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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구두수선가게 주인 이영배 씨

▲ 임 철 완

 

전 전북대 의대 교수

미국이 대한민국의 탄생과 건설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지 60년도 더 지났다. 이제 이 땅의 가정들 중 한 두 집 건너면 미국에 지인이나 사돈네 팔촌 관계에 있는 집을 종종 만나게 된다. 이들 재미교포들 중에는 미국 국회와 백악관에 진출하고 시의원, 과학자 또는 사업가로 성공해 우리나라 신문 지상이나 TV방송에 고국을 빛낸 인사가 돼 대대적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 편에는 손에 흙과 기름을 묻히면서, 때로는 상처를 입으면서 살아가는 어려운 교포들도 많이 있다. 통속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앞서 말한 교포들은 '잘 나가는 인생'이고, 뒤에 말한 교포들은 '고생하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별 볼일 없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그 별 볼일 없는 듯한(?) 인생을 산, 그러나 미국인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한 사람을 소개하고 싶다. 이영배 씨는 내가 정년퇴임했던 전북대학교 병원 검사실과 적십자 혈액원에서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는 세 딸과 아내를 데리고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한국에서는 병원검사실과 혈액원 책임병리기사로 근무했지만 미국 땅에서 그 경력은 무용지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헌 구두 뒷굽을 갈아주거나 찢어진 신발을 꿰매어주는 구두수선가게였다. 고물 재봉틀 하나와 손님들의 신발을 올려놓고 손님과 함께 살펴보는 유리카운터 하나가 창업 준비 전부였다. 간판은 조그마한 흰 판자에 검정색으로 쓴 '슈 리페어(SHOE REPAIR)'였다.

 

가게를 차린 곳은 캘리포니아 라구나비치 시. 한국인들은 없는 백인들의 도시였다. 그는 구두수선가게를 운영한 20년 동안 일요일을 빼고는 하루도 놓아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는 망가진 구두만 들고 오던 손님들은 그가 일하는 것을 보고 고장난 바퀴, 끈 떨어진 가방, 각종 청소용구까지도 수선해달라고 가져왔다. 50년 전에 산 다 떨어지고 찢어진 배낭을 들고 오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수선해 본 적이 없는 일감이라도 일단 손님에게 물건을 맡겨두고 가라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걸려도 수선에 필요한 부품이나 실을 구해 말끔히 수선해 놓았다. 물건을 찾으러 오는 손님에게는 수선비 내력을 상세하게 적은 수리비 청구서를 줬다. 손님들은 합리적으로 요구하는 정당한 가격에 동의했다. 물론 새 것보다 더 튼튼하게 변한 정든 물건에 한없이 감사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여생을 정리하기 위해 20년 동안 운영했던 수선가게를 닫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가게를 닫기 3일 전 한 손님에 의해 '코리안 이영배씨 구두수선가게가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가게가 문을 닫는 2008년 12월 31일, 라구나비치 켈리 보이드 사장이 시민전체를 대신해 감사장을 보내왔다. '영배 씨의 사업은 값을 매길 수 없는(invaluable) 주민에 대한 헌신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다음날 두 개의 신문에는 '구두수선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크게 실었다. 신문의 기사 제목은 'Sew Long Farewell(꿰매기 아저씨 잘 가세요)'과 'Good Bye, Mr and Mrs Fix-it(잘 가세요, 수선해주는 아저씨 부부)'이었다. 고객들의 이야기와 '시민들은 영배 씨를 그리워할 것'이라는 내용이 영배씨 부부 사진과 함께 실린 기사였다.

 

미국에 갈 때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들 중에서도 이영배씨가 언제나 존경스럽고 자랑스럽다. 그리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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