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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광배 부회장은…대한민국 썰매종목 개척자

강광배 FBIT 부회장은 1973년생, 전주 토박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2대 독자인 그를 '끔찍이' 아는 어머니와 누나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잘' 성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좋아해서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운동시키려하느냐'고 어머니께 고언하면서 꿈은 꺾였다.

 

그래도 운동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 태권도 도장에는 열심히 다녔다. 고등학교(전주 한일고)때 결국 체육인의 길을 택해 유도부에 들어갔다.

 

전주대 체육학과 1학년 때 무주리조트에서 썰매종목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때 난생 처음 스키를 만났다.

 

그러나 왠지 스키는 '돈 있는 사람들이 타는 레저'로만 생각되어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지금 생각하면 자격지심 탓이었다. 스키 타러온 고등학교 친구를 만난 후 생각이 바뀌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도 스키를 잘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대로 그는 곧 스키에 미쳐버렸다. 각종 스키대회를 휩쓸었고, 최연소로 스키강사 자격증을 땄다. 그가 가르쳤던 '코흘리개' 무주 산골 아이들은 지금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가 되었다. 그 역시 스키 국가대표 코치가 되고 싶었지만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얻었다. 큰 시련이었지만 좌절은 곧 희망이 되었다. 대한루지연맹의 루지국가대표선수 선발에 도전한 것이다. '누워 타는 썰매' 루지는 무릎을 쓸 수 없는 그에게 딱 좋은 종목이었다. 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루지 국가대표 선수로 첫 출전했다.

 

같은 해, 200달러를 쥐고 무작정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즈음 대한루지연맹이 '세대교체' 한다며 국가대표에서 밀어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 살이었다. 설상가상 부상까지 당했던 그는 생애 최악의 시련을 맞았지만 다시 일어섰다. 루지 대신 스켈레톤으로 종목을 바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오스트리아 대학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오스트리아 국가대표 선수로 뛰었던 그는 어느 날 대회 순번을 기다리면서 전광판에 켜진 'AUT(오스트리아) 광배 강' 사인을 보았다. 문득 '내가 손기정도 아니고 지금 뭘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는 개인자격으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이 국제연맹에 가입한 후에서야 그는 비로소 국가대표 자격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에 스켈레톤 국가대표로 참가했고,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 봅슬레이로 출전했던 그는 세계에서 최초로 올림픽 썰매 전 종목에 출전한 선수가 됐다.

 

국내 썰매종목 스포츠를 개척한 그의 삶은 외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도전의 길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썰매종목의 역사가 됐다. 그 또한 "썰매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썰매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는 2005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국제대회에 취재온 연합통신 현윤경 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유학생활을 했던 인스부르크는 그 덕분에 그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도시가 됐다. 이번 학기부터 한국체육대 초빙교수로 임용되어 활동 영역이 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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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kime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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