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호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여자도 그 집안도 크게 나쁘지 않아 보였다. 자신의 나이도 웬만큼 들어서 남자는 결혼을 미룰 수도 없었다. 그 남자는 여자의 집안 어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설득했다. 여자와 결혼만 시켜주면 '머슴'처럼 일해서 처가를 반드시 번창시키겠노라고 맹세까지 했다. 남자는 여자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2년도 지나지 않아서 남자 앞에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 새 여자는 지금 살고 있는 여자에 비하면 우선 외모부터 가히 전국구 수준이었다. 집안 배경도 지금 살고 있는 여자는 명함도 못 내밀 만큼 비까번쩍했다.
어느날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제법 말쑥해졌음을 확인한 남자는 그동안 함께 살았던 여자를 호적에서 파냈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새 여자가 결혼을 해준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대시라도 해보려면 그게 필수조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 그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맘때쯤이면 김태희처럼 전국적으로 다 알아주는 새 여자가 눈앞에 나타나리라는 것을 남자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뒤통수를 얻어맞은 조강지처의 집안 어른들만 스타일을 왕창 구긴 셈이었다.
총선을 앞두고 사퇴한 우리 지역의 몇몇 선출직 지방의원 '님'들이 딱해서 해본 소리다. 사실 어떤 자리에서 사퇴를 결행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부와 명예가 담보된 자리면 더 그렇다. 대다수 국민들의 분노가 빗발쳐도 끝끝내 버티는 무슨무슨 '장'들의 철면피를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종종 보아 왔지 않은가.
때를 알고 떠나는 자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했다. 대의를 위해서 사퇴의 용단을 내린 이들이라면야 아름다울 게 어디 뒷모습뿐이랴. 하지만 생각은 딴 데 있으면서 '대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사퇴는 순수성부터 의심받게 마련이다. 당선소감을 적었던 잉크야 말랐겠지만 '머슴'과 '일꾼'을 자청하던 목소리는 어제 일인 듯 귓가에 쟁쟁하다.
정치라는 게 결국 국민들 살길을 찾아주는 일일 테니, 그 세계에 발 디딘 사람으로서 지역사회와 국가를 위해 멸사봉공하겠다는데 누가 뭐라겠는가. 그래도 이건 경우가 좀 다르다. 헛심팽기는 계산부터 해보자. 이제 사퇴했으니 보궐선거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 들리는 말로는 그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하던데….
한마디만 더 하자. 조강지처까지 호적에서 파버린 마당이니 이제라도 좀 솔직해지자. 사실은 그때 결혼만 시켜주면 큰일꾼이 되어 집안을 번창시키겠다고 약속한 건 다 뻥이었다고, 훗날 인물 좋고 '빽'도 좋은 저 폼나는 전국구하고 결혼하려면 처가 덕에 때도 빼고 광도 좀 내둘 필요가 있었던 거라고 말이다.
그나저나 그 남자의 행보가 사뭇 궁금하다. 전처 집안의 어른들은 물론이고, 딴 여자한테 홀려서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사실을 소상히 알고 있는 온동네 어르신들한테까지 동의를 얻어내야 그 전국구 백그라운드하고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 할 텐데, 거기에 걱정이 앞서는 걸 보면 나는 애시당초 정치하기는 글러먹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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