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그 나라 산업의 뿌리다. 그 뿌리가 튼튼해야 나라가 건강하다.
세계 일류기업과 어깨를 겨루는 현대나 삼성 등 대기업도 올챙이 시절엔 중소기업이었다. 현대신화를 이룩한 정주영 회장은 전경련 회장시절 입버릇처럼 “나도 40년전엔 중소기업을 했었어, 잘 좀 봐줘”라고 했다지 않던가.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체수가 그 나라 인구수의 5%를 넘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야 사회가 안정되고 순조로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업체수는 모두 301만개에 종사자 1천360만명, 전북은 12만1천개에 47만명 가량이다.
이 가운데 95% 안팎이 중소기업에 해당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우리나라 산업은 중소기업이 6%를 차지하니, 비교적 안정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중소기업이 이만큼이라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개발경제 시대의 정부정책이 큰 몫을 했다는게 일반적 평가다. 하지만 그 뒤에는 중소기업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들의 땀과 눈물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심인물 가운데 세계중소기업연맹 유기정 총재(柳琦諪·80)는 우뚝 선 존재다.
‘중소기업계의 대부(代父)’라 불리는 유총재를 만난 곳은 전주관광호텔에서였다. 매달 한번씩 갖는 고덕회 모임을 주도하기 위해 내려온 것이다.
80을 넘겼는데도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인 백발에 홍조를 띤 동안(童顔)은 여전했다. 이날 모임에서 인사말을 마치자 마자 옆방, 폐백실로 옮겨 인터뷰를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며 “무엇을 타고 오셨느냐”고 묻자 “서울에서 새벽 6시 35분 새마을호 기차로 내려 왔다”면서 “국회의원 시절엔 주말마다 자동차로 내려왔으나 교통사고가 난후 꼭 기차를 이용한다”고 말한다.
유총재의 고향인 전주 물왕물이며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과 국회의원으로 있던 당시의 일화 등을 떠올리며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곧 바로 중소기업 얘기로 들어갔다.
먼저 그의 중소기업관(觀)부터 시작했다.
“우리 중소기업들도 세계 최고의 기술과 제품으로 승부를 해야 외국뿐 아니라 국내시장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현직을 맡고 있지 않은데 이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청산유수로 풀어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뭐냐”고 하자 통계수치를 하나하나 대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중소기업 지원을 늘려야 합니다.우리나라의 경우 중소기업 직접수출이 42-45%, 대기업 상사를 통한 간접수출이 18%, 그리고 부품및 포장재 등을 통한 것 등 중소기업이 우리나라 수출의 7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반면 무역금융은 25%에 불과합니다.”
유총재는 “이러한 관행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중소기업이 일한만큼 지원해 주고 또 사회에서 대접받을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고 열을 올린다.
중소기업인들의 자세에 대해서도 따끔하게 말을 이었다.
“가뭄에 비가 내리더라도 받을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원도 어느 정도 사전에 준비가 돼 있어야 혜택을 입을 수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지원의지도 분명히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정책을 잘 활용하려면 무엇보다 중소기업인들의 노력이 선행돼야 합니다”
방향을 바꿔 “중소기업 활동을 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이 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중소기업 관련 법률을 제정한 것과 중소기업회관을 지은 것을 꼽았다. 그러면서 의외로 전두환 대통령을 높이 평가했다. 80년대 중소기업 진흥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헌법개정시 123조 2항과 3항, 즉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여야 한다’는 등의 조항을 넣은 점을 들었다. 이 조항은 세계 어느나라의 헌법에도 없다는 것.
또 중소기업 제품구매촉진법 등을 제정해 공공기관 등이 수의계약으로 중소기업 제품을 구매하도록 한 점도 들었다.
이 법으로 지금까지 42조원의 중소기업 제품을 납품, 중소기업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늘날 WTO 협정에는 저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회관 역시 그가 중앙회장 재임시 혼을 쏟은 작품. 국회의사당 앞 대지 2천7백평, 건평 1만2천5백평 규모의 10층 건물로 중소기업인의 본산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인적인 일로 화제를 돌렸다. “인쇄업에 뛰어들게 된 동기가 뭐냐”고 하자 금속활자 등 조상들이 이룩한 찬란한 인쇄문화에 대해 길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5·16 군사혁명(쿠데타)과 관련된 일화를 털어놨다. 5·16을 이미 한달전에 알고 있었다는 깜짝 놀랄 얘기였다.
당시 혁명군이 사용한 삐라(인쇄전단)를 자신의 삼화인쇄에서 찍었고 혁명 다음날에는 민간이 군에 호응해야 한다면서 빵 3만개를 혁명군 식사로 넣어줬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10년 이상 침묵했었다고 한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을 맡게 된 경위 등을 물은 후 경영철학이나 좌우명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특별한 것이 있나?”하면서도 “사람이 근면 성실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절대 남에게 손해보지 않게 하고 돌리지(속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도 보탰다.
더불어 어린시절 읽은 책중에 링컨은 자신이 성장하는데 은사였고, 마하트마 간디는 독립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데 스승이었다고 밝혔다. 간디의 정신을 본받아 ‘제2의 독립운동은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끝으로 전북발전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그러자 대뜸 “전북사람들은 의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살아 남으려면 의식개혁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농민 4백만명이 1년에 생산하는 것(쌀값)은 13조원인데 2만5천명의 삼성전자 직원은 35조원의 매상을 올리는 시대입니다.”
유총재는 “전라감영이 있었던 전주가 지금은 어떻게 됐습니까”하면서 “새만금도 도민들이 일치단결하여 싱가포르나 홍콩처럼 개발해야 한다”고 힘을 주었다. 말 마디마다 80평생의 풍상(風霜)과 남다른 의지가 배어 있었다.
◇‥‥ 유기정 총재
단구(短軀)에 아직도 의욕이 넘치는 유기정총재는 1922년 전주시 중노송동 물왕물에서 태어났다. 6남3녀 가운데 4남. 물왕물은 전주 유(柳)씨 동정파(東井派)가 수백년 살던 곳이다. 유총재의 집은 연초도가(煙草都家)였으나 1921년 일제의 전매령 등으로 몰락했다.
그래서 어렸을 적 배가 고파 화학비료에 섞인 어분을 주워먹을 정도였다. 초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하고 전주세무서 사환으로 2년간 근무하다 1937년 전주공업학교 가구과에 진학, 1940년 졸업했다. 3년간 우등생과 반장을 도맡았으며 졸업식장에서 도지사상(지금의 교육감상)을 받았다.
졸업후 전주전매청 직공으로 있다 1942년 서울로 올라가 제약회사 잡역을 거쳐 평화당 인쇄부에 취직한다. 여기에서 성실성을 인정받아 사장의 둘째딸인 현재의 부인을 만나 결혼한다.
6·25가 터지자 전주에 내려와 서학동에서 한지공장을 운영하는데, 대법원 등기부 복원사업에 참여해 큰 돈을 벌게 된다.
1954년엔 다시 서울로 올라가 삼화인쇄를, 1962년엔 삼화출판사를 설립한다. 삼화인쇄는 국내 원색동판(銅版)시대를 열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과 일본에 칼라인쇄물을 수출했다. 1960년대엔 전국 최초로 칼라 오프셋 인쇄를 시작했고 ‘사상계’‘원색대백과사전’등을 인쇄했다.
이후 대한인쇄공업협동조합연합회장(1962-71), 중등교과서 사장(1968-69년), 전주 완주에서 8·9·10대 국회의원(1971-80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1980-88년)·명예회장(1988-98년),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고리인 한국경제인동우회장(1990-98년) 등 중책을 역임했다.
또 1992년-2000년 세계중소기업연맹(WASME) 총재로서 세계중소기업대회를 치렀고 올 9월 다시 총재직을 맡았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명예회장(1999-현재), 서울 컨트리클럽 이사장(1999-2000년)등도 지냈다. 삼화인쇄는 올 8월 세계적 자동차회사인 포드사로 부터 ‘100주년 화보집’50만부(2백만 달러)를 수주했다.
◇‥‥ 南山문화재단과 高德會
1980년 설립한 남산(南山)문화재단은 유총재가 부모처럼 따르던 맏형을 기리기 위해 출발했다. 남산은 맏형의 아명(兒名)으로 소양에서 과수원을 하다 영양실조로 33세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 기금은 5억원으로 연간 4천만원 가량을 장학금과 효자효부,고향을 빛낸 사람 등에게 주어왔다. 그동안 수혜자는 6백명에 이른다.
올 6월 창립한 고덕회(高德會·회장 김영구)는 전주 고덕산에서 명칭을 따온 것으로 남산문화재단에서 운영비를 대고 있다. 매월 도민들을 상대로 초청강연을 연다.
올 6월에는 유총재가, 7월 심종섭 전 학술원장, 9월 이종훈 전 중앙대총장이 강연을 가졌고 10월 임방현 전 국회의원, 11월 백영훈박사, 12월 이철승 전 국회부의장, 2003년 1월 고려대 김동기교수, 2월 한전 강동석사장이 예정돼 있다.
유총재는 “지역발전을 위해 돌이라도 하나 더 얹고 싶은 심정”이라며 “전북이 발전하려면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도민의식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