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런 호아스 감독 한국 방문
'평양일기'(1997), '서울일기'(2001)를 만든 노르웨이 출신 호주 감독 솔런 호아스가 제1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그의 이름은 한국 관객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호아스 감독에게 한국은 익숙한 곳이다.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그는 "2001년 떠난 뒤로는 한국엔 처음 왔다"며 "이번 방문에는 아직 여기저기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느낀 점은 빌딩이 높아졌다는 것과 예전엔 길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길을 잘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일기'는 1994년과 1996년 북한을 찾은 호아스 감독이 외국인의 눈으로 북한에 대한 단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는 1994년 김일성 사망 3개월 뒤에 열린 평양영화축전에 영화 '아야'를 들고 참가했으며 1996년 다시 북한을 찾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평양과 백두산 등 관광지를 둘러보며 북한 사람들의 폐쇄적인 모습과 체제 선전 활동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를 밝힌다. 식량 부족으로 인한 주민의 고통을 걱정하기는 하지만 몇 마디 언급에 그칠 뿐 깊이 접근하는 것도 아니다. 그의 내레이션은 평온하고 일상적이어서 감독의 정치적인 관점을 기대하고 보는 관객이라면 오히려 실망할 수도 있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북한에 관한 다큐멘터리라면 어떤 정해진 틀을 미리 떠올리지만 그런 의도는 전혀 갖지 않고 찍었다"며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없었지만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설명했다.
"독일의 한 방송국에서 이 작품을 방송한 적이 있는데 자신들의 시각대로 편집을 해서 부정적인 북한의 모습만 부각됐던 일이 있습니다. 또 호주의 한 방송국도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왜 40년간 북한의 역사는 담지 않았느냐'고 묻기도 했고요. 저는 1주일밖에 북한을 둘러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감시가 심한 상태였고 보이는 것만 볼 수 있었으니 제 시각은 당연히 피상적이죠. 더 깊이 다가갈 생각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그럴 희망도,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내가 직접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작품으로 다룰 수는 없습니다."
2001년 완성작인 '서울일기'는 '평양일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호아스 감독은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햇볕정책으로 남한 사람들이 북한 문화를 부쩍 많이 접하게 됐지만 다른 한편에는 여전히 벽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비전향 장기수들부터 금강산 방문 이후 전시회를 연 예술가, 민족운동가, 서해교전과 관련된 군인, 어부, 거리의 일반 시민까지 남한 곳곳의 사람들을 만났고 북한과 통일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1998년과 2000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 그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처음 서울을 찾을 때만 해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뭔가 조사할 것이 있어 2주 일정으로 방문했죠."
그는 서울에 오기 전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송환'을 만든 김동원 감독을 만났던 일화도 소개했다. 김 감독을 한국에서 만나게 됐고 자연스럽게 통일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는 것.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모순'이란 부분에 가장 관심을 가졌습니다. 개방이 시작됐는데 여전히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남아 있는 상황 말이죠. 이 다큐멘터리를 완성한 뒤 호주에서 뉴스 보도를 통해 접해 본 한국 사회는 그 부분에서는 약간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호주에서는 최근 테러 방지를 위해 국가보안 관련 법이 강화됐죠.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 법률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는 극단적인 것이며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호주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전쟁이 인간 개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극 영화다.
그는 "준비를 시작한 지는 꽤 됐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며 "한국에서도 함께 일할 영화인이 있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영화제에 대한 기대감도 표시했다.
"'평양일기'는 극장 복원판으로는 저도 처음 봅니다. 이미 10년 이상 됐으니 이제는 보관소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영화죠. 이번 영화제는 전 세계의 많은 영화제들이 새로운 영화만 추구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옛 영화에 주목하는 좋은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요새 영화제를 다니다 보면 신작 한 편이 이 영화제, 저 영화제로 보내져서 결국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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