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최대 곡창
“초록빛으로 가득한 들녘끝은 아슴하게 멀었다. 그 가이없이 넓은 들의 끝과 끝은 눈길이 닿지 않아 마치도 하늘이 그대로 내려앉은듯 싶다.
그 푸르름속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움직임을 느낄수 없는 채 멀고 작은 점으로 찍혀 있었다.…”
이 문장은 1910년 한일합방무렵에서 1945년 해방까지 근대사 중심에서 활약한 김제인들의 수난사와 민족혼등을 다룬 조정래 작가의 역사 대하소설 ‘아리랑’의 맨 처음에 나오는 대목이다.
조정래 작가는 김제평야를 막히는 곳이 없이 탁트여서 한반도 땅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 내는 곳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조작가는 또 지평선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도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고 기술했다.
이는 김제평야가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함을 표현해주고 있다.
◇ 예로부터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 불린 김제평야
김제평야는 예로부터 ‘징게 맹갱 외에밋들’이라 불려왔다.
징게·맹게는 김제·만경, 외야미는 너른 들의 사투리로 김제·만경을 합쳐 금만평야라고도 한다.
이농현상및 노령화로 예전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김제평야는 논이 7천만평, 한해 쌀 생산량이 1백76만8천가마에 이른다.
전북도내에서 생산되는 쌀의 1/7, 전국의 1/40이 김제평야에서 나오는 셈이다. 강원도 전체 생산량보다 많다.
국민의 주식인 쌀의 생산기지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곡창으로는 김제 땅만한 곳을 찾기 어렵다.
북으로는 군산과 경계를 이룬 만경강이, 남으로는 부안과 맞닿은 동진강이 흐른다.
평야를 가로질러 흐르는 원평천과 두월천·금구천이 너른 들을 적셔 풍요를 일궈낸다.
동쪽에 솟은 모악산이 샛바람을 막고, 남쪽으로는 변산반도가 마파람을 걸러준다.
서쪽으로 간간이 야산이 있긴 하지만 모두 1백∼2백m 정도 높이밖에 되지 않은 구릉이다.
◇일찍부터 도작문화 꽃피워
이러한 여건으로 예로부터 동양최대 최고의 수리시설인 벽골제가 축조되는등 일찌기 도작(稻作)문화가 꽃피웠고 미곡생산중심지로서 식량보고역할을 해왔다.
현재 2천5백m의 제방과 2개의 수문만이 남아 있는 벽골제는 AD 330년경인 백제 비류왕에 축조되고 규모는 제방길이 3.3㎞·높이 5.7m ·상단폭 10m·하단폭 21m로 관개면적이 1만㏊(3천만평)에 달했다고 역사기록은 전하고 있다.
김제는 삼한시대에는 볏비리국, 백제때는 볏골군이었다. 신라때부터 김제로 불렸다.
노랗게 물든 황금들녘을 보고 지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사금이 많아 김제라고도 했다고도 한다. 15년전만 해도 추수가 끝나면 포크레인을 동원해 금맥을 찾는 노다지꾼들로 들끓었다.
벽골제도 볏골에서 나온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다.
풍부한 쌀생산은 풍요와 멋으로 이어졌다. 함포고복(含哺鼓腹)으로 농악·서예·구성진 판소리·동양화등에 각종 문화예술활동이 활발했고 뛰어난 실력및 기량을 발휘한 예술인 을 많이 배출했다.
보릿고개가 있던 1970년전만 해도 쌀의 위력은 대단해 김제지역에서는 경상도 사람들이 물건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 팔거나 날품을 제공하고 쌀을 얻어간 광경이 많이 목격되었다.
◇일제때는 수탈의 현장
그러나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김제쌀을 공출해가기 위해 많은 농민들을 동원해 전북에서 최초로 만경∼군산간 도로를 뚫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또 우리농민들로부터 자국민들의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대농장을 평야지역에 여러곳을 설치했다.
김제시 죽산면 소재지에는 일본식 식민지 착취형 농장주였던 교본(하시모토)농장 건물이 남아 있다. 현재 농업기반공사 동진지부 죽산지소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전형의 하나이다.
이과정에서 김제지역 농민들이 쌀을 착취당하고 겪은 고초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로 이런점에서 일제시대 우리민족의 수난사등을 다룬 조정래작가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무대가 되기에 충분했다.
김제평야는 지난 1960년대부터 불어닥친 산업화추세로 1차산업인 농업이 밀리서 관심의 대상에서 한쪽으로 비껴있었다.
이농현상과 농민의 노령화로 김제들녘엔 농자지천하대본이라 쓰인 깃발과 농악가락이 자취를 점차 감추고 생산된 쌀이 맛과 품질이 좋으면서도 경기미를 둔갑판매되는가 하면 제값을 받지 못했다.
상대적 낙후감에 따른 좌절및 상실감등에서 김제쌀의 특성화및 이미지제고에 노력하지 않을 결과이기도 하다.
◇지평선축제와 지평선쌀
다행스럽게도 민선자치시대이후 농경문화의 중심지및 쌀생산고장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되찾고 소득증대를 위한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다.
독특한 도작문화와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수 있는 광활한 평야등을 테마로 김제시가 지난 99년부터 개최하고 있는 지평선축제는 여느 축제와 차별화를 꾀하고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제공해 짧은 역사에도 불구, 성공적축제로 자리매김돼 김제를 부각하는데 큰 몫을 하고 있다.
2000년에 개최된 제 2회 축제시 20여만명의 참여인파를 기록하고 문화관광부가 2001년 전국우수문화관광축제로 선정한 점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지평선쌀’은 김제지역 공동브랜드 쌀로, 김제시가 국내 제일 곡창지역이자 청정무공해지역인 관내에서 생산되는 쌀이 브랜드난립과 타지역 쌀로 둔갑판매되어 소비자들에게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하고 제값을 받지 못하자 지난 1999년부터 개발한 것. 지평선쌀은 얼굴있는 특색쌀로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있어 국내 최고의 쌀생산고장으로 부활이 기대되고 있다.
◇향후 전망및 과제
WT0협정에 따라 오는 2004년부터는 국내 쌀시장이 전면개방될 예정이어서 농촌들녘에는 또다시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수입쌀로 인해 국내쌀생산기반이 무너지지 않을까하는 우려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쌀생산기반이 붕괴돼서는 안된다. 주식 자체를 외국에 의존할 경우 식량안보가 위협받음을 새삼 거론하지 않더라도 쌀생산기반은 유지돼야 한다. 이를위해서는 쌀산업 발전을 위한 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쌀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농민들은 이제는 양보다는 품질위주의 청정무공해 쌀을 생산해내는데 주력하고 자치단체및 생산단체는 차별화된 마케팅전략으로 안정적 판로를 확보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또 정부는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논농사를 짓는 농가들에 대한 직접지불제같은 적극적인 지원책으로 영농의욕을 고취시키는등 3박자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김제평야중 물부족으로 고통을 받아온 청하·진봉·성덕·백산·만경일원에 금강2지구 대단위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올해부터 금강호 용수가 공급됨으로써 전천후 농경지로 탈바꿈되게 됐다.
김제평야는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이자 전북의 경쟁력 원천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만큼 함포고복의 부활기대가 꿈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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