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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고 싸가지 있는 기자, 나 좀 봅시다"

전북일보 창간 62주년에 보내는 선배기자의 고언

 

내 사회생활의 고향이요 친정이라 할 전북일보가 오늘로 창간 62주년, 환갑 진갑 다 넘었다는 소식에 귀가 번쩍한다. 와아, 대단하다, 신난다, 참 기쁘다. 어떻게 그 긴 세월을 부패 세력들의 무법적 회유압박과 무식한 군인들의 총칼을 견뎌내며 피하며 버티고 살아남았다지? 그래서 역시 전북일보는 다르구나 하는 건가.

 

59년, 창사 최초의 몇 십대 일 공채기자에 뽑혀 조금은 거만스레 출근했다가 첫 월급 받은 즉시 찌그러져 버린 때를 회상하자니 더욱 그렇다. 하긴, 6·25전쟁 뒤로 역사상 가장 가난했던 시절의 지방신문 기자가 내놓을 뭐가 있었겠는가. 그때, 돈 쌀 떨어져 마누라와 굶고 싸우고 출근했다는 동료기자의 눈물을 추억의 앨범 첫 장에 담고 지금은 웃을 수밖에.

 

설상가상으로 입사 2년차인 60년엔 3·15부정선거, 4·19혁명의 폭풍우와 회오리가 한꺼번에 터지고 몰려오는 바람에 꼬랑지 기자는 끼니 건너고 잠 설치고도 두 다리 자가용으로 뭣 빠지게 뛰고 달렸다. 그러다 또 만난 61년의 태풍해일이 곧 5·16. 어쩌면 깡패와 기자들이 쿠데타의 표적이요 과녁이었더냐, 깡패들은 줄줄이 엮이고 묶이어 산골수용소에서 저네 말로는 안 죽을만치 두들겨 맞았더랬고 기자들은 병역미필자의 싹슬이 해고는 물론 뭔가의 죄목으로 신문사로 연행하러 오는 경찰의 방문을 심심찮게 맞아야 했다.

 

하지만 후배들아, 그런 시련과 고통 속에서 청년은 오히려 성장하고 강해진다는 삶의 진리를 터득했으면 좋겠다. 강하다는 것은 청년들만의 재산이기 때문. "가시밭길을 넘어 그윽히 웃는 한송이 꽃은 눈물의 이슬을 받아 핀다 했으니 높고 거룩한 하늘을 우러르기에 삼가 육신의 괴로움도 달게 받으라"

 

당시 B사장에게 호통 맞은 취재부실사건은 내 기자정신교육의 표본이 됐다. 3·15부정선거의 흉계와 모사의 절정을 이루던 60년대 초였다. 그날 사장님은 선배기자와 나를 묶어 내전하는 3·15부정선거의 괴수인 내무부 L차관을 회견하라며 전용차까지 내주었었다. 하지만 잽싸게 피신한 그와의 단독회견은 실패했고 헬렐레 돌아온 우리에게 사장님의 노기와 고성은 하늘을 찔렀다. "당장에 저놈들 모가지 쳐"라며 폐부를 찌르던 최후의 선고문, "이놈아, 손짓하고 환영하는 곳만 가는 건 기생이요 작부야. 기자는 만나지 않으려는 자, 숨어있는 자들 찾아 회견기사 만들어내야 그게 기자야."

 

이 교훈을 골수에 새겼던 다음해 7월, 나는 5·16의 총수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인 박정희 장군과 남원군 이백면 효기리 좁은 논길을 나란히 걸으며 공포의 단독회견을 성공시키는 모험취재를 해냈다. 나는 복구물자를 싣고 가는 트럭의 조수석에 빌붙어 그 참혹한 효기리 수해현지로 먼저 홀로 잠행취재를 갔었고 그리고 피해시찰을 마치고 돌아가는 논길 위에서 수행원들을 밀쳐내고 앞지르며 논길 맨 앞에 걷는 박의장 곁에 바짝 붙어 갔었다. "실례합니다. 전북일보 기잡니다." 그때 선글래스 너머 그 눈빛과 혼잣말, "허, 신문기자는 어디에고 있구먼."

 

가끔 괜찮은 후배기자를 만나면 나는 입법·사법·행정의 3권부에 빌붙어 왜 언론이 4권부라 불렸는지, 그리고 지금은 왜 외면되는지 입에 거품을 물곤 했다. 이유는 분명하다. 소유자와 경영간부와 지금은 기자까지도 진실한 언론인 계명을 지키기를 두려워하며 기생·작부와의 경계를 명확히 하지 않기 때문이지 싶어서다. 기자는 목숨을 걸고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는 지사적 기개, 항상 사회정의 편에 서는 의인적 용기, 힘없고 가난한 자 편에서 내 옷을 벗어주는 인자의 온정을 참 기자의 정도요 진리로 꼽고 살아야지 싶다.

 

그리고 특히 사랑하는 전북일보 후배들을 응원하련다. 그대들은 전북에서는 참 기자의 향도요 본이라는 자부심으로 고개 세우고 어깨 펼 일이다. 우선 역사부터가 여느 군소지 보다 길고 경험과 지식, 그리고 자랑스런 많은 선배들이 있음을 자랑하거라. 기자는 자잘해도 아는 것 많고 이마에 항상 땀방울 맺혀 있고 호기심의 눈빛 살아 있으면 '싸가지' 기자로선 최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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