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규 희망과대안 전북포럼공동대표
고공에서 49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던 남상훈 전북고속 노조 지부장이 끝내 탈진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세우 목사, 윤찬영 교수와 나흘 전 망루를 찾았을 때에도 싸움의 결기를 놓지 않았던 그다. 시외버스 터미널 버스 진입로에 외롭게 서 있는 망루는 네 명의 남자가 쭈그려 앉자 좁은 공간이 꽉 차, 꼭 0.72평 교도소 독방 같았다. 스스로 몸을 유폐하여 고공에 세운 그의 작은 거처로 그릉그릉 쉴 새 없이 드나드는 버스들의 엔진 소음이 밀려 들어왔다. 이태째 거리에서 기약 없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이들의 불안한 처지를 상징하듯 쇠파이프와 스티로폼으로 얼기설기 얽혀진 망루는 앉고 일어설 때마다 흔들거렸다.
버스파업은 이제 개별 사업장의 일시적 노사 분규를 넘어서 전북 전주 지역사회의 현실과 수준을 상징하는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도 모두가 '타자'의 처지이다. 파업이 오래 지속되면서 노사 자체 해결은 정말 무망해 보인다. 시민들의 세금으로 거액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는 사업장인데도 행정과 정치권의 공적인 개입과 해결능력은 너무 취약하다. 시일만 더해질 뿐 '가진 게 없는 것이 가장 큰 죄'인 운수노동자들의 막막한 분노가 제 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그 허망한 끝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참으로 마음 아프다.
이런 때야말로 지역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사회적 합의 시스템이 작동되어야 한다. 원로의 권위에 의한 설득과 합의 조정도 어렵고 시민단체를 포함한 여러 기관의 중재도 여의치 않다면 이제 버스의 직접적인 소비자이자 지역사회의 실질적 주인인 시민들에게 직접 묻자는 것이다. 버스 문제를 해결할 절차로 사회적 중재, 합의의 대표적 제도라 할 수 있는 배심원제를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알려진 대로 배심원제란 사법부 재판과정에서 활용되는 제도로, 전문가가 아닌 일반시민의 상식의 힘을 활용해 분쟁을 해결하는 시민 참여형 갈등해결 방법이다. 충북도, 수원시, 울산북구, 유성구, 남해군 등에서 운영된 사례가 있다. 울산 북구에서 음식물 자원화 시설 입지를 둘러싼 주민갈등에 시민단체와 종교계 인사 43명으로 배심원단을 구성하여 2주간의 심의논의로 결정을 내린 사례가 국내 최초의 시민 참여형 정책결정 제도 시행으로 꼽힌다.
버스파업 해결에 적용하면 이런 과정이 될 것이다. 성별, 연령별 대표성을 고려하여 전문 여론조사 기관에서 선정한 시민배심원 100명 정도가 특정 장소에 모여 정해진 기일동안(시민의 참여를 고려할 때 주말을 낀 이틀 정도) 집중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노사대표, 지방자치단체, 전문가 등의 설명을 듣고 시민의 눈높이에서 시내버스 사태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면 (중재의 힘을 싣기 위해 의회에서 심의 의결하는 절차를 더할 수도 있다) 노사 모두가 이를 수용하여 시내버스 갈등을 해소하자는 것이다. 물론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이용자인 시민이 있기 때문에 사업장이 유지되고 일자리가 존립 가능한 노사 양측이 통큰 결단을 내려 시민의 다수 뜻을 묻고 그에 따르는 방법 말고 더 높은 구속력이 지금 또 어떻게 발휘될 수 있을까. 전주의 보통 사람들에게 해법을 묻자는, 이 호소가 꼭 현실이 되어 이 좋은 계절 오월 가정의 달에, 거리에 아프게 서있는 노동자들이 가족과 다시 웃을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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