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 뚫린 콧구멍에 쭉 찢어진 주둥이, 축 처진 눈두덩에 나팔만한 귀, 몽땅한 다리에 집채같이 큰 배... 아무리 뜯어봐도 돼지는 어느 것 하나 예쁘게 생긴 곳이 없다. 그 뿐인가. 숨이 막힐 듯한 지독한 냄새에 세상 듣기 싫은 고음불가(죽을때만 고음) 목소리까지 사람이 좋아 할만한 구석은 단 한군데도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돼지를 곁에 두고 보살핀다. 오직 고기를 먹기 위해서다.
사실 따지고 보면 돼지처럼 사람에게 유용한 동물도 그리 흔치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돼지는 버리는 것이 거의 없다. 등심 안심 목심에 삼겹살 항정살 갈매기살까지 살이라는 살은 못먹는 부위가 없다. 또 내장은 술안주감이나 국밥 재료로 그만이다. 족발 역시 푹 고아내면 임산부들에게 좋은 영양식이 된다.
머리고기 쓰임새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젯상에 돼지머리가 빠지면 쓸개 없는 곰을 잡은 것처럼 뒷 맛이 영 허전하고, 순대집 술상에도 어김없이 머리고기가 따라 올라온다. 사람살기가 느끼해진 요즘이사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과거 우리들은 돼지기름으로 긴긴 겨울밤을 밝히고, 돼지 오줌보는 바람을 넣어 '동네컵' 축구공으로 쓰기도 했다.
돼지고기 예찬을 시작했으니 몇 마디만 더 늘어놓자. 돼지고기는 부위별로 각각 맛이 다르다는 장점과 함께 값이 싼 동물성 에너지원이라는데 매력이 있다. 돼지고기에는 갖가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 기력이 허한 사람 영양 보충에 제격이고, 비계살은 진폐증과 납중독 예방에 유용하게 쓰이기도 한다. 또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 삼겹살에 소주 한잔 꺾는 맛이란... 생각만 해도 온 몸이 짜르르해진다.
'서민의 고기'로 사랑받아 온 돼지고기가 이제 아무나 쉽게 못먹는 '귀족 고기'가 되려는가 보다. IMF 전까지만 하더라도 돼지고기와 쇠고기 값 차이가 족히 다섯배는 되더니 어느새 돼지고기와 쇠고기 값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선진국이야 환경규제가 엄격해서 그렇다고 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헐렁한 편인데 웬 돼지고기 값이 그렇게 오르는지 모르겠다.
돼지고기 값이 치솟는다고 부자들이 겁낼 리는 없다. 돼지고기에 인생의 애환을 묻고 살아온 서민들이 걱정이다. 옛날처럼 키워서 잡아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정말 딱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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