새 시대를 상징하는 브랜드 개발이 필요했다. 오랜 역사와 문화를 보유한 정체성을 고려하면서 새로운 미래 비전을 담아야 하고 독창성까지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그러나 위원회 간담회, 도민 참여단 원탁회의, 전 국민 대상 아이디어 공모전, 토론회, 공청회, 후보안 선호도 조사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두려움은 사라졌다. 16세기 어느 정치철학자의 말처럼, 리더의 의지와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열망이 크고 강하면 다가오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었다. 민주적 과정과 치열한 숙의를 거쳐 탄생한 슬로건은 ‘새로운 전북, 특별한 기회’이다. 이 슬로건은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동시에 전하고 있다. 전북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전북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전북 그 자체’를 내세움으로써 천년 역사를 가진 전북의 정체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또한 새로운 전북은 특별자치도 출범을 계기로 전북의 새 변화를 알리고 새 시대, 새 지평을 열어갈 글로벌 생명경제도시를 표방하는 전북의 미래 비전을 암시하고 있다. 특별한 기회는 슬로건 중앙에 창(窓)을 시각화하여 새로운 미래를 여는 창의 이미지를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적으로 열어가고자 하는 전북의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시작의 기술이다. 아무리 정성 들여 만든 도시브랜드라 할지라도 잘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공식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새로운 브랜드를 알리고 새 브랜드를 활용한 다양한 이벤트와 캠페인을 벌이는 등 브랜드 효과를 거두기 위한 전략적인 노력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자주 하는 말과 생각은 삶을 바꾼다는 말이 있다. 자주하는 생각이 뇌의 물리적 구조를 바꾼다는 신경가소성 이론에 근거한다.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해답은 타인이나 환경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더 나은 전북의 미래를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서순탁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전 총장 △서순탁 교수는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에 재직 중이며 서울시립대학교 제9대 총장을 지냈다. 한국도시행정학회장, 경실련 정책위원장, 서울시 출연기관 경영평가단장, 국토연구원 연구위원 등을 역임했다.

  • 오피니언
  • 기고
  • 2024.01.03 16:14

남김없이, 후퇴없이, 후회 없이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 과거 로마인들은 외부의 적이 침략할 마음조차 갖지 못하도록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강한 무력을 갖추기 위해 준비하였다. 값비싼 첨단무기가 전장에 동원되는 오늘날에 와서는 압도적인 경제력과 과학기술 역량이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과거 필자는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적을 제거할 수 있을까’ 라는 직업적인 고민을 하면서 개인적인 가치관과의 충돌을 경험하였다. 또한 내가 몸담은 조직을 ‘비리의 온상’으로 여기는 세간의 편견에 괴롭기도 하였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방위산업은 평화와 생명을 지향하는 산업이자, 대한민국에 부국과 강병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강대국들은 모두 방위산업을 핵심 주력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숱한 전쟁과 동료의 죽음을 통해 강병 없이 부국과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그렇다.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했던 나라가 ‘대한민국 방위산업은 메이저리그 수준’이라는 전 세계적 찬사를 받기까지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산업을 육성해 왔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나 무인기와 같은 최첨단 기술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활용되고 있다. 실시간으로 위성과 통신하는 무인기와 여러 대의 지상·해상 무기가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움직이고 있다. 군(軍)에서 활용되는 무기체계와 첨단 국방기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민간 영역으로 스며들어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꿀 것이다. ‘국가과학기술 혁신의 통로’, 그 자체만으로 방위산업에 대한 국가적 투자와 전폭적인 지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전라북도는 지난 3월, ‘K-방산, 안보전략 및 산업화 포럼’을 개최하면서 방위산업 육성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전북도는 타지자체와 협업함과 동시에, 새만금의 광대한 부지를 활용하여 신소재·신기술 R&D 허브 조성과 관련 기반 구축 등을 핵심 비전으로 내세웠다. 그리고 지난 7월, 조직개편을 통해 방위산업팀을 만들어 신중하게 산업 육성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전라북도가 방위산업 육성을 발표한 것은 대한민국 첨단기술 혁신을 전북도가 주도하고, 도내 대학·연구기관·기업 등과 협업하여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의미이다. 물론 절대 쉬운 길은 아니다. 산업 육성의 성패는 전라북도의 태도에 달려 있다. 일관성과 진심 외에 비결은 없다. 산업기반이 취약하고 달리 내세울 만한 인프라가 없다는 현실에 굴해서는 안 된다.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단견으로 판단하거나 퇴로를 만들어가면서 적당히 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4년간 전북도 인구는 5만 명이 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내 고향 전라북도가 다시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지금 남김없이 일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전북도에는 훌륭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와 묵묵하게 일하는 공무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대학·연구기관과 역량 있는 기업들이 있다. 마지막 칼럼을 마치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남김없이! 후퇴 없이! 후회 없이!” 억만장자 상속도 포기하고 예일대 학위도 뒤로하고 선교사의 길을 걸었던 윌리엄 보든이라는 청년의 수첩에 기록된 강렬한 문구이다. 말하자면,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강은호 국방과학연구소 정책자문위원∙전북대 특임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3.12.27 17:04

나의 연잎 사랑

잠시 왔다가는 세상 헛되고 헛된 것인 줄 알고 있지만 나의 짧은 생각과 욕심은 언제나 실망을 안겨주었다. 모든 것을 믿고 생각이 앞서다 보니 생각과 결과가 너무 다르다. 완전함을 꿈꾸던 고집과 아집 때문에 따라오지 못하는 생각과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라 혼자 우는 시간이 많이 있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나 자신을 탓하며 내려놓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담금질하여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인내하면서 비움의 미덕을 배우고 있다. 또한 나는 연잎의 겸손을 배우고 사랑한다. 물방울이 채워지면 자연히 흘려보내고 또다시 새로운 물방울로 채운다. 나는 연꽃을 무척 좋아한다. 깊은 수렁에서 피어나는 연꽃을 바라보며, 때 묻지 않은 고고하고 아름다운 자태에 내 모습을 비추어본다. 혼탁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앞만 바라보는 숭고한 자의 뒷모습을 유유히 밟아 본다. 커다란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피어난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어려움도 굴하지 않고 큰 꽃이 피어날 때까지 과정은 우리 삶의 과정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가 되면 꽃잎이 하나하나 낙화하여 제 모습을 감추어버리고 열매만이 남겨놓고 세월이 지나면 땅에 떨어지고 세월이 흐르면 또다시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워주므로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과 행복을 준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슬픈 마음이다. 진흙탕에서 함께 뒹굴며 서로 험담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분열을 일삼고, 주인의식 없이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고집과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분란만 일삼고 있다. 한 주인을 섬기지 못하는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일삼는 파렴치한이 많아졌다. 눈을 뜨면 탈당이네, 신당 창립이네, 누가 누구를 헐뜯고 투기하는 모습은 조선시대 당파싸움과 조금도 다를 게 없는, 변화되지 못한 시대의 흐름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정책은 젊은이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폐쇄적이고 타락한 일상에 젖어 범죄만 늘어가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마음 놓고 아이들이 자랄 수 없는 범죄 국가로 전락 되어 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윗사람들 눈치 보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꿈을 펼치고 할 말을 하고 전진해 나가는 당당한 젊은이가 되었으면 한다. 물론 윗사람들이 문제이지만. 피어나는 새싹을 짓밟아 자라지 못하게 하고, 젊은이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답지 못하는 윗사람이 자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말로만 선진국이면 무엇하랴? 똑똑하고 젊은 인재를 키워주고 이끌어주는 정신적인 선진국이 되어야만 국가가 올바르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지저분한 세상에 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연꽃처럼 흙탕물에서도 꿋꿋하고 정결하게 피어나기를 바라며,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존재 이유를 알고, 목표를 정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자신의 가치와 희망을 이루어 가기를 바란다. 사회지도층이나 정치인들이 자신의 욕망과 권력을 앞세우기 전에 떳떳하고 당당하여 사회가 서로의 이익을 추구하는 넉넉하고 훈훈한 사회를 이루어 가기를 바란다. 윗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미련 없이 자리를 비워주자. 새순이 돋아나야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듯이 생동감 있고 진취적인 새로운 세대가 이끌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고, 남들이 박수쳐줄 때 물러날 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지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더라. /김종숙 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3.12.20 16:41

세상엔 공짜가 없다, 모든 성취는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라는 말은 평범하면서도 진리이고 철칙이라고 생각한다. 설령 공짜가 있다고 하여도 이 공짜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돌발적인 공짜 즉 정상적인 공짜가 아니다. 모든 세상사는 인과응보(因果應報) 법칙에 따라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발생하는 법, 우연적인 공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타당하다. 우리 인간의 인성과 품성이 결정되는 요인은, 어릴적 부모 교육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이 말을 뒷받침하는 것이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다, 즉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하여 3번씩이나 이사하였다, 이는 부모로서의 자식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입증하여 주고 있다하겠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집은 매일 저녁이면 동네 사랑방이 되어, 앞집, 뒷집, 어르신들이 오셔서, 세상 이야기를 하면서, 자식 된 도리가 무엇이며, 바르게 행동하여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기에, 자연적으로 어르신들로부터 가정교육을 받게 되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남자 못지않게 사리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시는 분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자상한 어머니셨고, 자식교육에는 엄한 어머니셨다. 필자가 공무원이 되었을 때에는, 기회 있을 때마다 공직자는 청렴하여야 하고, 남의 돈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고, 귀가 닳도록 말씀하셔서, 필자의 인생관과 가치관 형성에 주요 요인이 되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필자가 1970년 초반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민원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때인데, 한 민원인이 찾아왔기에 친절히 안내하고, 절차에 따라 처리하여 주었는데, 민원인이 고맙다고 금일봉 봉투를 책상위에 놓고 가셨다. 한편으로는 이를 사용해도 괜찮치 않을까하는 생각도 하였으나, 부모님께서 가르치신 말씀이 떠올라 바로 일과 중에 급하게 민원인 주소지로 반송한 적이 있었다. 후에 생각해보니 그때 내 결정이 옳았구나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되었다. 또 1975년 8월 전라북도공무원교육원 교육을 받을 때, 다른 교육생들은 강의시간 끝난 후 매점에 가거나 취침을 하고 있는 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고 강당에 나가서 혼자 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 교육생 200여명 중에 영예롭게 1등을 하였고, 또 1978년 8월 1일 총무처 주관으로 전 부처 공무원을 대상으로 사무관 승진시험이 있었는데, 그때도 필자는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공부에 전념한 결과 평균 80.1점으로 전국 수석을 한 경험이 있다. 위 내용은 필자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실제 성취한 결과와 사실(fact)에 근거한 기록임을 밝혀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목에서 밝힌바와 같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것은 진리요, 철칙이고, 상식화 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요즈음 일부이긴 하지만, 본인 노력 없이 아빠, 엄마, 지인 찬스까지 이용하여, 대학에 입학하고 표창 받았던 것이 들통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례가 있었는데, 이제는 부모 등 찬스를 이용하려 하지 말고, 본인의 노력으로 성취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위치에서 책무를 다한다면, 그 결과는 성취로 돌아오게 되어 있고, 이기심이 아닌 이타심으로,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한다면, 정의롭고 밝은 사회가 이룩된다고 확신한다. /조현건 전 전북지방병무청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12.13 15:08

서울에서 만난 전북 - 3·1 운동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혹시 이런 문구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저에게는 아주 익숙한 문장이지요. 사법시험을 공부하면서 거의 외우다시피 했던 대한민국 헌법 전문(前文)의 첫 문장이거든요. 헌법 전문은 우리 헌법의 이념과 가치를 축약한 고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출발점이 바로 3·1운동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지요.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인사동에 있는 태화관에 민족대표들이 모였습니다. 주인 안순환은 이 사실을 총독부에 전화로 알렸지요. 물론 민족대표들이 시켜서 한 일이었습니다. 곧 80여명의 일경이 달려와 태화관을 포위했습니다. 한용운 선생의 선창으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뒤 그들은 기꺼이 일경에 의해 연행되었습니다. 같은 시각, 부근에 있는 파고다공원에 모인 사람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뒤 만세운동에 나섰습니다. 이후 독립을 기원하는 만세운동은 5월까지 전국으로 퍼져나갔지요. 100만명 이상이 참여해 900여명의 사망자를 내었으며, 4만 7천여명이 구속되었습니다. 당시 태화관과 거리에서 연행된 분들이 투옥된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서대문형무소이지요. 서대문에서 무악재 방면으로 가다 보면 왼쪽에 독립문이 있습니다. 바로 그 뒤에 빨간 벽돌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건물이 서대문형무소입니다. 1908년 일제에 의해 경성감옥으로 만들어져 1987년까지 수많은 우국지사가 수감되고 때로는 생명이 다해서야 비로소 나올 수 있었던 곳이지요. 유관순 열사도 이곳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판결문에는 태화관에서 연행된 분들을 포함해 손병희 선생을 필두로 48명의 이름이 공범으로 적혀 있습니다. 판결문을 읽어가다 주소가 전북으로 표기된 분들의 이름을 발견했습니다. 임실군 청성면 남산리 출신 박준승, 익산군 오산면 송학리 출신 임규, 김제군 반계면 반계리 출신 정노식 세분입니다. 판결문에는 경기도로 되어 있지만 장수군 번암면에서 태어나 남원군 송동면에서 유아기를 보낸 백상규(법명 백용성) 선생도 계십니다. 박준승 선생은 천도교측 대표 중 한분이셨고, 임규 선생은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독립선언서와 통고문을 일본 정부와 의회 등 공식 기관에 전달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정노식 선생은 일본 유학 시절부터 요시찰 인물로 지정될 정도로 일찌감치 독립운동에 뛰어드셨지요. 백상규 선생은 불교계 대표였는데, 최초로 한글판 금강경을 편찬하셨습니다. 검찰에 근무하는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산위원회’에 파견나가 근무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친일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국가로 환수해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들을 위한 사업에 쓰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위원회였지요. 나라를 빼앗긴지 100여년, 독립으로부터 60여년의 세월이 지나서였습니다. 때문에 많은 재산을 환수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엉뚱한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지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어려운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 거기에 더해 재산까지 바치다 보니 후손들을 돌볼 겨를이 없던 탓이었겠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합니다. 지난 100여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요. 서대문형무소에 가보시면 그 해답의 일부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양중진 변호사

  • 오피니언
  • 기고
  • 2023.12.06 16:24

꿋꿋한 노력이 미래를 보장한다

그래도 계속해라! 가능할지 누가 아는가? 영국의 물리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며 이러한 말을 남겼다. 물리학의 대가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전문적인 교육의 기회도 가져보지 못한 채 어렵게 공부했다. 그러나 한 분야에서 꾸준함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결국 물리학계의 존경을 받는 학자가 되었다. 지난 50여년 한국 방위산업의 성장 과정을 짚어본다. 1970년 8월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하면서 국내 방산육성은 시작되었다. 소총 한 자루 스스로 만들지 못하던 시절,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이 시작되었다. 80년대 초반까지 ‘군수조달에 관한 특별조치법’ ‘방산원가제도’ 등 방산육성에 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고, 국내 방위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ADD가 기술 개발을 전담하고 방산업체가 생산하는 수직적 협력구조로 출발한 방위산업은 90년대와 2천년대 초반을 지나면서 국내 방산업체의 기술력과 제조능력이 급성장을 거듭하였고, 마침내 2006년 방위사업청 출범과 함께 국과연과 방산업체간 수평적 협력구조를 정립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후, 방산업체 스스로 선제적으로 주요 핵심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품질관리에도 집중하며 세계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국내 방위산업은 작년 방산 수출액이 170억불을 상회하여 수주액 기준으로 세계 5위내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5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사이에 소총 한 자루 만들지 못하던 나라가 지·해·공 모든 분야의 첨단 무기체계를 생산하고 수출까지 하는 방산 선진국으로 성장한 유일한 사례이다.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만났던 질곡은? 린다김 사건, 통영함 비리 등으로 대표되는 방산비리였다. 소수의 부적절한 일탈로 발생한 방산비리는 방산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방산 종사자들 전체에게 부과되는 가장 큰 짐이었다. 일례로, 세월호 참사 이후 통영함 비리 등 방산비리가 국민적 우려사항으로 부각된 이후 방산분야는 비리가 있다는 전제하에 저인망식 수사 감사가 진행되었다. 당초 해외 도입과정에서 발생했던 통영함 비리로부터 시작하여 국내 연구개발 사업의 대부분의 사업에 대한 비리를 캐는 수사 감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시행착오도 방산비리로 매도되었고, 방산분야 종사자들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극한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하에서도 우리 방산 종사자들은 연구개발과 생산 현장을 묵묵히 지켜온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K-방산이라는 찬사를 이끌어 낸 것이다. 지난 하반기부터 전북도는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방위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많은 도전이 요구되는 영역으로 예기치 않은 시행착오가 예상된다. 과연 전북도에서 신기술 중심 연구와 방산 전문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지난 여러 칼럼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북도는 지자체 고유의 강점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그리고 꾸준하게 새로운 영역에 씨앗을 심고 있다. 곧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그랬던 것처럼 결실을 맺으리라 기대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인 것처럼 새로운 산업에 도전하고 성공하는 비결은 일관적인 정책, 수미일관하는 자세 외에는 없는 듯하다. 온 힘을 다해 행동하고 실천하는 무실역행(務實力行)의 정신, 전북도에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강은호 국방과학연구소 정책자문위원∙전북대 특임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3.11.29 15:45

공동묘지의 의미를 바로 알자

우리가 알고 있는 공동묘지(共同墓地, Cemetery, Memorial Park)는 쉽게 말하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선산이 없는 사람들이 가족이 돌아가시면 묻는 곳으로 알고 있다. 얼마 전 전라도 여행하는 동안에 K씨를 만나 공동묘지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왜 공동묘지가 생기게 되었으며, 현재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국민이 분열되어가며, 경제가 어렵게 되어가는지 궁금하여 밤 깊은 줄도 모르고 K씨의 말에 관심을 두고 두 귀를 기울였다. 메이지 왕릉은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고 있는 만큼 일본은 풍수지리를 믿고 풍수사를 데리고 왕릉의 명당자리를 찾으러 다니는 풍수 철학을 지켜온 나라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제 강점기 시대의 우리 민족을 말살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공동묘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명당자리에는 일본의 관공서나 학교, 그리고 사찰을 세우고, 야산이나 쓸모없는 땅에 공동묘지를 만들어 사람이 사망하면 아무 곳에나 묘지를 만들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일본인이 만들어 놓은 공동묘지에 시신을 매장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행여 명당에 묘지를 쓰므로 훌륭한 인물이 나와 일본을 무너뜨릴까 봐서 간교한 계략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일본은 풍수지리가 미신이라 말하며, 우리 민족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일본인들은 명당이라는 곳을 찾아 유골을 매장하며 우리나라를 압박하며 일본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일본은 풍수지리에 의한 명당 지역을 선정한 후 공원묘지를 조성하여 분양하며, 봉분 하나에 조상 대대로 화장한 유골함을 지하 하단에서부터 2단 3단으로 매장하고, 탑 묘를 조성하고 집안의 묘비를 만들어 후손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합본한다고 하였다. 일본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조상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일까? 공동묘지가 주택가 가까운 곳에 있어 묘지를 자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고 문화정책을 말살시키고 사람을 학대와 학살을 일삼았지만, 자국민에 대한 사랑은 얼마나 애틋하였던지 층층이 쌓은 납골묘가 대부분이라 한다. 부산 아미동 비석마을이 일본인들의 공동묘지로 유명한 곳이다. 6.25 전쟁으로 인해 전국에서 온 피난민들로 부산의 인구가 갑자기 늘어나면서 집 지을 자리가 부족하여, 일본인들이 남겨두고 간 공동묘지에 집을 짓고 마을을 꾸렸던 곳으로, 일본이 패전하여 갑작스럽게 우리나라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무덤을 이장할 겨를이 없어 남겨진 비석마을의 골목에는 아직도 상석이나 비석들은 가파른 계단의 디딤돌로 쓰이거나 옹벽 또는 집의 주춧돌 등으로 활용된 모습이 보인다. 우리나라는 풍수지리를 예로부터 봐 왔기 때문에 집을 짓거나 묘지를 정할 때, 풍수사를 모시고 다니며 명당자리를 찾아다녔다. 대소사를 앞둔 사람들이나 정치인들이 총선이나 대선을 앞두고 조상 묘지를 이장하는 것도 풍수지리에 의한 명당이 있다고 믿음으로 하는 행위 중의 하나인 것이다. 깨어있는 지식인이나 명문가 유생들은 명당을 찾아 조상의 묘지를 만들었다고 말하였다. 명당이라는 곳이 있어 조상의 묘를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후손의 흥망성쇠가 좌우된다고 하시는 선친들의 말씀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K씨는 어른들을 잘 섬기고 조상 대대로 묘를 잘 관리하는 가운데 잃어버린 선산 1만8000평을 조상이 도와 되찾았다고 말하며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체성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김종숙 작가

  • 오피니언
  • 기고
  • 2023.11.22 18:05

선행(善行)을 쌓으면, 하늘이 복을 내린다

옛 성인의 말에 의하면, 착한 일(善)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내리고, 악한 일(惡)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는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 많은 선행을 베푼 명문가 봉소당(鳳巢堂)을 소개하고자 한다. 봉소당은 전남 여수시 봉강동 언덕에 아주 웅장하고 큰 한옥 저택이 나오는데, 여기가 봉소당이다. 그리고 봉소당은 몇 년 전에 <가문의 영광>이라는 영화를 촬영했던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 봉소당은 영광 김씨 집안의 건물로, 영광 김씨의 종손인 김한영 씨가 지었고, 현재는 한영대학교 이사장인 김재호 씨의 소유로 되어있다. 김한영은 거대한 부자(1만2000석)로, 가난한 과객대접에 후했다고 전해진다. 많은 소작인들은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소작료를 제 때에 내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그것을 본 김한영은 처지가 딱하다고 해서 그냥 눈감아주면 다른 소작인들이 왜 그 집만 봐주느냐고 항의할 것을 예상하고 그 방법의 하나로 자식이 많은 어려운 소작농에게 수백 가마의 쌀을 배에 싣고 내리는 하역 작업을 시켜 그 대가로 소작료를 면제해줘 공평하게 여기도록 배려를 하였던 것이다. 지주(地主)인 김한영은 많은 소작인을 배려하면서, 많은 선행을 베풀어 인심 좋은 부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때는 1948년 10월에 여수, 순천 반란사건이 발생하였는데 당시 좌익세력의 반란군은 부자들을 즉결 심판하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가운데, 반란군은 여천군청 2층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책임자 1명과 호위병 2명으로구성된 심판정이 열렸는데 공교롭게도 대지주였던 영광 김씨 11대손인 김성환(1915-1975)이 제1착으로 끌려와 심판을 받게 되었다. 책임자인 심판관은 봉소당 토지를 소작하고 있던 소작농의 아들이었다. 당시 봉소당은 소작농이 가난해서 소작료를 내지 못하면 소작료를 탕감해주는 선행을 베푼 것을 평소에 알고 있었다. 그 심판관은 김성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2명의 호위병들에게 너희들은 나가 있어라 명령을 내리며 김성환을 의자에 앉도록 하고, 심판관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신문(新聞)만 보고 있었다. 이런 침묵상태로 10분, 20분, 30분쯤 지날 무렵까지 심판관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이유를 알아차리게 된 김성환은 아! 나더러 도망가라는 뜻이구나 하고 군청사무실 창문을 살며시 열고 물홈통을 타고 1층으로 내려와 도망하여 살아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대지주인 김성환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화를 면하게 되었다. 여기에 '적선지가(積善之家)에 필유여경(必有餘慶)'이라는 말과 같이 선한 일을 많이한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일어난다는 말이 입증(立證)되었다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15년 5월경 봉소당을 방문하고 이사장을 면담하려 하였으나 마침 출타 중이어서 면담은 하지 못하고, 봉소당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온적이 있다. 이세상은 모든 것이 인과관계로 얽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도 선행을 쌓으면 하늘이 복을 내린다는 말과 같이, 봉소당은 어려운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고 또 어려운 소작농의 소작료를 탕감해주는 등 선행을 많이 쌓아 불의의 화를 면하는 산 교훈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조현건 전 전북지방병무청장

  • 오피니언
  • 기고
  • 2023.11.15 16:27

서울에서 만난 전북 - 황희 정승

학창 시절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 있었습니다. 소풍과 운동회였지요. 아마도 저뿐만이 아닐 겁니다. 누구나 그랬을 테지요. 학교 밖 행사도 있었습니다. 매년 사월 초파일을 전후해 열리는 ‘춘향제’였지요. 학생들과 주민들이 춘향, 이도령, 향단, 방자, 월매, 변사또 등으로 분장하고 행진하는 가장행렬, 전국에서 모여든 예쁘고 착한 누나들을 뽑는 춘향선발대회, 판소리 명창들의 국악경연대회 등 행사가 무척이나 다채로웠습니다. 그 시절에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밤하늘을 수놓던 불꽃놀이도 빼놓을 수 없지요. 지금이야 전국적으로 많은 지역축제가 있지만, 80년대만 해도 전국 3대 축제로 불리던 춘향제의 모습입니다. 이런 모든 행사들의 주무대가 있었지요. 바로 ‘광한루원’입니다. 광한루를 처음 만든 사람은 조선을 대표하는 정승인 황희입니다. 선생은 남원과 어떤 인연이 있었기에 광한루를 지었을까요. 선생의 아버지인 황군서는 고려말 개성에 터를 잡고 벼슬살이를 시작했습니다. 선생도 개성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지요. 그런데 황군서의 출생지가 바로 남원이었습니다. 벼슬살이를 위해 개성으로 이주한 것이었지요. 선생의 조부인 황균비의 묘지도 남원시 대강면에 있는 '풍악산(楓嶽山)'에 있다고 합니다. 선생이 벼슬길에 들었던 조선 초는 격변의 시대였습니다. 왕권과 신권의 줄다리기가 한창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왕위를 둘러싼 다툼도 심했습니다. 태종에게는 세 명의 대군이 있었습니다. 바로 양령, 효령, 충령이었지요. 선생은 양령 대신 충령으로 세자를 교체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 바람에 관직에서 파직되어 유배를 떠나야 할 처지가 되었지요. 첫 유배지는 개성과 가까운 임진강가에 있는 교하(交河)였습니다. 그런데 한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다시 유배를 떠나게 되었지요. 그래서 선택된 곳이 바로 남원입니다. 유배지가 남원으로 변경된 것은 앞서 본 것처럼 선생의 향관이 남원이었다는 이유도 작용했습니다. 비록 유배를 떠나는 몸이지만 어느 정도 배려를 한 것이지요. 덕분에 선생은 유배지인 남원에서 노모, 처자식과 함께 머무르면서 광한루를 지은 것입니다. 광한루는 선생에 의해 광통루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들어졌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광한루는 1626년에 재건된 건물이지요. 서울에서 문산 방면으로 자유로를 따라가다 보면 임진강변 경치 좋은 곳에 반구정(伴鷗亭)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갈매기와 함께한다는 뜻인데요. 지금은 강변을 따라 철조망에 둘러싸여 있어 분단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썰물 때면 먹이를 찾는 갈매기들을 여전히 볼 수 있는데요. 황희가 87세에 18년 동안 재임하던 영의정에서 물러나 말년을 보낸 곳입니다. 서울 사람들에게 반구정은 그리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선생의 말년 거주지이기 때문이 아니라 부근에 장어집이 몰려 있는 곳으로 유명하기 때문이지요. 저도 20여년 전 고양검찰청에 근무할 당시에는 그저 유명한 장어집으로만 알았던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반구정에는 선생의 일대기와 두문불출의 유래, 세종과의 관계 등을 설명해 둔 기념관, 영정을 모신 사당, 제사를 모시는 재실과 동상이 있습니다. 햇살이 좋은 가을날 임진강가를 걸으며 ‘두문불출’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면 어떨까요. 거기에 코끝에 스미는 장어 굽는 냄새의 유혹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양중진 변호사

  • 오피니언
  • 기고
  • 2023.11.08 17:33

새만금 방산허브화, 신뢰를 기반으로

약속의 무게는 무겁다. 로마의 정치가 푸블릴리우스는 심지어 적에게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약속이라고 말했다. 서로간의 신뢰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일생동안 수많은 약속, 그리고 협상을 했던 나폴레옹은 차라리 '약속을 지키는 최상의 방법은 결코 약속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까지 말하며 약속의 무게,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과거 경제적 풍요를 갈망하던 시대에는 생산 과정에 투입되던 생산 설비, 기계 등 물적 자본(physical capital)이 한 산업과 사회 번영의 핵심이 되고, 물적 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본가들이 사회 곳곳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물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현대 지식사회에서는 물적 자본과 대비되는 인적 자본(human capital), 네트워크가 핵심이 된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생각이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면 현대사회에서 핵심 가치를 점유하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많은 인적 자본(human capital)을 점유하기 위해서는 상호 간의 관계에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K-방산 수출의 성공 역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강점을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지리적 특수성이나 제조업 대국이라는 물적 자본에서 찾고는 한다. 이러한 특징들도 방위산업이 성장하게 된 계기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대한민국 방산 정책이 일관될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민간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타국 정부와의 네트워크 능력이 융합되었기에 가능했다. 정부는 일관된 정책을 유지했고, 기업도 당장은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꾸준히 투자하고 노력했다. 반대로 만약 정부가 방산정책에 일관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또 큰 비용이 투자되어 생산된 무기를 돌연 구매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방산시장은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거나 정책에 변화가 있더라도 역대 모든 정부가 적어도 방위산업 정책에 있어서는 일관된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전 칼럼에서 필자는 전북도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중심적 허브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신기술·신소재, 방산 인재양성의 거점을 지향해야한다고 제언했다. 전북도에게는 지난 10여 년간 우직스럽게 투자해온 탄소산업과 방산인재 양성에 집중할 수 있는 지역거점대학이 있으며, 광대한 새만금이 신기술 개발에 필수적인 실험 및 생산에 활용될 자산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다소의 어려움이 있겠지만 정책 일관성을 가지고 새만금 지역의 방산 허브화를 추진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여러 기업들이나 도내·외의 방산 관련 기관들이 전북도의 일관된 산업 육성 의지를 신뢰하고 전북도만이 지닌 강점을 찾아 모일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 육성에 있어 ‘신뢰와 일관성’은 그 어떠한 가치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답설야중거 불수호란행(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에 신중해야 한다. 방위산업 허브화를 추진함에 있어 신뢰를 기반으로 한 우직하고 일관된 발걸음을 기대해본다. 업무협약은 지켜졌어야 했는데...... /강은호 국방과학연구소 정책자문위원∙전북대 특임교수

  • 오피니언
  • 기고
  • 2023.11.01 17:46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