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묵대사(震默大師·1562-1633)는 한국 불교사상 가장 신비로운 스님중 한 분이다. 수많은 기행(奇行)과 이적(異跡)을 보였으며 석가모니 부처의 화신으로 일컬어졌다.
그 중 몇 가지만 보자. 먼저 어혼환생(魚魂還生)의 얘기. 진묵이 탁발하러 다니던중 천변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물고기를 가마솥에 끓이고 있던 사람들이 스님을 골려주기 위해 "한 그릇 드시고 가라"고 권했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법도를 뻔히 알면서. 그러자 스님은 두 손으로 펄펄 끓는 가마솥을 번쩍 들어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상류로 올라가 변을 보니 입으로 들어갔던 물고기들이 펄펄 살아서 헤엄쳐 내려왔다.
또 하나, 해인사 대장각의 불을 끈 얘기. 완주 봉서사(또는 모악산 수왕사)에 있을 때다. 점심 공양할 상추를 씻고 있던 스님이 갑자기 물을 떠서 공중에 뿌리기 시작했다. 다른 스님들은 공양이 늦어진다며 타박했다. 그러자 스님은 "지금 해인사 장경각에 불이 나 끄고 있다"고 답했다. 한달 뒤 해인사에서 한 스님이 들려 "장경각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비바람이 몰려와 불이 꺼졌다"고 알려줬다. 불이 꺼진 후 자세히 보니 상추 부스러기가 떨어져 있었다.
마지막 하나, 능엄삼매(凌嚴三昧) 얘기. 진묵이 변산반도 월명암에 있을 때다. 시자(侍者)가 속가 일로 산중을 내려가면서 스님의 다음 날 공양을 지어 놓았다. 시자가 떠날 때 스님은 바람에 창문이 닫히지 않도록 손가락을 문지방에 얹고 능엄경을 읽고 있었다. 이튿날 돌아 와 보니 공양은 그대로 있고 스님도 그 자세 그대로였다. 다만 스님의 손가락이 바람에 열렸다 닫혔다 하는 창문 때문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스님에게 인사하자 "왜 제사를 안 모시고 벌써 왔느냐"고 하는 것이었다.
이같은 일화는 전북지역 곳곳에 스며있다.
또 좋아하는 곡차를 동이째 마시고 읊었다는 오도송(悟道誦)도 유명하다. "하늘 덮고 산을 베고 땅위에 누었다가/ 구름 병풍에 달빛 등불삼아 바닷술을 마신다./ 맘껏 취하여 비틀비틀 무애 춤을 추려다/ 어허, 소매 길어 곤륜산에 걸리겠네."
김제 만경출신인 스님의 일화는 기축옥사와 임진·병자 양란 속에 시달린 호남 민중의 한과 염원이 담겨 있다. 증산교·원불교와도 연결된다.
지난 주 완주에서 열린 학술대회를 계기로 스님의 행적과 사상이 재조명되었으면 한다.
/ 조상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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