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국토의 공간싸움 연상
돼지라고 하면 우리는 조건반사적으로 그 뭉툭한 돼지 코와 더럽고 지저분한 돼지우리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또 돼지꿈은 길몽으로 여긴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옛날부터 우리는 돼지에 대해서 이렇게 이중적인 선입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오해였다. 한 공간에서 먹고 자고 싸는 동물의 대명사로 알고 있던 돼지에 대한 일종의 오해였던 것이다.
돼지를 키워보면 돼지도 제 나름대로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화해서 사용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밥 먹는 공간이 따로 있고, 잠자는 공간이 따로 있으며, 식사를 하는 공간도 잘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인간처럼 벽을 만들고 창과 문을 달아놓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돼지우리’라는 제한된 공간일망정 그것을 나눠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랄만한 일이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다. 돼지도 제 활동공간이 비좁거나 동선이 차단되면 우리 인간처럼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괜스레 ‘꽥꽥’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지르는가 하면,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돌변해서 난폭하게 행동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과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도 원시시대에는 그렇게 ‘원형 움막집’이라고 하는 하나의 공간에서 가족전체가 먹고 자고 쉬는 일체의 문제를 해결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돼지만 흉볼 일도 아니다. 70년대 까지만 해도 웬만한 가정에서는 그저 방 하나에 오남매 육남매가 뒤엉켜 살았었다.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서로 살을 부딪치며 엎치락뒤치락 살면서도 언젠가 때가 되면, 수세식 화장실이 딸린 빨간 벽돌집에서 그럴듯하게 내 방 하나 꾸미고 살겠다는 그런 꿈을 꾸고 살았다. 다르다면 그게 달랐다.
건축에서 공간은 그런 것이다. 저절로 나둬도 산천동식물은 제 스스로 공간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좁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또 이유 없이 제 공간을 침범당하면 사나워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정말 어떤 때는 아주 좁디좁은 공간 하나에서 찬란한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내기도 한다.
지금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월드컵축구도 사실은 공간싸움이다. 미드필드에서부터 상대공격수의 공간을 미리 강하게 차단하는 압박축구는 전형적인 공간차지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좁은 국토에서 태생적으로 서로 밀치고 제치며 살아온 우리 한국축구가 상대적으로 더 빠르고 더 강한 압박축구를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건축이란 창으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삼호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