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순(전주지방검찰청 수사관)
또 다시 선거철이 다가왔다.
이번 선거와 관련하여 나는 과거와는 또 다른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다
지난 휴일에 모악산 등산로 입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매번 선거때와 비슷한 모습으로 수많은 지방선거 입후보자의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줄줄이 늘어서서 홍보물을 나누어 주는 중이었다
나는 그 운동원들의 애처로운 모습에 그들이 나누어준 홍보물 ‘국제00협회 00지구 총재, 00 위원회 위원장, 00회 고문, 00학교 운영위원장, 00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위과정 수료, 00대학 객원교수,’ 등 그들이 나누어준 홍보물만 보아서는 과연 우리 지역에 이런 인재가 존재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의 그 화려한 홍보물(홍보물만 보아서는 퇴계선생이나 율곡선생, 이순신장군의 이력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임)을 읽어본 후 등산복 호주머니에 그 화려한 명함을 구깃거리며 넣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를 받아들이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에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 그것도 섬뜩한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선거까지만 해도 선거운동원들로부터 홍보물을 건네받는 시민들의 표정은 지하철 입구에서 광고물을 받아든 시민들의 표정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무표정’ 그 자체였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국외자일 수 밖에 없는 무표정한 시민들의 모습을 당연스레 떠올렸으나, 이번 선거에서의 그 국외자들의 표정은 과거와는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운동원들이 건네주는 홍보물을 무표정하게 건네받는 경우보다는 그 운동원(정확하게는 그 입후보자)에게 적대감에 가까운 표정과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왜 우리 시민들의 반응이 이럴까
수왕사에 오를때까지 나의 뇌리를 내내 스친 생각이었고, 골똘히 생각하며 산을 오르는 나에게 또 다른 유권자인 나의 처가 물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상하죠”
그렇다, 분명히 이상했다,
해마다 선거철이 되면 각종 선거를 주관하는 부서나 각 언론매체에서선거를 앞두고 여러 가지 다향한 대국민 홍보물의 경우 그 종류의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참된 사람, 지역과 국가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투표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의 국민들에게 ‘참된 사람, 지역과 국가를 위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투표할 권리’를 주어본 적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의심스러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국가에서는 우리 국민들에게 ‘투표할 권리’를 줘야 한다
즉, 국가에서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항에 대한 후보자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공개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당해 선거에 대한 국외자가 되지 않고 적극적인 ‘투표할 권리’를 가진 진정한 의미의 ‘시티즌’을 양성해야 한다
입후보자들에 대한 학력, 경력, 병역사항은 물론이고, 과거의 모든 범죄경력, 모든 과세기간에 해당하는 기간중의 세금의 체납여부, 기타 행정질서벌 위반에 따른 과태료 납부 여부 등 해당 후보의 인격, 자질에 관한 모든 사항을 국민들이 알수 있도록 철저히 공개를 해야 한다.
이것이 국가의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행 선거법하에서도 병역, 5년이내의 세금체납, 5년이내의 금고이상의 범죄경력 등과 관련된 사항은 선고공보사항에 명기될 사항이고 이를 입증할 서류의 제출은 의무화 되어있으나, 후보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선거공보물을 만들지 않을수도 있으며, 대다수 직업적인 출마자들의 경우에는 5년은 이미 공직에 진출하였거나 공직선거에 입후보한 이후의 기간이 태반이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자신의 과거 이력에 대한 공개를 두려워 하는 자는 선거에 입후보할 필요가 없으며, 우리 또한 이런자들을 절대로 뽑아서는 안된다
당연히 유권자가 알아야 할 사항을 알리지 않고 국민들에게 ‘참된 일꾼’만을 뽑아달라는 것은 유권자들로 하여금 마치 제비뽑기 하듯이 선거에 임하라는 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투표할 권리를 잃은 사람들은 아무런 정보에 접근할 수단도 없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한표 달라’는 선거운동원들에게 냉소를 넘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며 이러한 적대감이 ‘정치꾼’들을 양산하는 선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나의 ‘두려움’이다
현행 선거는 결국 후보자 가족이거나 혹은 후보자와 어떠한 필연적 관계가 있어 투표할 수 밖에 없는 사람 즉 ‘투표할 의무’만 가질 뿐인 사람들의 투표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고, 해당 입후보자들은 ‘투표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거운동을 주력하면 되지 ‘투표할 권리’를 가진 대다수의 주민들에게는 선거운동을 할 필요성도 없고 ‘투표할 권리’를 가진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영원한 국외자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투표할 권리’가 없는 나는 이번 지방선거 투표일에 또 다시 모악산이나 다녀와야 할 것 같다
/이성순(전주지방검찰청 수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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