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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하면 성공하라구

송경태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 관장

 

내가 어릴 적에 또래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유행어 중에는 ‘아더매� � 라는 말이 있었다. 이것은 일종의 은어인데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다’의 줄임말이다.

 

‘치사하다’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부끄러운 일이다’ 라는 뜻으로 나와 있는데, 솔직히 그런 뜻이 있는 줄 몰랐다.

 

보통 내가 ‘치사하다’라는 단어를 쓸 때는 무언가를 충분히 베풀어 줄 수 있는 상황인데도 지나치게 거드름을 피우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5년 전, 나는 두 아들과 친구와 함께 유럽 여행을 했다. 친구 낙관이가 독일유학시절 누나처럼 따랐던 어느 독일 가정에 짐을 풀고 우리는 이제껏 말로만 듣던 파리에 갔다.

 

우리는 렌트한 차를 몰고 독일이 자랑하는 아우토반을 신나게 질주하여 8시간 만에 파리 근교의 휴게실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큰 아들 민이가 화장실을 찾았다.

 

한참을 헤매다가 넓은 휴게실을 가로질러 가서야 겨우 화장실 표시를 찾았는데 반가운 것도 잠시, 입구에 조그만 전화 부스 같은 것이 있고 그 안에 사람이 앉아 있다고 했다.

 

이상도 하지, 저 사람은 왜 하필이면 화장실 앞에서 무슨 표를 팔고 있을까, 의아해하면서 나는 급한 대로 화장실 손잡이를 잡아 흔들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놀라 뛰어나오더니 눈까지 부라리며 뭐라고 핀잔조로 말했다.

 

한참만에야 나는 그 사람이 화장실 관리인이고, 우리 돈으로 약 500원을 내고 토큰 비슷한 것을 사서 넣어야 화장실 문이 열리게끔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른 상황도 아니고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인데, 화장실 앞을 지키고 앉아서 돈을 받다니 그렇게 치사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도시를 다니다 보니 화장실 못지않게 치사한 것은 식수였다. 카페에서 식사를 해도 물 한 컵 공짜로 주는 일이 없고, 작은 물병 하나에 우리 돈으로 4,500원씩이나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치사함의 정수라고 느껴졌던 것은 그들의 언어에 대한 자만심이었다. 길에서 영어로 말하면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택시를 타도 영어를 할 줄 아는 기사가 별로 없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작품에 영어 제목 하나 붙어 있지 않았다. 관광 수입은 수입대로 챙기면서 자기네 나라 오려면 자기 나라 말을 배워 오라는 심산인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치사하다’는 말에는 사실 그 대상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격지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유럽의 명소들을 돌아다니며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웅대함과 화려함과 정교함, 그리고 아름다움은 나의 짧은 어휘로는 묘사가 불가능했다.

 

“너, 치사하면 성공하라는 말 알지? 나중에 훌륭한 사람 돼서 온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게 하고,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우리말 배우게 하고, 그렇게 해.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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