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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국회의원 이광철 - 새로운 전환1

어느 시대인데 또다시 간첩이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화롯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돌아가며 대마초를 나눠 피고 있다. 회갑을 갓 넘긴 독일인 여자와 마을 촌장으로 보이는 인도 남자 앞에서 마을 사람들은 하루의 피로를 고백하듯 풀어헤친다. 촌장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말에 담긴 고단한 일상과 피로를 읽고 치유한다.

 

촌장이 이들의 피로를 치유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는 것은 대마다. 그들에게 대마는 환각용 마약이 아니라, 마을공동체를 유지하는 수단이었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피로회복제였다.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들르게 된 마을이었다. 요가의 요람인 인도에서 요가의 훈련지이자 쉼터인 ‘아쉬람’을 찾다가 인도의 평범한 시골마을인 이 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건강을 위해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생계수단까지 되어준 요가였다. 요가자격증을 따서 ‘온살이 요가원’에서 새벽반 강사로 활동하면서, 아주 적은 돈이지만, 처음으로 생활비 일부를 부담하게 됐을 때 얼마나 가슴이 벅찼던가. 하루에 두 번씩 요가 강의를 해서 생계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시민운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좋았었다. 그렇게 시작한 요가가 어느새 너무 좋아서, 그래서 찾게 된 것이 인도라는 나라였다.

 

독재와 분단에 시름하던 조국을 민주화와 통일의 품으로 돌려보내려 사십 평생을 바쳤던 한 사내에게 ‘간첩’이라는 불명예를 덧씌운 조국에 대한 서운함을 씻고, 귀국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찾은 인도였다.

 

1998년 4월, 그렇게 나는 섭씨 40도가 넘는 열사의 땅 인도에 있었다.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 국가인 인도에서의 6주는 내게 ‘다양성’과 ‘나눔’이라는 말로 다가왔다.

 

대마초가 마약이 아니듯이 이 나라에선 모든 것이 ‘다름’으로 존재한다. 이 사람들에겐 ‘틀리다’는 말은 없고, ‘다르다’는 말만 있다. 너와 나의 다름, 힌두교와 기독교의 다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다름 - 그것은 한낱 ‘차이’에 불과했다. 이들에게 ‘다름’은 서로의 가치관과 철학을 인정하는 것이었고, 그런 ‘차이’는 단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 나라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함께 공존하며, 닭과 소와 인간이 함께 어울려 지낸다. 다름과 차이에 대한 인정, 하찮은 빵 한 조각이라도 무엇이든 ¼은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고 함께 나눠야 할 몫이라는 ‘나눔’과 ‘베품’의 문화 속에서 우리의 획일적인 문화와 단일민족의 배타성이 문득 잔인하게 다가온다. 순간 지난 4년간 내게 일어났던 야만적인 일들이 오버랩되면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고인 이광철 무죄!!”

 

1997년 2월20일, 32개월간의 ‘국가폭력’과의 투쟁에서 나는 작은 승리를 거뒀다. 안기부 연행 후 10개월만의 무죄판결로 나에게 덧씌워진 간첩죄가 ‘누명’이었음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후 요가자격증으로 새벽반 강사를 뛰며 처음 내손으로 생활비를 벌고, 1년 가까이 신바람 나게 시민운동을 하며 자유를 실컷 만끽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1994년 6월, 전주시민회 단합대회를 준비하던 나는 미행하는 눈길과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는 것을 느끼고는 잠시 문규현 신부가 있는 김제의 한 성당으로 몸을 피했다.

 

그렇게 며칠을 숨어 지내던 어느 날 MBC 저녁7시 뉴스를 보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학원계, 노동계, 농민계 침투간첩 이광철 수사기관 추적 중 잠적!!”

 

나는 영문도 모른 채 간첩으로 둔갑돼 다시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87년에 함께 독재타도를 외치던 사람이 대통령을 하는 시대 아닌가. 함께 투쟁전술을 짜던 동지들이 여당 국회의원인데, 간첩이라니... 나는 스스로의 순진함과 오판에 치를 떨었고,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딸에게 해 줄 말을 찾지 못해 안절부절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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