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석주(전라북도 문화유산 해설사)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니 어언 50년 전 일이다.
늦가을이 되면 초가지붕과 담장을 씌운 헌 볏짚 이엉을 걷어내고 노오란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곤 하였다.
조부께서 한의원을 하셨고 부친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계셨기 때문에 어릴 적 필자의 집은 살림이 비교적 부유한 편에 속하였다.
안채와 문간채는 기와지붕이었고 그 외에 다섯 채의 사랑채와 곳간이 있었으며 울안의 대지가 천여 평이었으니 일하는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항상 5~6명씩 있었다.
그해 가을, 몇 십년 묵은 별채의 초가지붕과 담장의 볏짚 이엉을 걷고 기와지붕으로 교체하는 작업을 하였다.
인부들 십여 명이 동원되어 며칠을 계속하였는데 어느 날 담벼락을 씌운 마지막 이엉을 걷어내는 판이었다.
담장의 한 가운데서 인부들이 소리쳐 가보니 백년 묵은 황구렁이 암수 두 마리가 똬리를 틀고 눈을 번쩍거리며 혀를 날름날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작대기로 툭툭 치고 밀어내도 꿈쩍을 안하는 것이었다. 크기도 엄청나게 컸거니와 두 마리의 구렁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그렇게 커 보인 것은 누런 황금빛이 강하다 못해 현란하였고 그네들의 몸부림이 그만큼 필사적이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도 도무지 그것들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나오시더니 모두들 방에 들어가 한두 시간 후에 다시 나오라 하셨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던 구렁이 한 쌍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그런데 그로부터 2~3일 후 소 키우는 외양간 내부를 새 짚단으로 갈아주는 작업을 하였는바, 한쪽 구석 썩은 짚단 밑에서 또 한 쌍의 구렁이가 나왔다. 이번에는 새까만 먹구렁이들 이었다.
그런데 이들 한 쌍은 하얀 알을 낳아 둘이서 품고 있었다. 검정색과 대조되는 하얀색의 알이 계란보다 훨씬 커보였으며 어찌나 예쁘고 신기하던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이놈들 역시 전혀 미동도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지난번 같이 한두 시간 말미를 주고 다시 나와 보니 그네들 또한 사라졌는데 알까지 같이 없어졌다.
생각해 보니 앞전의 황구렁이 두 마리는 암수가 죽음 앞에서도 헤어질 수 없다는 굳은 사랑의 맹세가 둘을 묶어 놓았기에 얽힘을 풀지 못한 것이었고, 뒤에 나온 먹구렁이 두 마리는 부부간 금실이 좋아 알을 낳았는데 그 알을 놔두고는 차라리 죽고 말지 못 떠나겠다는 단호한 결단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사랑을 장난같이 하고 이혼을 밥 먹듯이 하는데 이제는 좀더 신중하게 가치관을 정립해야 할 때라 보여, 하찮은 경제적 이유로 자기자식을 버리고 학대하는 일부 못된 부모들은 미물인 뱀이나 구렁이만도 못함을 알고 스스로 자성하며 부끄러워해야 할 줄로 안다.
그리고 의리도 애정도 신의마저도 당리당략과 사리사욕 앞에 헌신짝처럼 버리는 요즈음의 정치인들께서는 초심으로 돌아가 백년 묵은 구렁이들의 변치 않는 애정과 사랑을 마음깊이 새겨 국민들의 눈과 민심을 하늘같이 알고 새겨주기를 간절히 소망코자 한다.
/오석주(전라북도 문화유산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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