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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철 체육발전연구원장

"한국 근대체육의 여명기 전북인이 그 중심에 섰다"…전북 체육 가치 지역 발전 원동력

지난달 20일 이인철 전북체육발전연구원장이 전북체육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안봉주(bjahn@jjan.kr)

팔순을 훌쩍 넘긴 이인철 체육발전연구원장(84)의 목소리는 늘 카랑카랑하다. "전북의 체육이 다른 지역보다 월등한 가치가 있다"며 이를 알리기 위해 반평생을 근대 체육 역사에 천착해 왔다. 평안북도 선천군 심천면이 고향인 그는 "내게 고향은 태어난 곳이 아니라 내가 평생 살다가 죽을 땅, 내 새끼가 살 땅"이라며 "그래야 애착이 생겨 산도 가꾸고 꽃도 심는다"며 그만의 '애향론'을 폈다. 그는 "스포츠는 거짓말이 없고,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는 오는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한국 근대 체육사를 소개하는 사진전을 연다. "수십 년간 (전북 체육사를 바로 세우고, 알리는 데) 어느 기관, 정치인이 밀어주지 않았는데도 당당히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한복판에 전주 사람과 전주 물건이 등장"한 것이다. 이 '백발 청년'을 지난달 20일 전주종합경기장 안 사단법인 체육발전연구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 한국체대에서 쓰일 체육 교재를 펴낸다고 들었다.

 

▲ 한국 체육사를 연구하고, 관련 문헌을 모은 게 40년이 넘었다. 중앙의 체육인들도 내가 이런 일을 하는 줄 다 안다. 체육 꿈나무 육성 사업을 하는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스포츠 역사를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그동안) 완성된 책을 발간하지 못했다. 정동구 이사장이 예전에 내 방을 방문한 적이 있다. 스포츠 관련 책과 사진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 뒤 수없이 재료를 가져 가고, 보내주기도 했다. 지난해 8월부터 이 일(책 발간)을 꾸준히 논의해 왔다.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인 정 이사장은 레슬링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안다. 나는 체육 박사라든가 학문적인 라이선스(license, 면허)가 없다. 그래서 한국체육대학 교수들과 공저로 했다. 체육인재육성재단 체육 교재 저자로 (내가) 등장한다. 6월 말이면 정식 교과서가 나온다.

 

- 오는 8월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사진전을 연다는데….

 

▲ 한국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한다는 의미는 한국 육상이 그만큼 화려한 위상을 가지게 됐다는 의미다.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1950년 4월 19일에 열린 제54회 보스턴마라톤대회다. 보스턴마라톤은 매년 열리는 대회인데, 앞서 1947년에 서윤복 씨가 1등을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씨가 1등, 남승룡씨가 3등을 한 뒤 한때 끊길 뻔한 맥을 서윤복 씨가 이은 것이다. 사실 일제 시대엔 다른 운동은 할 수 없었다. 기구도, 여력도 없었다. 오래 뛰고, 오래 견디는 게 마라톤뿐이었다. 1950년에 손기정씨가 단장을 맡아 세 선수를 데리고 다시 보스턴에 간다. 무달러 시대, 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절, 한국 주둔 미군 사령관한테 군용기를 빌려서 일본에 가서, 보스턴으로 떠난다. 저 사진이다. (이 원장은 사무실에 놓인 '제54회 보스톤 마라톤대회 한국대표단의 미국 방문'이라고 적힌 사진을 가리켰다.)

 

한국에서 세 명의 선수가 오자 미국 언론들도 관심을 가졌다. 기록도 상위권에 속하니 한국이라는 나라를 궁금해했고, 가난한 한국 선수들이 어떻게 체력과 영양을 유지하면서 기능을 익히느냐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러다가 시합이 시작됐는데, 함기용이 1위, 군산상고 출신인 송길윤이 2위, 최윤칠이 3위를 했다. 전 육상계가 발칵 뒤집혔다. 함기용은 겨우 19살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김치와 고추장이란 걸 먹는다, 도대체 그게 무슨 음식이냐, 이거 한 번 검토해 보자, 기사까지 났다. 그 무렵 해방되고, 미국 구호 물자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시대였다. 전 미국 교포들, 일본 교포들이 환영했다. (선수들은) 미국에서 열흘간 환영대회에 참석하고, 그해 5월 3일 동경을 거쳐 김포공항에 도착한다. 국민 대환영 대회를 하고, 전국민 모금운동까지 한다. 한 달도 못 돼 6·25가 나니까 여기에 관여된 모든 것들이 파산되다시피했다. 그 분위기가 전부 지하로 들어가고, 1등, 2등, 3등을 했던 문헌도, 사진도 없어졌다. 이 국제적 영광을 이번 대구육상선수권대회에서 당시 신문 기사와 사진 등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알릴 필요가 있다. 조해영 대구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장을 찾아가 내가 직접 브리핑했다. 올 2월부터 다섯 번 갔다. 5월 13일에 전시회 개최가 최종 확정됐다.

 

- 전북의 체육이 우리나라 체육사에서 얼마나 비중을 차지하나.

 

▲ 전북 체육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가치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실은 한성(서울의 전 이름) 체육과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한국 스포츠 역사의 여명기를 같이 시작했다. 그 증거가 이런 거다. 1907년 서울 삼선교에서 '화류회'라는 운동회를 한다. 순종도 앉아서 관람한다. 거기에 운동가라는 게 나온다. 약 5년 뒤인 1912년에 오지 중의 오지 진안군 주천면 화동국민학교에 김부식, 육상필, 허강 세 분이 간다. 개화 사상을 익힌 분들이라 거기서 운동을 했던 가보다. 이 학교에서 운동의 노래를 만든다. 줄거리에 화동국민학교 이름만 넣었지 서울서 만든 운동의 노래와 90% 이상이 똑같다. 전국적으로 제일 빠르다.

 

그것으로만 끝난 게 아니다. 1920년에 전주신흥학교에 일본체조학교 출신인 김영구 선생이 온다. YMCA 농구 제1기로 선교사 질레트한테 농구를 배웠다. 체육전문학교 출신이라 농구, 축구, 정구를 다 했다. 이 분이 전주에 체육의 씨를 뿌렸다. 이어서 1925년에 민족학교 고창고보에 이병학이란 체조전문학교 출신 선생이 온다. 이병학은 우리나라에서 역도를 창설한 분이다. 두 학교가 어떻게 연결되느냐. 신흥학교가 1936년에 신사참배를 안해서 폐교가 된다. 신흥학교 학생들이 고창고보에 가서 고창이 스포츠 지역이 된다.

 

삼양사 창업주 수당(秀堂) 김연수 씨가 일본서 조직한 조선 유학생 모임인 반도중학회가 야구단을 이끌고 1917년 모국을 방문한다. 당시 모국 방문은 하계·동계 방학 때 고국에 문물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강연반, 체육교류반 등을 만들어 전국을 순회하며 계몽운동을 했다. 고창 줄포 출신인 김연수 씨는 전북에서 최초로 현대식 야구를 한 사람이다. 또 진안에서 태어난 김영조 씨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야구 포수를 하던 사람이다. 그가 전주고 야구부를 만든다.

 

나는 전북 체육의 자랑스러운 이미지를 가지고 전국을 누빈다. 이게 애향이 아니고 뭔가.

 

- 체육계 후배들에게 쓴소리한다면.

 

▲ 첫째 체육의 본질에서 한 발짝도 빼지 말라. 절대로 정치화하지 말고, 예속화하지 말란 얘기다. 내가 흘리는 땀을 남이 대신 흘려 주지 않는다. 내 땀을 고귀하게 하려면 아부하지 말아야 한다. 두 번째로 스포츠를 너무 경제적인 잣대로만 기구화하면 안 된다. 돈을 많이 아는 기구가 되면 스포츠가 발전이 안 된다. 셋째 반드시 멘토를 두어야 한다. 멘토는 개인적으로는 지도자라는 형식이고, 기구에선 선배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전주에 태권도가 전일섭씨에 의해 창설이 되고, 안광렬씨가 레슬링을 시작했다. 안광렬과 전일섭이란 지도자가 있었기에 유인탁이란 금메달리스트가 나왔고, 무주가 태권도 성지가 됐다. 이게 멘토의 역할이다. 전북 스포츠는 역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확고한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좀더 고귀하게 각색해서 펴내야 한다.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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