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현(장계성당 신부)
봄이 왔습니다. 여기저기서 생명의 소리, 빛깔, 몸짓이 넘쳐납니다. 노래 가사처럼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집니다. 새봄, 새 생명을 축하합니다.
학창시절에 보았던 ?뷰티풀 피플?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몇 년 동안 아프리카의 한 지역을 대상으로 촬영한 기록영화입니다. 가뭄이 계속되어 샘도 개울도 저수지도 마르자 생물들은 힘든 생존을 계속합니다. 많은 생명이 죽어갑니다. 그러다 마침내 비가 내립니다. 생명체가 전혀 보이지 않던 대지에 비가 내리자 식물들은 싹을 틔우고, 끈질기게 버텨낸 온갖 날짐승, 길짐승들이 나타나 저마다 살아 있음을 기뻐합니다. 그 때 보았던 홍학, 사슴, 게 들의 군무가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지난 겨울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우리집 금계(金鷄) 암컷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모이를 주러 닭장에 들어가면서 문을 잘 닫지 않았더니, 그 사이 열린 문으로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 눈 속에서 제대로 먹이나 찾아먹을지 걱정이 되어 며칠 동안 두루 찾아보았지만, 이미 눈 쌓인 벌판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거짓말처럼 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말 기뻤습니다. 지금도 그때 생각만 하면 기쁨이 절로 솟아납니다. 그 일을 두고 나는 성서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작은아들이 살아서 돌아온 게 기뻤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그저 아들이 지금 살아 있기만을 바랐던 것입니다.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는 아무 것도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말고 더 이상 무엇을 확인한단 말입니까? 그런데 큰아들은 동생이 그동안 형편없이 살았다고 비난하며, 그런 놈은 집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큰아들을 달래면서 아버지는 말합니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루가 15,32)
살아있다는 것은 그렇게 기쁜 것입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 가족들도, 그리고 이것을 지켜본 시민들도 모두 얼마나 기뻤습니까? 지진이나 산사태로 매몰된 폐허 더미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람들의 모습을 TV 화면으로 보면서 나 자신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더없이 고맙고 기쁩니다. 나는 살아있습니다!
구차스럽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제 식민 통치 아래서, 6?25전쟁 중 공산 치하에서 우리가 그랬습니다. 유태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치하에서 구차스럽더라도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살아남았다고 비난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 삶을 고마워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살아있다는 것!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은 바로 하느님의 영광이다.” 2세기의 교부 성 이레네오가 한 말입니다.
/정승현(장계성당 신부)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