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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칼럼] '사오정' 이 기가 막혀

김승일 (객원 논설위원)

 

사오정이 대기업에 입사 원서를 낸 후 면접시험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오공이 아무리 생각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자기가 먼저 면접을 한 후 답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면접관이 물었다. 첫번째 질문. "당신은 축구선수 중 누구를 좋아합니까?" -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박지성입니다." 두번째 질문. "산업혁명은 언제 어느 나라에서 일어났습니까?" - "18세기 영국입니다." 세번째 질문. "사람들은 지금도 UFO가 있다고들 하는데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 - "다들 그렇다고 하는데 과학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손오공이 사오정에게 단단히 일러줬다. 면접관이 물어보면 이 세가지 답을 외워뒀다가 그대로 대답하라고. 이윽고 사오정이 면접시험장에 나갔다. 면접관이 물었다. 첫번째 질문.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옛날에는 차범근이었는데 지금은 박지성입니다." 면접관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두번째 질문을 했다. "그럼 당신은 언제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 "18세기 영국입니다." 황당한 답변에 이 친구가 돌지 않았나 생각한 면접관이 세번째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혹시 돌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 "다들 그렇다고 하는데 과학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고정식 작가가 쓴 '웃기는 철학'이라는 책에 실린 유머 중 하나다. 사오정이 누군가. 앞 뒤 꽉 막히고 지적 수준도 한참 떨어지는 그에게 논리적 사고(思考)나 판단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비유가 이 유머 속에 담겨있다.

 

짐작하겠지만 이런 모순덩어리 역설이 정부 방침에서 그대로 통했던 일이 LH본사의 진주 일괄이전이라면 지나친 인용일까? 화려한 언변으로 이 쪽에서 이 말, 저 쪽에서 저 말로 변설을 늘어놓던 정종환 국토부장관은 결국 전북 도민들의 가슴에 염장을 질러놓은 후 뒷전에 물러나 있고 후임 장관후보라는 사람도 국회 청문회에서 오리발을 내밀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에게서 '주어 준 것' 말고 제갈량의 묘책이라도 나오길 기대했다면 당한 쪽도 결과적으로는 사오정이나 저팔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닐까하는 자괴감이 든다.

 

사실 폭넓은 마음으로 생각하면 LH본사가 그 쪽으로 가는 것이 그렇게 부당하지만도 않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확정발표를 듣고 나니 울화통이 터지는 것을 참기 힘들긴 했다. 다 그만두고라도 최소한 결정에 앞서 '절차의 합리성'만이라도 지켜줬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어쩌랴. 한 번 엎질러진 물을 이제 와서 어떻게 되담는다는 말인가. 잘못된 결정을 바로 잡겠다며 청와대 앞까지 몰려간 우리 국회의원·도지사·시장·군수들이 전경대원들에 가로막혀 목청 돋우는 꼴이 가련(?)할 따름이다.

 

엊그제 전북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도민들의 판단이 차라리 현명한 듯 싶다. 정부 결정이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77.8%) 전북 정치권이 힘이 없어서(33.5%) 이렇게 된 것을 이제와서 투쟁 일변도로 나간다고 무슨 득이 있겠는가. 차라리 승산없는 투쟁에 헛심쓰지 말고 차분히 실리(實利) 챙기기(46.6%)에 나서야 할 것 아닌가 싶다. 아직도 나부끼는 저 거리의 LH사수 깃발부터 거둬 들이고….

 

/ 김승일 (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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