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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감축 논의속 군산미공군기지 둘러보기

군산미공군기지에서는 하루에 약 50회의 전투기 출격연습이 있다. (desk@jjan.kr)

 

최근 주한미군 감축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새롭게 끌고 있는 이색지대.

 

군산시청에서 서남쪽으로 약 25km 떨어진 옥서면 일대에 위치한 약 2백50만평에 달하는 ‘한국속의 작은 아메리카’.

 

군산미공군기지는 한국의 땅이지만 국제법상 미국의 법률이 적용되는 특수지역으로 일본패망후 우리땅이 채 되기전에 반세기 넘게 다시 미군이 주둔, 우리의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공간이다.

 

이곳을 통해 들어왔던 미국의 캔류나 양주, 전자제품 등 각종 미국제품(미군 PX제품)들은 한때 군산지역의 지하경제를 붐비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50∼70년중반까지 다른 지역사람들에게는 최고 선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우리나라 경제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이같은 미국제품 선호현상은 사라졌지만 한때 50대이상 중장년층에게는 미군기지내 음식점에서 서양요리를 먹는 것이 자랑인 시절이 있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다양한 직종이 군산에서 최고 직장중 하나였을 뿐 아니라 부러움의 대상(?)이었단다. 이같은 문화 접촉(또는 경험)때문에 최근과 같이 본격적인 미국 이민 붐이 일어나기 전에는 군산시민들이 미국이민이나 유학을 도내는 물론 전국적으로 주도하는 입장에 서있기도 했다.

 

군산미공군기지의 역사는 1945년 10월5일 미군이 함정을 타고 군산항에 입항한 미군 기계화부대가 일본군의 군용비행장이었던 옥서면 선연리일대에 주둔하면서 비롯된다.

 

이곳은 천혜의 요새라고 불릴 만큼 지리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중심에 위치, 당시 미 CIA본부에서 주둔군을 직접 배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명 ‘울프 팩’으로 불리는 군산미공군기지는 미군 약 1∼2천명과 미군속 등 모두 2천명이 상주하고 있고 60대이상의 최신 전투기를 갖춘 아시아에선 손가락 안에 꼽히는 미군의 해외주요공군기지.

 

이곳에는 ‘이글루’라는 콘크리트 격납고와 대규모 운동장·야구장·골프장(9홀) 등의 시설과 종합쇼핑센터·로링 클럽 등 각종 자족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1일 보통 약 50회의 전투기 출격연습이 있지만 국내·국제상황에 따라 주일 미군과 함께 대규모의 비상훈련을 하고 있고 이 훈련시기에는 24시간동안 약 1백회이상 출격하고 있다.

 

△ 군산미군은 과연 철수하나-당초 주한미군 2만5천명체제는 2006년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한미간 협상에 따라 다소 조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감축은 지상군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이같은 감축에 한계를 느낄 경우(물론 최악의 시나리오이지만) 경기도 오산과 군산 등에 배치된 미7공군의 일부 비행단도 감축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

 

1990년초 넌-워너법안에 의한 주한미군 감축계획에 따르면 주한미공군 2개전투비행단을 1개로 축소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당시 감축개념이 이번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속에서도 공군은 대체로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게 군사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진단이다. 실제로 내부의 예산이나 인원과 관련된 문건에는 감축내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최근 논의되는 감축문제는 군산기지와 관련이 없다는게 미군기지 안팎의 공통된 여론이다.

 

△ 주한미군 감축사, 그리고 군산기지- 주한미군은 해방이후 △ 1948년 △ 1954∼65년 △ 1971년 △ 1978년 △ 1992년 등 모두 다섯차례 감축했다.

 

해방이후 7만6천명이 남아있던 주한미군은 48년 북한에서 소련군이 철수하자 군사고문단 5백여명만 남겨놓고 모두 철수했다.

 

이후 6·25전쟁이 일어나자 32만6천명까지 늘었다가 54년부터 10여년동안 단계적으로 빠져나가 65년엔 6만3천명으로 까지 줄었다.

 

그러다가 71년 리처드 닉슨 미대통령의 닉슨 독트린발표와 함께 채택된 고립주의로 제7사단 2만명이 감축됐다. 78년엔 지미 카터대통령이 주한 미군 전면철수 계획을 발표한뒤 6천명이 전격 철수했다.이후 1천명 안팎의 조정을 거듭하던 주한미군은 냉전종식과 함께 동아시아 전략구상이 바뀌면서 92년 1차로 육군 5천명, 공군 2천명 등 7천명을 감축했다. 그러나 1차 북핵위기가 터지면서 추가감축계획은 보류됐고 이후 3만7천명선을 유지해오다 최근 1만2천5백명에 대한 감축 움직임이 본격 대두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군산미공군기지도 한때 3천명에 달하는 병력이 있었으나 78년 미군 철수로 크게 줄어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에따라 군산경제에서 미군에 의존하는 경제비중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 군산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의 태동과 활동- 95년 군산미군기지사용에 관한 협정이 체결, 민항기의 활주로 사용료를 매회 이착륙때마다 60달러로 활주로 유지 및 보수비 전체의 25%안에 지불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측이 지난 97년 12월초 계약 만기일을 앞두고 대폭적인 활주로사용료 인상을 요구해오자 인상안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군산미군기지 민항활주로 사용료 인상안 철회를 위한 시민모임’을 결성했다. 이 시민모임은 본격적인 활동을 통해 인상안을 철회시키고 5년동안 점차적으로 인상하는 안을 관철시켜 시민운동의 엄청난 동력을 새삼 확인시켜줬다.

 

이후 이같은 투쟁성과를 계승하고 군산미군기지에 대한 우리지역의 자주권 회복운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98년 5월 군산미군기지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을 결성했다.

 

특히 우리땅찾기 시민모임은 전국의 미군기지 관련단체들과 공대위를 구성해 연대활동을 벌이는 한편 한미행정협정 개정과 공여지 해제, 주변지역 환경감시 및 투쟁 등 다양한 활동과 함께 성과를 이뤄냈다.

 

여기에다 한미간의 연합토지관리계획에 따라 지난 2002년 3월 옥서면 미공군기지 외곽 26만2천평을 반환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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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욱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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