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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칼럼] '성 요셉 동산'의 수녀님 - 공요셉

공요셉(전주 가톨릭신학원 교수)

풍남여객 807번 시내버스는 통계청을 떠나 전주 시내를 두루 거쳐 이곳 완주군 소양면 해월리의 다리목 종점에 이릅니다. 아니, 이른 아침 첫 출발지가 이곳이니 어쩌면 거꾸로 말한 셈이군요. 다리목 종점에서 도회지에서 묻어온 먼지와 시름을 씻어내고 가는 이 버스는 승객은 그리 많지 않지만 하루 일곱 차례 고즈넉한 이곳을 세상과 연결해 주는 고리인 셈입니다. 지난겨울 눈이 많이 오는 날엔 저도 이 버스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다리목 버스 종점 옆 실개천 건너편에 제가 기거하고 있는 '성 요셉 동산'이 있습니다. 이곳은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Little Sisters of the Poor)'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양로원 겸 수도원입니다. 이 수도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노인들을 섬기며 그분들의 인생의 마지막을 동반하시는 일을 하시는데, 그런 의미에서 '경로 수녀회'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수도회는 프랑스에서 쟌 쥬강(1792-1879)이라는 분에 의해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겨자씨 하나가 자라 커다란 나무가 된다는 성경 말씀처럼 그 시작은 아주 작고 미소했습니다. 프랑스 북서쪽 브르타뉴 지방의 생세르방에 살던 쟌 쥬강은 1839년 어느 겨울날 길에 버려진 눈멀고 반신불수인 걸인 할머니 한분을 자신의 집으로 모시고 가 보살펴드렸는데, 점차 그 수가 늘어난 노인들을 위해 매일 바구니를 들고 먹을 것을 얻어오게 되었습니다. 이를 본 뜻있는 여인들이 동참함으로써 수도회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수도회는 1973년 한국에도 들어와 현재 이곳 해월리를 비롯하여 서울과 수원 그리고 전남 담양에 어르신들을 섬기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수녀님들은 창설자인 쟌 쥬강의 정신에 따라 정부기관의 직접적인 도움 없이, 후원자들의 도움을 통해 공동체를 이끌어 가시는데, 시장에서 먹을거리를 얻어오거나 성당과 기업, 자선기관 등에 모금을 가시거나 도움을 구하기 위해 방문하시는 것도 수녀님들의 주요한 활동입니다.

 

1998년 개원한 '성 요셉 동산'에는 현재 인도 수녀님 한분을 포함한 아홉 분의 수녀님, 십 여분의 직원들과 고정적, 비고정적 자원봉사자들의 돌봄 속에 여든 분 정도의 어르신들이 생활하고 계십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병상에 계시는 어르신들을 돌보고, 아침 미사에 참석하도록 도와드리고, 매 식사시간 마다 몸을 맘대로 가누지 못하는 어르신들 입에 음식을 넣어드리는 일은 어쩌다 한번 하는 봉사활동이 아닌 수녀님들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입니다. 저도 신학생 시절 여름방학 중에 한 달 정도 이곳서 봉사활동을 했었습니다. 새벽에 당뇨가 있으신 할아버님 혈당검사를 하고 인슐린을 주사해 드리는 일을 돕고 몸을 닦아드리는 일, 어르신들을 성당으로, 식당으로 모셔다드리고, 오전 중엔 할아버님들 목욕을 돕고, 어르신들 말벗해드리기, 휠체어 밀고 산책하기, 물리치료 돕기 및 설거지와 청소 등의 일상 속에 한 주일에 1Kg 씩 살이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간혹 틈을 내어 어르신 섬기는 일들을 도우려 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수녀님들은 늘 웃으시면서 기꺼이 어르신들을 섬기시고, 그 일에 보람을 느끼며 행복해 하십니다. 때때로 운영상의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어도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다 마련해 주신다며 매사를 희망적으로 바라보시기 때문에 어르신들께 염려를 끼쳐드리는 일이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수녀님들께서 기쁘게 살아가시는 힘은 하루의 시작과 그 끝을, 그리고 삶의 매순간을 기도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며 살아가시는 수녀님들과 그 분들의 돌보심 속에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 요셉동산 공동체는 다리목 종점만큼이나 세상 모습과는 동떨어져 보입니다.

 

/공요셉(전주 가톨릭신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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