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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식인들의 고민

지난 2일 동경에서는 한 이색적인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의 〈한일 현대사와 평화민주주의를 생각하다〉(일본평론사)의 일본어 출판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지식인들이 초청 마련한 자리. 참석자도 평소 변호사를 따르는 소수의 한국인을 제외하면 모두가 일본의 진보지식인들. 임진왜란을 다룬 〈월하의 침략자〉, 일제의 식민통치를 고발한 〈백만 인의 신세타령〉,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까지, 일본이 가해자로 한국(조선)이 피해자로 진행된 역사적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꾸준하게 제작하고 있는 마에다 겐지 감독,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수차례 전적지 답사를 위해 내한한 바 있는 나까즈까 아키라 나라여자대학 명예교수, 우리나라 신문에 동아시아 평화와 한일문제 등에 관한 글을 지속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와다 하루키 교토대학 명예교수, 수십 년 동안 대학 연구실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동학농민군 지도자 유골 송환을 위해 발 벗고 나섰을 뿐만 아니라 직접 모시고 전주를 방문하여 사죄의 고유문까지 낭독한 북해도대학의 이노우에 가츠오 교수 등, 일본의 양심을 대변하는 대표적 지식인들 50여명이 참여했다. 모임의 성격상 저자와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 찾았을 것인데 보이기로는 일본 대표적 진보지식인들의 단합대회 같았다.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된 축사도 개인적 덕담보다는 불편해진 한일관계와 위기에 처한 동아시아 4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염려, 우경화로 치닫는 아베정권에 대한 신랄한 비판, 그리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한일 지식인들 노력의 당위성 등이 주를 이루었다. 평소 점잖고 수줍음 많은 마에다 감독의 축사는 반성과 단합을 촉구하는 웅변의 전형!분위기로만 봐서는 이처럼 내로라하는 양심세력들이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그 타개책까지 모색하고 있으니 동아시아 평화든 민주주의 인권 문제든 이내 해결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이를 취재하던 아사히신문의 사쿠라이 이즈미 기자는 전혀 다른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 내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세력이 극소수에 불과하며, 더 심각한 것은 이들을 이을 후속세대가 거의 없다는 것. 일본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정치적 무관심의 덫에 걸려 있고 몇몇 극우의 젊은이들만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것이 바다 건너의 얘기만이 아니라는 점. 이 땅의 현실이요 고민이라는 점이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4.03.10 23:02

가미카제와 기록

일본군국주의의 부활 바람이 드세다. 아베 정부 관료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역사왜곡의 망언을 쏟아내고 있으니 국가가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가. 그 형국이 갈수록 가관이다.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개봉돼 8주 연속 흥행 1위를 기록한 영화 ‘영원한 제로’는 가미카제특공대원의 고뇌를 그렸다. 2월 중순까지 660만 명이 관람한 이 영화는 전쟁으로 인한 헛된 죽음을 미화시켰다는 일본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일본에서 10년 만에 가장 높은 인기를 얻은 영화로 꼽힐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가미카제’는 2차 세계대전 때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강행한 일본군 특공대의 이름이다. 1945년, 일본은 오키나와를 방어하기 위해 1000명이 넘는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투입해 연합군을 공격했다. 국가를 위해 개인의 죽음까지도 당연시하는 일본 군국주의의 파시즘에 세계가 경악했지만, 일본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이 잔혹한 전쟁사를 미화시키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가미카제 대원들의 유서와 편지의 유네스코 유산 등재 추진은 미화작업의 절정이다. 지난 2월 초 일본 가고시마 현의 작은 도시 미나큐슈 시장이 가미카제 대원들의 유서를 유네스코에 기록유산 후보로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인류의 문화를 계승하는 중요한 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가미카제 자료를 등재하겠다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중국이 나섰다. 1937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인 30만여 명이 잔인하게 살해된 난징대학살과 종군위안부 자료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추진이다. 일종의 맞대응이다. 난징 대학살 만행과 시체 매장 기록, 시민 탄원서, 위안소 설립 증거 등 등재를 추진하는 문건은 180여건이다.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선침략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다. 일제의 식민통치를 경험했던 세대가 함께 호흡하고 있으니 넓게 보자면 ‘동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시기의 역사는 분명한 흔적과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실상은 다르다. 흔적은 지워졌고 남아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한 시대의 궤적이 자취를 감추었으니 역사로 증명할 수 있는 방식의 한계가 분명하다. 가까운 과거의 기록을 잃어버렸거나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대가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 명백한 일본 침탈사의 실체 규명조차 고된 투쟁이 되어버린 현실이 그를 증명한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4.03.07 23:02

전북대를 줄이면 '전대'

전북대는 최근 몇 년 사이 각종 대학 평가에서 수위에 오르며 주변을 놀라게 하고 있다. 한국표준협회 서비스품질지수 평가에서 전국 1위, SCI논문 증가율 전국 1위, 연구비 수주액 3년 연속 국립대 1위, 2010 세계대학평가 국립대 2위, 국내 종합대 6위 등이 최근 전북대의 높아진 위상을 말해준다. 하지만 전북대는 고민이 하나 있다. 전북대를 줄여서 부르는 ‘북대’라는 호칭 때문이다. 전북대측은 북대라는 호칭이 ‘동네북’이라는 불순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싫어하고 있다. 그래서 수십년전부터 ‘전대’라고 불러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요즘에는 대학 전광판에 ‘전북대를 줄이면 전대’라는 홍보를 계속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내 안팎에서 ‘북대’ 호칭이 근절되지 않고 있으니, 고민은 고민이다. 사실 이름은 내가 짓는 것이지 상대방이 지어 일방적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다. 사람 이름, 기관이나 단체 이름 등 모두 마찬가지다. 줄임말일 경우 의도가 불순하거나, 어감이 부정적이고, 특히 당사자가 싫어하면 부르지 않는 것이 예의다. 전북대 구성원들 대부분은 수십년전부터 ‘북대’라는 호칭이 전북대를 얕보고, 무시하고, 폄훼하는 호칭이라며 싫어하고 있다. ‘전대’라고 바로 부르자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 서거석 총장은 직접 나서 ‘전대’ 호칭 굳히기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전북대를 줄이면 전대’라는 문구를 교내 전광판에 수시로 표출하고, 상호에 ‘북대’가 들어간 상점을 대상으로 ‘전대’로 전환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서거석 총장은 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전략 가운데 하나로 부정적 어감이 강한 ‘북대’ 호칭을 없애고자 했다. 서거석 총장은 최근 한 대학동문 모임에서 “전북대를 줄여서 부르면 전대입니다. 전세계 어느 대학, 지구상의 어떤 고유명사도 이름을 줄여서 부를 때 뒷글자를 따서 부르지 않습니다. 전부 첫글자를 따서 부르는 것이 기본이고 또 상식입니다”라며 전북대를 줄여 부를 때 ‘전대’로 불러달라고 호소했다.사실 충청도에 충북대, 충남대, 충청대가 있지만 지역민들은 이들 대학을 모두 ‘충대’라고 부르고 있다. 경상도에 경북대, 경남대, 경상대, 경성대 등이 있지만 모두 ‘경대’로 불린다. 유독 전북대만 뒷글자를 따서 부정적 어감을 갖고 있는‘북대’라고 부르는 것은 자기 비하다. 아무도 서울대를 ‘울대’라고 부르지 않는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3.06 23:02

여론조사 약발

안철수 새정치연합이 기초선거 공천을 포기한데서 촉발된 민주당과의 통합이 워낙 충격파가 커서 아직도 정치권이 헤매고 있다. 정치권은 일반적으로 안철수 쪽에서 공천을 포기하면 민주당도 어쩔 수 없이 공천을 포기할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민주당이 새정치연합과 제3지대 신당 창당을 전격적으로 선언하자 정치권은 물론 유권자들까지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민주당이나 새정치연합 쪽으로 단체장 출마를 결심했던 예비후보자들은 득실 계산에 앞서 ‘멘붕’상태에 빠졌다. 거의가 의연한척 하면서 잘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다시 새판을 짜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속들은 이미 시꺼멓게 타들어 갔다.중앙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따라 얼마든지 지방자치가 춤출 수 있는 사례로 보인다. 문제는 신당에서 광역단체장 공천 룰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관심사다. 양측이 공천 룰을 정하겠지만 공천이 본선이나 다름없어 경선 룰이 최대변수다. 국민 참여·개방형·여론조사·배심원제 등 다양한 방식을 놓고 각 후보들은 유·불리를 따질 것이다. 통합신당의 공천자로 확정되면 예전처럼 본선거가 거의 형식적인 절차로 끝날 것이다. 새누리당 쪽에서 도지사 후보를 내겠지만 사실상 유권자들이 기대를 걸었던 경쟁적인 도지사 선거는 이미 깨진 것. 전북은 오히려 지역주의 강화로 중앙과의 소통에서 더 고립돼 정치적으로 사면초가를 맞을 수 있다.지금 정치권이 메가톤급 펀치를 맞아서인지 민심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다. 각 후보별로 본선 같은 예선전을 어떻게 치를까를 놓고 고민스런 모습이다. 결론은 누가 더 도민들의 지지를 받느냐 여부다. 각 후보별로 특별한 전략보다는 그간 경선 대비를 해왔듯이 여론주도층은 물론 밑바닥을 훑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어떤 룰이 만들어져도 일전불사 하겠다는 각오들이다. 어차피 새로운 정치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에 각 언론들은 유권자 알권리 충족을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해서 발표할 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다수의 의견이 여론이기 때문에 그 효과가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물론 여론이라는 것이 변화무쌍하다는 특성도 있지만 큰 흐름과 줄거리를 읽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통합신당의 공천 폐지로 전주시장 완주 진안 무주 임실 순창 고창 부안군수 선거판이 재밌게 됐다.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선거판이 형성됐기 때문에 그간의 밴드웨건 효과가 얼마나 약발을 받을 지 관심이 모아진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4.03.05 23:02

안철수의 생각

- 민주당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인가요? “10년간 집권했으면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도록 했어야 하는데 국민에게 실망을 주고 말았어요. 저는 말이나 생각보다 중요한 것이 결국 선택과 행동이라고 봅니다. 4·11총선 때 야당을 편들지 못했던 이유는 후보공천이 국민의 뜻을 헤아리기 보다 정당 내부 계파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총선 때 야당을 돕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정당이 아닌, 인물을 보고 투표하라고 발언해 비판도 받으셨죠?“네.(…)정당 위주의 투표를 하다 보니 정당은 국민을 두려워 하지 않고 정당 자체가 또 하나의 강고한 기득권이 되고 민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안철수 의원이 대선을 4개월 앞둔 2012년 8월 펴낸 ‘안철수의 생각’에서 민주당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타낸 글이다. 이후에도 근 20여개월 동안 그는 “낡은 정치로는 아무 것도 담아낼 수 없다.”며 기득권 정치 타파를 주장해 왔다. 전주와 광주에서는 민주당을 향해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이라고 비판했다.이랬던 그가, 그의 표현대로라면 타파 대상인 민주당과 신당을 창당하기로 했다. 거짓의 정치를 심판하고 약속의 정치를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이유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기초선거 무공천을 결심하는 걸 보고 새정치에 대한 믿음이 갔다고도 했다. 국민적 신의와 기대가 컸던 사람의 통합 이유 치고는 참 맥 빠지는 설명이다. 명분과 논리가 ‘그때그때 달라요’다. 이런 식의 결정을 국민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면 합의는 없었던 것일까. 정치 지도자한테 항상 휘둘리는 국민은 어떤 존재인가. 이런 상념에 대한 안철수의 생각은 또 어떤 것일까. ‘군주론’의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1469∼1527)의 명언을 진작 헤아렸어야 했다. “지배자가 교활한 술책을 전혀 쓰지 않은 채 언제나 신의를 지키고 고결하게 산다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현실을 보면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지배자들이란 신의 따위는 전혀 돌보지 않고 교활한 술책으로 사람들을 속이며 결국은 신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타도하는 사람들이다.” 허허벌판에서 우두머리의 새정치 깃발만 보고 달리던 졸개들이 이렇게 처량하게 보일 수가 없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3.04 23:02

생의 마지막 말

모르겠어!12세기 프랑스의 유명한 스콜라철학자 아벨라르(Pierre Abelard, 1079 -1142)의 마지막 말이다. 수년 동안 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쳐 온 그는 파리대학교 설립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독특한 가르침 방법은 소크라테스처럼 계속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회의적 태도는 당시 기독교계의 반감을 샀으며 그의 생애 대부분 동안 그의 저술은 금기시되었다.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 입장에서 보면 논리를 앞세운 이런 유보적 문제제기가 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 마지막 말도 그의 이런 태도를 뭉뚱그려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는 또한 엘로이즈(Heloise)와의 비극적인 연애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엘로이즈는 미모와 학식을 겸비한 당시 대표적인 지적 여성으로 그를 흠모하던 제자였다. 둘은 서로 사랑에 빠져 아들까지 낳게 된다. 그런데 아벨라르의 출세에 걸림돌이 될 것을 염려한 그녀가 자신이 공부하던 수녀원으로 돌아간 것이 오히려 비극의 싹이 된다. 그녀의 숙부는 아벨라르가 엘로이즈를 버린 것으로 여겨 복수를 결심하게 되고 급기야 사람들을 동원 그의 성기를 잘라버린다. 그 후 그는 수도승이 되고 그녀 또한 수녀가 된다. 아벨라르가 쓴 <나의 불행한 이야기>가 계기가 되어 주고받기 시작한 라틴어 연애편지는 나중에 불어로 번역되어 많은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 된다. 영국의 시인 포프(Alexander Pope, 1688-1744)도 <엘로이자가 아벨라르에게(Eloisa to Abelard)>라는 격정적인 서간체 낭만연애시를 남기는데 이 또한 이 편지를 소재로 한 것이다. 균형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던 신고전주의 시인이 격정의 사랑시를 남긴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그만큼 두 지성인들의 뜨거운 비극적 사랑에 감동을 받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모르겠어! 공부하는 사람, 자기발전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 끊임없이 되뇌어야 할 말이 아닌가 한다. 지적 오만이야말로 성장을 방해하는 가장 난감한 훼방꾼이다. 요즘과 같은 자기홍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화두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겸손한 태도가 오히려 자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안일 수 있다.당대 최고의 지성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 짧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뜨거운 사랑과 그로 인한 고통까지 몸소 체험한 중세 최대 연애사건의 주인공이기에 더욱 더. 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4.03.03 23:02

서원마을의 담장

도심 속 주택들은 예외 없이 담장이 높고 견고하다. 이웃과 의지하고 소통했던 동네문화가 사라지면서 공동체문화의 전통이 단절된 현대사회에서 높고 견고한 담장은 심리적 거리감을 더 멀게 하는 요인이 된다. 얼마 전, 서울 암사동 서원마을을 답사했다. 서울 한복판, 시멘트 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시에서 만난 전원마을 이야기는 흥미롭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낮은 담장과 빨간 우체통이 인상적인 작은 동네 서원마을은 서울시가 2008년 시작한 ‘살기 좋은 마을만들기형 지구단위계획 시범사업’의 두 번째 결실이다. ‘살마지’로 통칭되는 이 사업은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단독주택지와 저층주거지 보전을 위한 정책이었다. 64가구 34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서원마을의 마을 만들기 사업은 2009년 4월부터 시작돼 2년여에 걸쳐 마무리됐다. 도로를 깔끔하게 정비하고 주차장을 집안으로 들여놓았으며 시멘트 담장을 없애는 대신 낮은 투시형 담장으로 바꾸었다. 담장을 허문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컸다.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니 묵은 살림과 낡은 시설물이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추고, 나무와 꽃을 가꾸는 주민들의 손길은 분주해졌다. 이웃관계가 친밀해진 자리에 공동체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으며, 마을회관과 어린이놀이터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은 하나가 됐다. 그러나 돌아보면 서원마을의 오늘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고층아파트를 짓는 재개발 대신 기존주택의 구조 변경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주민들의 선택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공청회와 토론회는 언제나 대립된 의견으로 치열했으며 갈등이 깊어져 분열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 해결의 답이 있었다. 공무원, 전문가들과 함께 마을을 만들어나가면서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문제와 보물을 발견하고 잠재력과 미래를 찾아내는 경험을 하면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하는 마을의 진정한 모습을 얻게 된 것이었다. 이제 서원마을 주민들은 매월 보름이면 함께 모여 달빛명상을 하고 동시와 동화를 읽는다. 어린이와 가족을 위한 토요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마을 어른들이 앞장서 수제된장과 고추장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도시계획가 정 석교수의 말처럼 내 집과 우리 마을을 ‘비싸게 팔고 떠날 곳’이 아닌 ‘오래 살아갈 곳’으로 생각하고 실천한 서원마을 주민들의 지혜로운 선택이 빛나 보인다.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4.02.28 23:02

도전과 실패

소치 동계올림픽이 지난 24일 폐막했다. 우리는 역대 최다인 71명의 선수를 출전시켰지만 아쉽게도 금 3개, 은 3개, 동 2개로 13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이상화 선수가 500m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올림픽 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 2연패의 대업을 달성하고 쇼트트랙 박승희 선수가 금메달 2개를 따내며 기염을 토했지만 김연아 선수가 석연찮은 심판 판정으로 금메달을 날치기 당하고 남자 선수들이 금메달에 실패하는 등 희비가 엇갈린 대회로 기록됐다. 다만 전북출신인 김아랑선수(전주제일고)가 쇼트트랙 3000m 계주에서 조해리, 박승희, 심석희, 공상정 선수와 함께 역주를 펼친 끝에 금메달을 목에 걸어 도민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다음 동계올림픽은 오는 2018년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8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지만 동계올림픽은 처음 개최한다. 30년만에 또 하나의 올림픽을 개최하는 셈이다. 올림픽 기록으로 볼 때 그동안 하계올림픽과 동계올림픽을 모두 개최한 나라는 7개국 뿐이고, 우리나라가 8번 째다. 대한민국의 힘을 실감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이다. 지금부터 2018년 2월까지 세계의 눈, 특히 우리나라의 모든 눈은 강원도 평창에 쏠릴 것이다. 시설과 선수단에 대한 투자가 집중될 것이고, 선수들은 엄청난 땀을 쏟아내야 할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목전에 닥치면서 사실 전북은 편치 않다. 1997년 무주·전주 동계U대회를 치른 후 곧 동계올림픽 유치에 나섰지만, 후발 주자인 강원도에 빼앗긴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무주는 동계올림픽 개최에 실패한 대가(?)로 태권도공원을 유치했지만, 올림픽 유치 실패는 두고 두고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일이다. 특히 도민들의 시선이 집중된 대규모 유치사업들이 궤도를 이탈하는 일이 잦아진 것은 큰 문제다. 과거 세계적 자동차 경주대회인 ‘F1 그랑프리’를 군산에 유치하려했지만 실패했다. 이 사업을 추진한 세풍측이 도지사에게 뇌물이 전달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대선 출마를 위해 퇴임했던 유종근 지사가 결국 징역살이를 했다. 훗날 이 대회는 전남 영광이 유치했다. 전북은 최근 프로야구 10구단 유치전에서 수원시에 밀렸다. 이 때문에 도지사 책임론이 대두될 만큼 지역 분위기가 썰렁했다. 도전은 아름답다. 실패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잇따른 도전 실패는 지역을 위축시킬 수 있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2.27 23:02

새만금 내려놓기

전북도가 새만금사업의 중요성을 워낙 강조해놔 도민들 뇌리속에 새만금사업이 하나의 종교처럼 각인 돼 있다. 외지인 한테도 새만금을 모르고는 전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새만금사업을 신주단지 모시듯 했다. 도가 지금까지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새만금사업에 더 관심을 쏟을 것이다. 새만금사업은 그 누구의 설명을 빌리지 않아도 중요하다. 전북의 미래는 물론 장차 국가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사업이라서 더 그렇다. 지난 91년 첫삽을 뜬 이후 22년이 지나서야 국토해양부 산하 외청으로 새만금개발청이 발족됐다. 새만금사업은 6번 정권이 바뀐 동안 외곽방조제가 축조됐고 MP가 마련돼 내부개발이 진행중에 있다. 하지만 국가예산이 집중적으로 투입되지 않아 개발기간에 비해 진척이 더뎠다. 왜 새만금사업이 터덕 거렸을까. 이유는 간단치 않다. 첫째로 정권적 이해관계가 맞질 않았다. 둘째로 인접 시도에서 발목을 잡아왔다. 셋째로 대기업들의 관심을 이끌지 못했다. 넷째로 환경단체들이 갯벌 생태 보전등을 요구한 것도 천연시킨 한 이유다.문제는 국책사업인 새만금사업을 너무 전북도가 오랫동안 만지작 거리는 바람에 외지인들이 이 사업을 전북도 지방사업으로 인식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국가기관인 새만금개발청이 생겼는데도 걸핏하면 전북도가 나선다. 언론도 똑같다. 물론 지역언론이 얼마든지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지역정서를 바탕에 깔고 보도하므로 국가사업이 지방사업처럼 인식될 수 있다는 것. 새만금사업은 분명 국가에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전북도에서 감놔라 배놔라 할 성질이 아니다. 특히 아직도 이 사업을 마치 전북도 사업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러면 새만금개발청이 일하기가 어렵다.그간 정치인들이 새만금사업에 올인해 새만금특별법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새만금개발청을 발족시키는 등 성과를 거뒀지만 이제는 개발청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접근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지금도 예전같이 새만금사업 없이는 마치 죽음을 달라는 식으로 대응하면 곤란하다. 도내 국회의원들이 예산철만 닥치면 이 사업을 놓고 마냥 울어댈 게 아니라 개발청을 앞세워 예산을 확보토록 해야 한다. 앞으로는 도에서 이 사업을 내려 놓는게 다른 예산 확보를 위해 전략상 유리할 수 있다. 항상 타 지역 국회의원들이 새만금사업 예산을 마지막까지 볼모로 잡았다가 통과시켜 주기 때문에 전북이 다른 국가예산 확보하는데 애를 먹었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4.02.26 23:02

출판기념회

출사표(出師表)란 ‘군대를 일으키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뜻이다. 중국 삼국시대 때 위나라 땅을 수복하지 못하고 죽은 촉나라 황제 유비는 “반드시 북방을 수복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을 받들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나는 재상 제갈량이 황제 유선 앞에 나아가 바친 글이 출사표다.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출사표가 잇따르고 있다. 군대를 일으킨다는 뜻의 출사는 출마이고, 출사표는 출마선언문 쯤 되겠다. 출사는 곧 후보의 세(勢) 과시와 비슷한 뜻일 텐데, 요즘엔 출판기념회가 그 대체 수단이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의 ‘군사’들이 모인 출판기념회가 있는가 하면 채 100명도 모이지 않은 출판기념회도 있다. 선거를 앞둔 후보의 책 출판은 인지도 향상과 선거비용 조달 수단이다. 책을 펴내는 걸 상재(上梓)라 한다. 출판하기 위해 인쇄에 붙인다는 뜻이다. 책값을 넣은 겉봉투에는 대개 ‘축 상재’라 적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축 필승’이나 ‘축 발전’ ‘건투를 빈다’는 표현들이 많다. 전투적인 수사다. 책 낸 주인공한테 승리를 기원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출사표다. 출판 행사는 인지도가 낮은 정치신인한테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인지도 걱정이 없는 현역 정치인에게는 돈 창구다. 합법적으로 악용되는 현상을 차단하지 않으면 비리창구로 진화할 것이다. 책을 발간했다면 어떤 이유로 출마했는지의 ‘왜’(why) 와 향후 어떤 경영능력을 보여줄 것인지의 ‘어떻게’(how to)에 대한 해답이 제시돼야 한다. 제갈량이 쓴 장문의 출사표에는 나라를 걱정하면서 ‘왜’와 ‘어떻게’에 대한 처방과 간곡한 당부가 담겨 있다. 책을 내는 건 민낯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두려움 때문에 책 발간을 접은 이도 많다. 성실한 책 주인에겐 미안한 얘기이지만, 요즘 출판기념회에 등장하는 책들을 놓고 비판이 드세다. 단 한 페이지도 본인의 생각이 담기지 않은 책도 있다. 대필 발간, 짜깁기 출간 탓이다. 이걸 갖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게 참 뻔뻔하다. 이런 사람이 지역을 맡는다면 어찌될지 끔찍하다. 그런데도 눈도장 찍으려는 사람들로 넘친다. 비리의 기미를 보는 것 같다. 공천권을 쥐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은 더 꼴불견이다. ‘쩐탐(錢貪)’이 심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2.25 23:02

감히 전경인(全耕人)을 꿈꾸며

다만 신동엽시인을 좋아했을 뿐이다. 도시문명의 껍데기에 취해 항아의 흙가슴을 잊어버리는 삶은 경계하자 했던 것이다. 텃밭에 매실나무를 심은 것도 제초제와 농약으로 범벅된 차수성(次數性)적 농사업의 폐해를 조금이나마 피해보자는 뜻이었다. 매실청 우려내게 된 것은 동의보감 때문이고 매실주 담은 것은 술을 탐하는 오랜 습속의 자연스러운 발로. 고향집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연로하신 부모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한 것. 하다 보니 애정이 집착이 되고 그러다가 감히 전원생활을 운위하기까지에 이르게 된다. 밭이건 집이건 소소하게 손볼 일이 하나 둘이 아니다. 당연 손발이 바빠지고 머리 또한 교수업가(敎授業家)의 그것을 넘어설 수밖에 없는 일. 군자불기(君子不器)를 되뇌며 많은 새로운 공부를 해야 했다. 업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로!업으로서의 공부 버릇이 힘을 보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일! 쉽게 포기하지 않는 고집 아니면 자존심이 여러 가지 불편함,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순박한 시골인심도 확인하기 어려웠고 맑은 공기도 축산 냄새에 묻혀 즐길 수 없었다. 다만 경천지 주변의 산책과 고성산 산행이 심신의 피로를 가끔 풀어주었을 뿐이다. 나무에 애(집)착을 갖기 시작한 것은 친애하는 친구가 집지을 때 쓰라고 많은 목재를 선물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것을 활용해 서재를 멋들어지게 꾸며주는 목수의 손길을 보며 직접 하면 더 좋겠다! 결을 세우게 된 것이다. 처음 놀이 탁자를 만들 때만해도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다. 도면 없이 머리만 굴리다 보니 그 작은 것 하나 만드는데 시행착오가 겹쳤다. 톱질 망치질이 조금 익숙해졌다고 건방 떨다가 손가락을 다쳐 병원 신세를 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마루 밑에 쌓여있는 나무들 보면 무엇인가 만들어보고 싶어 책읽기는 뒷전이요 음악감상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그렇게 하여 어쭙잖은 평상과 의자가 여러 개 탄생한다.특히 최근 낡은 대문에서 해체한 나무로 아버님께서 만드신 대나무평상을 리모델링하고 새로 지은 목조주택에 어울리는 의자 두 개를 뚝딱 만든 것은 가슴 뿌듯한 성취라 할 수 있다. 칠까지 마치고 매실주를 거푸 마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물론 새롭게 구입한 전기톱과 전기 대패 덕분이지만 말이다. 이렇게 정년퇴임 후의 생활방편이 마련되는 것인가? 새로 만든 나무의자에 앉아 남산 바라보며 생각을 되작거려 보는 것이다!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4.02.24 23:02

도법 스님과 '화쟁 코리아'

도법 스님이 다시 길 위에 선다. 이번에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 우리 사회를 ‘화쟁정신’으로 치유하고 보듬어, 공존하고 협력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한 걸음이다. ‘화쟁코리아캠페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순례는 3월 2일 한라산 백록담에서 출발해 전국 14개 광역도시와 판문점을 거쳐 6월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막을 내리는 100일 동안의 대장정이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장인 도법스님이 주도하는 이 캠페인에는 불교계는 물론, 정계 언론계 문화계 인사들이 폭넓게 참여한다.스님은 기자간담회에서 이 캠페인을 “좌우 친북반북 친미반미를 넘어 한 민족 한 형제로 진실과 화해의 길을 함께 열어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구꼴통’이나 ‘종북좌빨’과 같은 서로를 적대시하는 말과 행동을 뿌리 뽑고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화쟁(和諍)’은 스님과 인연이 깊다. 2012년, 조계종은 스스로의 자성과 쇄신을 위해 화쟁위원회를 비롯한 4개의 위원회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통합해 결사추진본부를 세워 스님에게 맡겼다. 결사추진본부 선언문 내용의 중심은 ‘화쟁’이었다. 실천적 사상가 원효스님의 중심사상인 ‘화쟁’은 여러 대립적인 이론들을 조화시키려는 불교사상이나 교리적 쟁론의 조화를 말한다. 원효가 활동했던 당시 신라에는 화엄종 법화종 선종 교종 열반종 천태종 등등 종파주의적 갈등과 대립이 첨예했다. ‘화쟁’의 개념에 이론체계를 세우고 제시한 화쟁론을 통해 이 갈등과 대립을 어떻게 화해시키고 평화롭게 함께 하도록 할 것인가의 논리를 제공한 이가 원효다. 도법스님이 이 시대에 다시 꺼내든 ‘화쟁’은 다툼을 화해시키고 평화롭게 함께 가도록 하는 일이다. 스님은 2004년 3월에도 생명탁발순례로 절집 산문을 나섰다. 1000일 동안 산문을 넘지 않고 하루 네 차례, 다섯 시간 이상 생명과 평화와 민족화해를 위한 기도를 끝낸 직후였다. 스님은 그 순례길 위에서 꼬박 5년을 났다. 수많은 도반들이 함께 했지만 고행의 여정이었다. 세상은 별반 달라진 것 없이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순례의 참 뜻에 눈을 떴다. 도법스님의 순례는 성찰의 시간이다. 스님은 ‘길 위에 선다는 것, 그 길을 걷는다는 것은 성찰의 삶을 가꾸는 일’이라고 했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풀어내기 위해 스님이 걷는 길, 그 끝에 ‘화쟁’의 답이 놓였으면 좋겠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4.02.21 23:02

풍수지리 과학

지관(地官)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집터나 묏자리 따위를 가려서 고르는 사람을 말한다. 지관이 풍수지리를 근거로 선정하는 터를 두고 우리는 명당(明堂)이라고 한다. 풍수지리(風水地理)는 특정 지역의 주변 산세, 지세, 수세 등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이론이다. 산자가 삶을 영위하는 집과 관공서, 공장 등은 물론 망자가 안치되는 묘에 이르기까지 풍수지리는 전통적으로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첨단을 걷는 현대 과학사회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풍수지리는 우리 생활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풍수지리의 실마리는 중국 한나라 때 청오자(靑烏子)라는 사람이 지었다는 ‘청오경’이다. 풍수지리 이론이 정립된 지 2000년이 넘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풍수지리가는 단연 도선(827∼898)이 꼽힌다. 어느 날 고려를 창건한 왕건의 아버지 왕륭의 집을 지나던 도선이 “내가 일러주는 대로 집을 지으면 천지의 대수에 부합하여 내년에는 반드시 슬기로운 아이를 얻을 것”이라며 일러준 대로 왕륭이 집을 짓고 살다가 얻은 아들이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라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명당은 무엇이고, 과연 존재하는가.풍수지리가 최낙기 교수(우석대평생교육원)는 “명당이란 별다른 곳이 아니다. 인공적으로 다듬어 만든 곳이 아닌 자연 그대로이면서 햇볕이 잘 들고, 바람을 잘 막아주고,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면 그만이다”라고 정의한다. 최교수의 논리는 간단 명료하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히말라야 등산을 보자. 하루에 수십킬로미터를 걷고 또 걷다가 어느 산속에서 야영을 해야 하는 등산객들은 야영지를 정할 때 많은 것을 고려한다. 바닥이 평평한지, 산 위에서 돌이 굴러 떨어지지 않을지, 강풍에 텐트가 위협받지 않을지, 식수 조달은 가능한 곳인지 등 여부를 전반적으로 따져 가장 적정한 곳에 텐트를 친다. 숙면하며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곳, 바람과 눈, 비 등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곳이 명당인 것이다. 최근 동해안 지역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리면서 인명·재산피해가 잇따라 국민적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번 폭설 피해에서 지적된 습설이 이 지역에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이다. 풍수지리는 이런 천지의 변화무쌍한 현상까지 고려해 터를 정하고 건축할 수 있도록 하는 과학이론이 아닐까.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2.20 23:02

유능한 유권자

상당수 도민들은 각종 지표상 전국 꼴찌권을 맴도는 전북낙후에 걱정이 태산 같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는가 하는 반응들이다. 그 첫째 원인으로 정치권 탓을 자주한다. 내 탓 보다는 남의 탓이 크다는 생각들이다. 하지만 내 탓 남의 탓을 따지기 이전에 상당부분은 내 탓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통상 남의 탓 하면 정권을 들먹인다. 영남정권이 들어서 전북을 홀대하고 있어 지역이 낙후됐다고 생각한다. 물론 상당 부분은 수긍이 가지만 두 차례나 진보가 정권을 잡았을 때도 전북은 별 볼일 없었다.우리말에 잘되면 자신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으나 무작정 남의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안타까움이 있다. 전북의 낙후 원인 중에는 국회의원을 포함해서 시장 군수들의 무능력이 저변에 도사리고 있다. 국회의원이 무능해 국가예산을 잘 확보하지 못했다. 시장 군수가 무능하면 중앙부처에 인맥이 없어 길을 헤매다가 임기를 마친다. 보통 단체장으로 뽑히기만 하면 국가예산을 확보해서 일할 것처럼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지금 보수정권이 계속 집권해 중앙부처에 전북 사람이 씨가 말라가 더 힘들다.선거를 앞두고 들뜬 분위기에 마냥 휩싸이기 보다는 냉정해야 한다. 단체장의 정책 판단 실수와 선심성 행정으로 얼마나 많은 자원을 낭비했는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체장들의 일방적인 자화자찬성 홍보에 놀아났다가는 또다시 죽 쑬 수밖에 없다. 그간 5번이나 단체장 선거를 하면서 지역별로 성적표가 들쭉날쭉하다. 단체장이 아이디어를 내 발로 뛴 지역은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그렇지 않고 단체장이 사법 처리돼 자주 바뀐 지역은 지역발전이 뒷걸음질 쳤다. 5명이 사법 처리돼 낙마한 임실군은 심지어 자치권을 회수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 지경까지 간 것은 당사자들의 책임이 크지만 그 다음으로는 선출한 군민한테도 책임이 있다는 것. 그래서 단체장을 선출할 때는 인물을 검증해서 뽑아야 한다.도내서도 단체장을 잘 뽑아 지역발전을 가져온 지역이 생겼다. 고창군이 대표적 사례다. 3번 연임해 군수직을 졸업하게 된 이강수 고창군수는 의사 출신으로 성공한 자치단체장이 됐다. 이 군수는 농업을 6차 산업으로 산업화시켜 부가가치를 높였고 정보화에 앞장, 오늘의 살기 좋은 고창군을 만들었다. 이 군수처럼 역량 있는 군수를 뽑으면 주민들의 삶의 질이 확 달라진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4.02.19 23:02

자치단체 파산제

지방자치가 ‘민주주의의 학교’라면 지방재정은 ‘학교의 금고’로 비유된다. 금고가 비어있는 학교라면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도 부실해지기 마련이다. 1995년부터 민선 자치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자치단체들은 열악한 재정 때문에 죽을 맛이다. 전북지역 14개 자치단체 중 10곳이 자체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도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머슴 세경도 주지 못할 정도라면 빚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도내 자치단체 빚은 현재 1조300억원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47조7000억원, 지방공기업까지 합치면 지방부채는 100조원을 넘어섰다. 누적된 빚은 결국 주민 부담이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빚을 감당치 못해 파산에 이르는 자치단체들이 많다. 자동차산업의 ‘성지(聖地)’인 미국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시는 작년 7월18일 파산했다. 180억 달러 빚을 견디다 못해 백기를 들었다. 2011년엔 미국 앨라배마주 제퍼슨 카운티가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냈다. 신청 당시 부채는 31억4000만달러(약 3조5700억원)였다. 일본 홋카이도의 유바리(夕張)시 역시 사업을 무리하게 펼치다 353억엔의 빚을 지고 2006년 파산을 선언했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로 유명했던 유바리시는 한때 인구 12만명이 사는 알짜도시였지만 파산 이후엔 인구 1만3000여 명의 초라한 동네로 쇠락했다. 재정 부실운영의 본보기다.우리나라에서도 파산하는 자치단체가 나올지 모른다. 정부가 상반기중 자치단체 파산제 방안을 마련한 뒤 연내에 법제화하겠다고 밝혔다. 파산제는 실은 민선 자치단체가 시작되던 1995년 검토된 사안이다. 당시 김용태 내무장관은 “선심행정 등으로 재정이 매우 부실해진 자치단체에 대해 파산선고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과다한 의욕, 주민의 욕구 분출 때문에 재정부실이 우려된다는 이유다. 야당 등의 반대로 유야무야된 파산선고제가 또 불거지자 자치단체들의 반발이 심하다. 지방자치제를 형해화하려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태로 마냥 방치해 둘 수는 없다. 지방자치의 건전한 정착을 위해 자치단체 파산제는 해야 한다. 선출직 단체장의 재정 부실 운영, 재선 또는 3선을 위한 포퓰리즘적 재정 남용을 막기 위한 유력한 수단이다. 금고가 비어있는 곳에선 민주주의도, 지방자치도 허술해지기 마련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4.02.18 23:02

안나푸르나를 찾는 사람들

왜 안나푸르나를 찾는 것일까? 그 멀고 험한 곳을 찾아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일까? 카트만두까지 비행기로 7시간, 다시 포카라까지 30여분, 그곳에서 걷기(사실은 등산)가 시작되는 곳까지 버스로 90여분, 그리고 적어도 3박 4일 이상은 숨 헐떡이며 땀 범벅되어 다리 뻣뻣해질 때까지 걸어야 하는 곳. 노고단만큼 올랐다가 덕유산만큼 내려가고 다시 모악산만큼씩을 오르내리는 그 험한 일정을 자원 감내하는 것일까?그곳에서 이처럼 무모해 보이는 노역을 즐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리산 자락을 걷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많다. 더구나 그들 대부분이 해발 4,000m가 넘는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아니면 MBC(마차푸추레 베이스캠프)를 찾는 사람들이다. 전문 산악인도 아니면서. 오랜 전 수렵시절의 걷기(혹은 뛰기) DNA를 되살리기 위해? 색다른 의식주를 맛보려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일상의 진부함을 떨치기 위해? 지구의 지붕 히말라야, 우주와 통하는 그 정기를 마시려고? 아니면 한국인 특유의 나 어디 갔다 왔네! 폼 잡기 위해?웃을 수밖에 없는 왜 살지요? 만큼이나 답하기 멍멍한 질문이다. 답 없이도 살아가듯 답 모르면서도 걷고 또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한다. 아니 생각을 놓친다. 버린다. 그냥 앞 사람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숨 헐떡거릴 뿐이다.그 중에는 선배 권유에 떠밀려 멋모르고 따라나서 소화장애에 호흡곤란까지 겪으며 이 무슨 미친 짓! 투덜대다가 황혼의 설산 바라보며 마신 맥주 한 잔에 가슴이 확! 터지는 개안(開眼)의 기쁨을 느낀 사장님도 있다. 일중독으로 연차를 쓰지 않아 직장으로부터 지청구를 듣다가 남편 따라 엉겹결에 참여했다가 토사곽란으로 몸고생 마음고생, 결국은 조랑말 신세까지 지게 되었지만 일약 안나푸르나의 잔 다르크로 뭇 사람들의 시샘과 갈채를 받은 여인도 있다. 혼자 14박 15일 걸었다는, 이제는 설산 바라보는 것도 귀찮다!는 앳된 여대생도 있고, 침낭 없이 뜨거운 물통 하나 품고 자며 4박 5일로 ABC가지 다녀온, 호주 1년 연수동안 6,000만원을 벌었다는, 당찬 대구 대학생도 함께 걸었다. 그들 모두 걷는 이유는 모를지라도 그 의미는 알 것이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가 가만 놔두었을 리 없고, 영원한 평화와 사랑(Never Ending Peace And Love)을 뜻하는 네팔이 그냥 보냈을 리도 없을 것이니.이종민 객원논설위원

  • 오피니언
  • 기고
  • 2014.02.17 23:02

정조의 축제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는 정조(1752~1800)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기록한 책이다. 의궤(儀軌)는 조선시대 왕실의 중요한 행사 의례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국가공식기록물. 국가의 통치철학과 운영체계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기록물로 평가받아 2007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의궤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이야기를 담아 주목받는 것이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록한 ‘원행을묘정리의궤’다. 이 의궤는 축제 준비부터 모든 행사의 진행상황, 행사가 끝난 후의 일처리까지 8일 동안의 행적을 여덟 권의 책에 정교하게 기록하고 있다. 1795년, 정조는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축제를 열었다. 서울에서 시작해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 화성까지 이르는 8일 동안의 축제에는 수행원만 6,000여명, 말 1,400필, 총 예산 10만 냥(현재의 화폐가치로는 70억 원 정도)이 소요됐다. 조선역사상 가장 성대하고 화려한 행렬이었다. 그러나 이 축제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나에게 깊은 뜻이 있다”는 정조의 뜻에 따라 준비되었던 이 축제는 아버지(영조)에 의해 뒤주 속 죽음을 당한 사도세자, 그의 죽음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던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의 아픈 상처가 녹아있다. 정조는 17776년 즉위해 세상을 떠날 때까지 24년 동안 당파와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우수한 인재를 등용했다.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과 정책을 연구하게 하고 다양한 서적을 간행해 학문을 진흥시킨 왕이었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개혁군주로 평가받는 정조의 소망 또한 ‘백성들이 풍요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정조는 그 많은 예산과 인력과 노동을 투자하며 축제를 벌였을까. 의궤에 그 답이 있다. 이 축제의 중심에는 백성이 있다. 정조는 가난한 이들에게 쌀과 소금을 나눠주고 직접 술잔을 내렸다. 특정한 세력들이 누리는 권력과 이익을 뺏어(?) 백성들과 나누기 위한 축제였던 것이다. 의궤를 통해 만나는 정조의 이야기는 우리 현실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침 지난해 가을, KBS가 ‘의궤, 8일 동안의 축제’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의궤를 3D영상으로 복원한 대작의 감동과 정치인의 올바른 철학이 주는 울림이 깊다. 선거철이다. ‘주민과 지역을 위해 나선다’는 후보들이 늘고 있다. 그들에게 이 프로그램 ‘다시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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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14.02.14 23:02

태상의 지도자

선거철이 되면 ‘나요, 나요’를 외치며 나타나는 공직 후보들이 많다. 대통령 선거 후보는 그 수가 한 자릿수에 그치지만 국회의원선거, 지방선거는 입지자가 엄청나다. 도내의 경우 도지사, 교육감, 기초단체장 14명, 광역의원 34명, 기초의원 163명을 선출한다. 매번 선거 때마다 자천타천 후보로 거론되는 인물이 1,000명 전후다. 어느 지역은 입지자가 너무 많아 여론조사 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공직선거 입지자들은 얼마나 준비된 인물들일까. 현역과 매번 출마하는 입지자들이 많으니, 상당수의 입지자들은 준비를 많이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세금 먹고 활동하는 공직을 꿈꾸는 사람들이니, 능력과 도덕성, 청렴성 등을 두루 갖췄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것은 승자독식의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이다. 선거는 1등만 인정을 하고, 승리에 따른 모든 전과를 얻어 누릴 수 있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패하지 않기 위해 많은 입지자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일쑤다.하지만 선거법 위반 행위는 선관위와 검경의 그물에 걸려들든, 양심적인 유권자 신고에 덜미가 잡히든, 상대방의 감시망에 걸리든, 내부 선거운동원의 배신이든, 자중지란이든 결국 만천하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입지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나는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선거는 지도자와 감시자, 일꾼, 봉사자를 선출하는 중대사다. 모든 선거는 똑같은 무게를 갖는다. 지도자가 어떻게 사고하고, 조직을 이끌어 가느냐에 따라 조직의 명운이 달라진다. 지도자는 많은 덕목을 갖춰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전북일보가 지난 7일 전북대 진수당에서 개최한 ‘6.4지방선거 필승전략 워크숍’에서 박호군 새청치추진위공동위원장이 제시한 몇가지 덕목은 주목할 만하다. 첫째, 주민을 먼저 사랑해야 한다. 둘째, 나보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 다른 사람의 능력을 최상으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넷째, 인재를 판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또 박 위원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노자는 지도자의 등급을 4등급으로 구분했는데, 태상(太上)의 지도자는 백성이 그 존재를 알 뿐이지 지도자가 뭘 하는지 굳이 알지 못해도 태평성대를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다. 어쨌든 공직후보자는 먼저 도덕성을 갖추고 역량을 보여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4.02.13 23:02

후보자질론

6·4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후보감도 안 되는 사람들이 선거판을 설친다. 남들이 다‘감’이 안 된다고 손가락질 하는데도 돈키호테 마냥 모르쇠로 일관한다. 사실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선거에 관해서는 장본인한테 쓴 소리를 안 한다. 설령 자질이 떨어져도 그렇다. 굳이 해줄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상식이란 게 있다. 상식은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생각들이다. 선거는 다수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상식을 저버리면 성공할 수 없다. 자기 분수도 모른 채 윤흥길이 쓴 소설 ‘완장’속의 저수지 관리인인 임종술 마냥 마구 날뛰면 끝장이다.선거직은 동냥 벼슬이다. 원래 동냥이란 스님들이 곡식이나 재물을 얻으려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닌다는 불교 용어에서 유래됐다. 하지만 실제로는 거지나 동냥아치의 구걸·걸식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후보자가 유권자한테 표를 동냥하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맘을 움직여야 표가 나오기 때문에 그게 쉽지 않다. 사람의 맘을 움직이려면 설득작업이 중요하지만 관계론적 사고에서 판단하는 것인 만큼 복잡하다. 유권자들이 후보한테 표 줄 때는 먼저 자신과의 이해관계를 따진다. 그래서 표 모으기가 어렵다는 것이다.주역 첫 장에‘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이 나온다. 착한 일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고 그 복이 자손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또 논어 이인편에는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다. 덕은 외롭지 않으니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는 말로 새겨진다. 선거라는 것은 그 사람의 행동거지는 물론 그 집안 3대까지 까발려 지게 돼 있다. 장관들의 인사청문회 그 이상으로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남을 위해 덕도 베풀지 않은 사람이 독불장군 식으로 선거판에 뛰어 드는 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선거직은 모름지기 자신의 몸을 불살라 세상에 빛을 밝혀주는 촛불과 같은 봉사자 역할을 다해야 한다. 입신양명만을 위해 개념 없이 뛰어 들었다간 자칫 패가망신 당할 수 있다. 돈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거나 고위직 지냈다고 우쭐대는 사람은 세상이 안다. 덕이 없고 겸손함이 부족한 사람은 아예 선거판에 낄 생각을 말아야 한다. 아직 공천 작업이 시작되지 않아 옥석구분이 안 되고 있지만 감이 안 되는 사람은 본인은 물론 지역을 위해서도 접는 게 낫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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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성일
  • 2014.02.12 23:02

순교의 고장 전북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주교회를 세운 사람은 실학자 이승훈(1756∼1801)이다. 중국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얻은 이승훈은 1784년 서울 수표교 부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벽에게 천주교 세례를 주었는데 이를 천주교회의 창설로 본다. 이후 천주교식 의례가 행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의 명동성당 자리인 서울 명례동 김범우의 집이 대표적인 곳이었다. 1785년 이벽의 주재로 이곳에 수십명이 모여 예배를 보다 체포된 사건이 벌어졌다. 역관이었던 김범우는 유배됐고 고문 후유증으로 1년 만에 죽었다. 조선 최초의 천주교 희생자다. 이때부터 천주교는 사학(邪學)으로 규정돼 금지된다.우리나라 천주교 역사는 선교가 아닌 순교의 역사다. 신앙인들은 박해에 피로 맞섰다. 정치적 음모의 희생도 컸다. 천주교 신앙인이 많았던 남인과 시파를 제거하기 위한 신유박해(1801년) 때에는 최초의 선교사인 중국인 신부 주문모와 이승훈, 정약종이 처형됐다. 기해박해(1839년) 당시엔 서양인 신부 3명 등 119명이 처형됐고 병오박해(1846년) 때엔 최초의 한국인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순교했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엔 무려 6000여 명의 신자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1984년 처음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땅에 입 맞추면서 ‘순교자의 땅’이라고 한 말은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전주 진북동 ‘숲정이’(동국해성아파트 자리)와 전주 남문 밖 처형장(전동성당 자리), 전주 대성동 ‘치명자 산’ 등은 순교의 터다. 숲이 우거졌다 하여 이름 붙여진 ‘숲정이’는 박해 때마다 많은 천주교인들이 처형된 곳이다. 전동성당 자리는 어머니의 장례를 유교식 상장(喪葬) 대신 천주교 예식으로 치렀다는 죄목으로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이 1791년 12월8일 처형된 곳이다. 김범우한테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빌려 공부한 윤지충은 한국 천주교의 첫 순교자다. 윤지충 등 124위의 시복(諡福)이 결정됐다. 시복은 성인 이전 단계인 복자(福者)로 선포하는 걸 이르는 말이다. 124위 중 윤지충 등 24위가 전북에서 순교했다. 오는 8월13일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프린치스코 교황이 참석할 예정이다. 시복식도 주재할 것이라고 한다. 시복식이 열린다면 순교자 묘역이 있는 성지 ‘치명자 산’이 그 의미를 훨씬 깊게 할 것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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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재
  • 2014.02.1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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